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면서 거리에서부터 발암물질을 마신다. 자동차 배기가스에는 벤젠을 비롯해 다양한 발암물질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지하철로 갈아타면서 폐암을 일으키는 라돈이라는 방사성물질에 노출될 수도 있다. 살고 있는 동네가 공단지역이면 각종 오염물질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게다가 매일 먹는 과일이며 야채에는 농약이 잔류되어 있는데, 많은 농약이 발암물질에 해당한다. 샴푸와 스킨로션에도 포름알데히드나 아민계열의 발암물질들이 미량 함유되어 있다. 이 상황에서 담배를 피운다거나, 술과 고기를 좋아하고 음식을 짜게 먹는 편이라면 암에 걸릴 위험은 더 높아질 것이다.

국립암센터의 공식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성은 세 명 중 한 명, 여성은 네 명 중 한 명이 암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평균적으로 암에 걸릴 확률이 25-33 % 정도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가뜩이나 도시의 환경과 먹거리와 생활필수품들 속의 발암물질도 많은데, 직장에서까지 발암물질에 노출되는 노동자는 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 만약, 금속노동자들로만 암에 걸릴 확률을 계산해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까? 세계보건기구에서는 2006년 뉴스레터를 통해서 이러한 질문에 답을 했다. 전체인구의 사망원인 중 3 %가 직업성 암에 의한 사망인데, 생산직 남성노동자들에게만 국한해서 보면 12 %로 증가하고, 발암물질에 평상시 일하면서 노출되는 노동자들로 국한하면 전체 사망의 80 %가 직업성 암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직업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 용접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은 크롬 같은 발암물질을 마시기 때문에, 일반인에 비해 암에 걸릴 확률이 월등히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한 사람의 일생을 놓고서 암의 위험이 있느냐 아니냐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문제제기가 진보적 과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되어 왔다. 발암물질 노출은 다양한 경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누적량이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이들은 한 개인의 발암물질 누적노출량에서 직업적 노출은 매우 비중이 높기 때문에, 직장에서 발암물질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암 예방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금속노동자들이 마실 수 있는 발암물질은 매우 다양하고 많다. 금속을 가공하는 작업에서 사용되는 절삭유에는 다핵방향족탄화수소, 염화파라핀, 디에탄올아민, 포름알데히드 같은 발암물질들이 함유되어 있다. 용접봉에는 크롬이나 니켈이 들어있어서 용접흄을 통해 노동자가 발암물질을 마시게 된다. 세척액에는 쌍용자동차 투쟁시에 경찰이 사용한 최루액 성분이었던 디클로로메탄이나 티씨이(TCE), 2-부톡시에탄올 같은 발암물질들이 들어있다. 도장작업에서 사용하는 페인트에는 발암성중금속이 들어있고, 신너에도 발암물질들이 들어있다. 기계를 작동시키는 각종 윤활유들도 발암물질이 들어있다. 금속노동자들은 일상생활에서도 발암물질에 노출되지만, 직장에서 노출되는 발암물질 양이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금속노동자들은 자신들에게 닥쳐있는 암의 위험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암이 주로 퇴직 후 60대 후반에 발생하기 때문에 현장의 중요 관심사로 만들어지지 못하는 것도 한가지 이유다. 하지만, 필자는 노동자들이 ‘기준의 최면’에 걸린 것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한 금속노동자가 부품세척작업을 하고 있다. 이 노동자가 사용하는 세척액에는 불순물로 벤젠이 함유되어 있었다. 벤젠은 백혈병과 같은 혈액암을 일으키며, 벤젠의 8시간 노출기준은 1 피피엠(ppm)이다. 작업환경측정을 했더니 0.8 피피엠이 나왔다. 회사에서는 기준 미만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노동자는 그 말을 안심하고 묵묵히 일한다. 하지만, 직장과 일상생활에서 마신 발암물질의 총량을 따져본다면 과연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

직장에서만큼은 발암물질을 마시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사업주의 책임이며, 그것을 이끌어내는 것이 국가의 역할일 것이다. 금속노동자들이 자본의 최면으로부터 하루 빨리 벗어나 암에 걸리지 않을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김신범 /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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