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노동사건 재판과정에서 노동자가 이기기란 쉽지 않다. 법원은 좀처럼 노동자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긴박하지도 않은 경영상 이유를 적당히 만들어 정리해고를 일삼는 회사. 그리고 적법한 파업에 업무방해죄를 덧씌우고 손해배상, 가압류까지 걸어대는 사용자들. 법원은 대체로 이들 편에 서 있다.

이길 확률이 높지 않다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희망을 갖고 부딪친다.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지고 나면 억울하고 속상해 눈물 흘리기도 한다. ‘아 이놈의 대한민국 법원, 이정도 밖에 안 되나’하는 좌절감에 시달린다. 그러다 다시 스스로를 위로하고 어떻게든 이겨보기 위해 각종 증거와 자료를 모으며 밤을 지새우는 이들. 바로 금속노조 법률원 사람들이다.

▲ 송영섭 법률원장은 우선 “최근 승리한 재판들은 그간의 법원 판례 한계를 조금이나마 극복하거나 법적으로 쟁점이 됐던 부분들이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해석된 의미 있는 판결들”이라고 평가했다. 송 원장은 “이 같은 승리를 거두면 그간 고생했던 기억이 싹 사라질 만큼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신동준

그런데 최근 법률원이 재판에서 승리해 노동계와 언론에 주목을 받은 사건들이 있다. 진방스틸 부당 정리해고 판결, KEC지회 파업 업무방해 무죄 판결 및 교섭응낙가처분 결정, 발레오만도 금속노조 집단탈퇴 무효 판결 등이 대표적이다. 8월30일 오전 법률원을 찾아 최근 잇따른 승리의 배경은 무엇인지, 그리고 노조 운동에 있어 법률적 대응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 지에 대해 들어봤다.

최근 잇따른 승리의 배경은?

송영섭 법률원장은 우선 “최근 승리한 재판들은 그간의 법원 판례 한계를 조금이나마 극복하거나 법적으로 쟁점이 됐던 부분들이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해석된 의미 있는 판결들”이라고 평가했다. 송 원장은 “이 같은 승리를 거두면 그간 고생했던 기억이 싹 사라질 만큼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하지만 송 원장은 승리의 원인을 법률원이 대응을 잘 해서라고 말하지 않는다. “회사가 정부의 반노동 친기업 기조에 편승해 불법적 노동 탄압을 일삼은 게 오히려 승리의 배경”이라는 지적이다. 아무리 노동자 편을 들기 싫어하는 법원이라도 명문화 된 법을 깡그리 무시하긴 어렵다는 것.

▲ 김태욱 변호사는 특히 “진방스틸 노동자들이 교섭과 투쟁 과정에서 적당히 타협하거나 원칙을 버리지 않고 일관성 있게 대응해 왔기 때문에 법적으로 승리의 근거들이 있을 수 있었다”며 “노조나 지회 지침을 잘 따라 싸우는 것이 법률 투쟁에서도 유리하다”고 말한다. 김태욱 변호사가 한 지회에서 걸려온 상담전화를 받고 있다. 신동준

그리고 송 원장은 무엇보다 탄압 속에서도 투쟁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준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에 승리가 가능했다고 강조한다. 소송 당사자들이 싸움을 그만두면 법적 대응도 계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방스틸 정리해고 사건을 맡았던 김태욱 변호사도 같은 생각이다. 김 변호사는 특히 “진방스틸 노동자들이 교섭과 투쟁 과정에서 적당히 타협하거나 원칙을 버리지 않고 일관성 있게 대응해 왔기 때문에 법적으로 승리의 근거들이 있을 수 있었다”며 “노조나 지회 지침을 잘 따라 싸우는 것이 법률 투쟁에서도 유리하다”고 말한다.

한편 이처럼 끈질기고 원칙적인 투쟁 속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나오곤 하는데, 이 판례는 새로운 기준이 돼 다른 재판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투쟁하는 노동자들 덕분에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법적 기준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게 법률원 사람들의 생각이다. 노동자들이 탄압 받는 다른 노동자들과 연대를 해야 하는 ‘법적인’ 이유가 있는 셈이다.

