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11월 10일, 309일만에 땅을 밟으며 처음 크레인 아래서 기다리던 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건넨 인사다. 한진중공업 해고자도, '진숙이 이모, 끝까지 함께 투쟁해요'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기다리던 가족들도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전하며 눈물을 흘렸다. 반드시 살아서 만나자고 간절히 외치며 기다린 끝에 얻은 만남이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내내 크레인 아래 있던 사람들은 애가 탔다. 김 지도위원이 내려오기 앞서 얼굴을 씻고 짐을 싸서 내려보내는 동안 사람들은 “김진숙 지도위원님, 나와라”를 외치며 얼굴이 보이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김 지도위원과 137일을 크레인 중간층을 지킨 박성호, 박영제, 정홍형 조합원이 땅에 내려온 순간 조합원과 가족들은 이들 목에 꽃 목걸이를 걸어주며 부둥켜 안고 한참을 울었다.

▲ 11월10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온 김진숙 조합원이 "끝까지 투쟁"이라고 외치고 있다. 신동준

김 지도위원은 자신을 기다리던 많은 이들에게 고생했다는 인사를 전했다.
“동지 여러분, 반갑습니다. 고생 많았습니다. 주익씨도 이렇게 걸어 내려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309일 동안 한시도 잊지 못한 이름이 김주익, 곽재규였습니다. 위에서 4도크를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309일 이란 시간을 어떻게 버텼냐고 하지만 그 아픔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포기할 수가 있겠습니까.”

김 지도위원은 "이제 해고자, 비해고자의 구분은 없어졌습니다. 100% 만족할 성과는 아니지만 저나 여러분 모두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라며 "오늘 이 시간으로 먼저 간 동지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투쟁 기간 우리 서로에게 쌓였던 앙금도 모두 풀어버립시다. 오늘부터 새로운 출발이고 시작입니다"라고 농성을 마무리하는 소감을 전했다.

▲ 11월10일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온 '사수대' 박성호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이 투쟁은 계속 된다는 내용의 발언을 하고 있다. 신동준

김 지도위원은 다섯 차례 진행된 희망버스와 그 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을 찾아 힘을 실어준 시민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저희를 살리고 민주노조를 살린 것이 희망버스였습니다. 그 마음 잊지 않고 민주노조의 깃발을 들고 우리도 그 연대 정신을 다른 곳에 퍼뜨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김 지도위원과 조합원들이 함께 크레인 농성을 진행하는 동안 외쳤던 구호를 외치며 다시금 투쟁의 결의를 모았다.

지난 6월 27일 영도조선소 안에서 농성하던 조합원들이 밖으로 내쫓기던 날 85호 크레인에 올랐던 또 다른 농성자들 박성호, 박영제, 정홍형. 그리고 40여 일간의 단식농성으로 먼저 크레인에서 내려와야 했던 신동순 조합원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 11월10일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온 '사수대' 박영제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이 조선소 안밖에서 함께 싸운 금속노조 조합원들과 희망버스 참가자 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있다. 신동준

박성호 정리해고철회 투쟁위원회(아래 정투위) 대표는 "농성 129일 되던 날 김주익 동지가 생각났다. 정말 힘들게 여기까지 왔다. 정투위 동지들이 이견도 많았지만 힘들게 뜻 모아준 것 정말 고맙다. 또 만장일치로 합의안을 통과시키고 우리 조직이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조합원 동지들도 모두 고맙다"고 조합원들에게 인사 했다.

그리고 농성자들은 비록 크레인에서는 내려왔지만 투쟁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투쟁을 준비하고 승리하자는 결의를 다졌다. 박성호 대표는 "정말 이번 기회에 임단협, 현안 문제 모아서 해결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한진중공업 사측은 끝까지 무시했다."며 "이제 우리가 다시 하나가 된 만큼 1년 후 반드시 동지들 곁으로 돌아와서 열사들이 지키려던 민주노조를 반드시 지키겠다. 동지들 사랑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영제 조합원도 "정리해고 문제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제 일단락 됐다. 우리 앞에는 아직도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 남아있다. 힘내자. 단결하자"고 외쳤다.

▲ 11월10일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온 '사수대' 정홍형 노조 부산양산지부 조직부장이 조합원들과 함께 투쟁하는 활동가가 되겠다는 내용의 말을 하고 있다. 신동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농성자들이 크레인을 떠나 본관 앞까지 걸어가는 길 양쪽으로 길게 서서 농성자들의 손을 잡고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본관 앞에는 조선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시민들이 농성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국 곳곳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러 왔던 시민들, 부산 지역의 노동자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만난 농성자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농성자들은 한진중공업 투쟁에 보내준 시민들의 연대와 지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도 또 다른 투쟁의 현장으로 이런 움직임이 이어져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정투위 소속 한 조합원도 농성자들을 보니 어떠냐는 질문에 "좋다, 참 좋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는 "돈이나 딴 무엇보다도 사람이 제일 아니냐. 건강히 살아서 내려와줘서 정말 고맙다"며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얼른 현장에 다시 들어가서 제대로 싸우고 우리 현장 지켜내야되지 않겠냐"고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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