만약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는데 북한산을 부숴 경기장을 짓자고 한다면? 보통 정신나간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말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북한산은 국립공원이고 우리에게 너무 가까운 산이니까. 그런데 조선시대부터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관리되어온 우리나라 최고의 숲을 파괴하고 거기다 짓자면? 잘 모르는 곳이니까, 그래도 되는 걸까?

가리왕산. 삼한시대 맥국(貊國)의 갈왕(葛王)이 피난 와 성을 쌓고 살아 `갈왕산(葛王山)'이라 불리다 가리왕산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산. 1561m로 우리나라에서 아홉 번째로 높은 명산. 그래도 많은 이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국립공원이 아닌 까닭도 있지만 조선시대 때부터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시킨 산이었고 현재도 보호구역으로 묶여 입산통제가 이뤄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엔 왕이 먹을 산삼을 캐는 곳이었다. 그래서 민간인 산삼 채취 및 출입을 금지하는 표석인 ‘정선강릉부산삼봉표’가 세워졌고 이 표석은 현재 유형문화재 113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는 정부가 관리하는 산림 중 가장 강도 높은 보전구역이라 할 수 있는 국가산림유전자원보호림이다. 분비나무, 주목나무, 사스레 나무, 거제수, 신갈나무, 마가목 등의 우량한 희귀 수목들과 한계령풀, 금강제비꽃, 도깨비 부채 등 희귀 식물이 원시림 상태로 있기 때문이다. 가리왕산의 신갈나무 숲은 환경부 기준 녹지자연도 9등급의 절대보존지역이기도 하다. 세계에 유래 없는 5백 년 넘는 국가 지정 공식 보호구역인 셈이다.

▲ 대안 찾기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활강경기장은 출발과 도착지점의 표고차가 8백 미터 이상 나야 하는데, 평창 인근엔 가리왕산밖에 없다는 게 강원도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미 동계올림픽 수준의 경기를 치른 무주가 있다. 한번 쓰고 방치되고 있는 무주 경기장을 보강하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진은 덕유산 능선.
그런데 이런 곳이 단 2주 동안의 잔치를 위해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활강경기장으로 사용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강원도는 처음부터 가리왕산을 활강경기장으로 계획하고 동계올림픽유치에 나서면서 한 차례도 산림청이나 환경부 의견을 묻지 않았다. 어차피 현행법으로는 활강장 건설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고작 2주 잔치위해?

정부는 올림픽유치가 결정되면, 그 때가서 ‘특별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수를 쓰려 했다. 그 예상은 적중해 며칠 전 강원도와 민주당 최종원 의원은 ‘평창동계올림픽특별법’을 국회에 상정했다. 이 법을 다룰 소위원회는 문화관광부도 아닌 ‘평창동계올림픽 및 국제경기대회지원특별위원회’다. 일사천리 통과는 시간문제다.

활강장 건설엔 비용도 8백 억 넘게 들어간다. 올림픽이 끝나면 일반인들은 거의 사용할 수 없어 방치될 것이 뻔한 경기장을 5백 년 넘은 보호림을 파괴해가면서 짓자고 특별법도 만들고, 다른 대안 찾자는 환경전문가나 환경단체 주장엔 불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대안 찾기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활강경기장은 출발과 도착지점의 표고차가 8백 미터 이상 나야 하는데, 평창 인근엔 가리왕산밖에 없다는 게 강원도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미 동계올림픽 수준의 경기를 치른 무주가 있다. 한번 쓰고 방치되고 있는 무주 경기장을 보강하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모든 경기를 이동시간 30분 내외에서 개최하겠다는 조건으로 평창이 결정되었다는 말을 강원도는 한다. 10여 년 전 IOC 실사에서 무주는 불가능하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말도 되풀이한다.

그러나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당시 생태계보호구역과 멸종위기종 보전을 위해 경기장 예정지를 이전하고 규모도 조절했다는 사실을 강원도는 계속 모른 척 하고 있다. 10여 년 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닌 보강 공사를 통해 기준을 맞출 수 있다는 의견도 무시하고 있다. 덕유산 국립공원을 파괴하고 올림픽 경기장을 만든 무주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는 반환경 올림픽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이제 국제사회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이 어떻게 회자될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명희/ 녹색연합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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