연대가 필요한 ‘법적인’ 이유

그렇다면 노조 활동을 하면서 법률적 대응은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송 원장을 비롯한 법률원 사람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법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는 것이다. 송 원장은 “최근 법으로 이길 수 있는지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없는지를 하나하나 재면서 노조 활동을 하려는 경향이 종종 보이는데, 이런 식이면 노동운동은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고 단언한다. 아울러 “법을 많이 알아 조심하는 것 보단 차라리 법을 모르는 게 낫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법률이나 판례는 결코 현실보다 앞서나가지 않으며, 노동운동이 바꿔내는 현실을 뒤따라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라는 것.

▲ 송 원장을 비롯한 법률원 사람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법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는 것이다. 송 원장은 “최근 법으로 이길 수 있는지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없는지를 하나하나 재면서 노조 활동을 하려는 경향이 종종 보이는데, 이런 식이면 노동운동은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고 단언한다.  신동준

김혜선 노무사도 “최근 들어 투쟁을 시작하기 전에 소송으로만 해결하려는 경향이 심해지는 듯하다”며 “이럴 바에는 차라리 법률원이 없다고 생각하고 투쟁에 임하는 게 좋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법에 너무 얽매이다간 투쟁 자체도 승리하기 어렵고, 법률적인 진보도 이뤄지기 힘들다는 결론이다.

물론 정반대의 편향도 경계해야 한다. 송 원장은 “최근 사용자들의 불법적 노동탄압이 역풍을 맞고 있듯 노동자도 법을 너무 무시하고 투쟁하다간 옴짝달싹 못하고 당하는 수가 있다”고 경고한다. 투쟁이나 사업에서 쓸데없이 불법적 요소가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는 자세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아울러 사용자의 각종 탄압에 맞서는 효과적인 무기로 법률 대응을 활용하라고 권장하기도 했다.

▲ 금속노조 법률원은 현재 변호사 세 명, 노무사 한 명, 그리고 총무국장, 법규차장, 송무차장 한 명씩으로 구성돼 있다. 법률원은 △조합 활동에 대한 법적 점검 및 지원 △조합원 및 금속노동자에 대한 법적 지원 △노동운동 발전 및 조합활동 강화를 위한 법적 대안 마련 △조합원 및 간부의 법률적 전문성 높여내기 위한 역량 강화 △각종 법률 연대사업 등을 벌이는 조직이다. 두꺼운 소송서류에 구멍을 뚫어 묶기 위한 대형 펀치가 법률원 책상 한켠에 놓여 있다. 신동준

송 원장은 “아직 금속노조 법률원의 존재나 활용방법을 잘 모르는 조합원들이 많은 것 같다”며 “앞으로 법률원과 현장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노력을 벌이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무시해선 안 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매달려도 곤란한 ‘법’. 현장에서 운동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적절하게 활용하려면 법률원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법률원이 있는 금속노조 건물 3층에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고 있는 이유다.

 

금속노조 법률원, 무슨 일을 하나요?
소송 업무 외에도 교육, 연행자 대응, 정책사업까지

금속노조 법률원은 현재 변호사 세 명, 노무사 한 명, 그리고 총무국장, 법규차장, 송무차장 한 명씩으로 구성돼 있다.

법률원은 △조합 활동에 대한 법적 점검 및 지원 △조합원 및 금속노동자에 대한 법적 지원 △노동운동 발전 및 조합활동 강화를 위한 법적 대안 마련 △조합원 및 간부의 법률적 전문성 높여내기 위한 역량 강화 △각종 법률 연대사업 등을 벌이는 조직이다.

일반적인 법률사무소는 소송을 준비하는 게 주된 업무지만, 법률원은 각종 정책적인 업무까지 해야 하는 셈이다. 또한 연행자 발생 시 검찰이나 경찰에 맞서 대응하는 일도 법률원이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다. 송영섭 법률원장은 “노동 사건 특성상 갑작스럽게 일이 벌어지거나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일이 몰리면 밤을 새기 일쑤”라고 전한다.

법률원은 현장과 거리를 더 좁히고 현장에서 필요한 법률대응 체계를 갖추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미 경남지역 사무소 설치를 준비 중이기도 하다.

임선아 변호사는 “금속법률원은 열린 법률원”이라며 “필요할 때 언제든 주저 말고 상담하시라”는 말을 전했다. 법률원은 금속노조 건물 3층에 있으며, 전화번호는 02-2670-9500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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