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자지껄. 퇴근시간이 지나자 포항 진방스틸지회 사무실이 조합원들로 북적인다. 얼굴 한가득 웃음을 머금으며 오늘 하루 공장에서 한 일, 일터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운다.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공장 생활이 뭐 그리 특별한 게 있어 할 말들이 많냐고? 그럴 수밖에 없다. 무려 2년 9개월 만의 현장 복귀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6일 대법원은 진방스틸 노동자 16명에 대한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회사는 법원 판결에 따라 이달 8일 이들을 전원 복직시켰다. 지회 사무실을 찾아가 이들을 만난 건 복직 사흘째인 10일. 복직 첫날과 둘째 날 공장 내 잡초 뽑기나 울타리 보수 등 잡일을 시켰던 회사는 이날부터 복직한 노동자 일부를 생산현장에 투입했다.

▲ 8월10일 작업을 마친 조합원들이 지회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동준
오랜만에 꿈에 그리던 복직을 이룬 조합원들의 기분은 어떨까. 권택원 조합원은 오랜만에 크레인 리모컨을 조작하니 손가락이 아파 근골격계 산재신청을 해야겠다며, 농담 섞인 너스레를 떨었다. 관리자에게 일 잘한다는 칭찬도 들었다며 웃는다.

“아직 얼떨떨한 기분”이라는 정진명 조합원은 “가족들도 대법판결 이후에도 진짜 복직을 할 수 있을지 긴가민가했었는데, 실제로 출근을 하고 나니 이제야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한다. 정 조합원은 중학교 3학년 딸이 첫 출근 날 아빠에게 건넨 쪽지를 보여주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아빠의 출근을 응원하는 내용의 짧고 깜찍한 쪽지였다.

2년 9개월 만에 일터로…“아직 얼떨떨해”

복직의 기쁨이 큰 이유는 그만큼이나 긴 아픔의 세월이 있었기 때문이다. 2년 9개월 동안의 해고생활. 금속노조 장기투쟁대책기금나 실업급여만으로는 좀처럼 버티기 힘든 기간이다. 해고 기간 힘들었던 일을 얘기해 달라고 하자 빚이 늘어 자동차를 팔고, 수백만원 손해 보며 각종 보험과 적금을 해지하고, 여자 친구와 이별하는 등 안타까웠던 사연들이 쏟아진다. 한 조합원 부인은 원형탈모증에 시달리고, 다른 조합원의 부인은 네 번 유산을 하기도 했다. 가족들에까지 해고의 고통을 고스란히 겪어야 했던 것이다.

▲ 정진명 조합원의 딸이 아빠의 출근을 응원하는 내용의 짧고 깜찍한 쪽지. 신동준
하지만 가장 힘든 것은 동료들이 투쟁을 포기하고 떠나는 현실이다. 회사는 2009년 12월부터 9개월간 조합원만을 대상으로 한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조합 탈퇴를 약속하면 복귀시켜주는 식이었다. 이 기간엔 해고되지 않은 조합원들이 월급을 한 푼도 지급받지 못했다. 때문에 해고 조합원들은 실업급여나 장기투쟁대책기금으로 받은 돈을 이들과 나눠 써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계위기에 내몰린 조합원들 중 하나둘씩 이탈자가 발생했다.

조경훈 조합원은 “그 당시 투쟁을 접고 다른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입사지원까지 했었다”고 털어놨다. 조 조합원은 “지회 사무장에게 전화해 위로금 1천만원 받고 퇴직하면 안 되겠냐고 하소연한 적도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까지 함께 싸우면서 걸어온 길 혼자 포기하고 되돌아 갈 거냐는 사무장 말에 마음을 돌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현철 조합원도 “고법과 대법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지 못했다면 더 많은 이들이 투쟁을 포기했을 것”이라며 본인도 버티기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 8월10일 진방스틸지회 사무실 앞에서 지회 조합원들이 승리를 의미하는 알파벳 브이자를 손가락으로 그려보이고 있다. 신동준
“법원 판결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

그리고 이제 대법 판결에 따라 복직됐지만 아픔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우선 해고기간 밀린 급여가 예상보다 절반 정도나 적게 나왔다. 회사가 파업기간과 직장폐쇄기간 월급, 휴일근무 수당, 야간근무 수당 등을 모두 빼고 줬기 때문이다. 김현철 조합원은 “2008년 1차 정리해고가 지노위에서 부당해고로 판정돼 복직했을 때는 모두 포함돼 지급됐었다”며 “이번에 나온 임금은 2년 9개월 해고 기간 생긴 각종 빚을 갚으면 남는 게 별로 없는 수준”이라고 전한다. 지회는 이에 대해 법적 대응을 강구중이다.

또한 정리해고 됐던 조합원 16명 전원은 업무방해죄로 고소당해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 결과가 나오면 회사는 이를 이유로 또다시 징계를 운운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회사는 지난 3월 지회를 배제한 채 노사협의회를 열고 조합원 징계를 사실상 회사 맘대로 할 수 있도록 취업규칙을 변경해 놓기도 했다. 또다시 지긋지긋한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2년 9개월 만에 일터로 돌아왔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하지만 이들은 “회사가 또 다시 싸움을 걸어오는 게 두렵지는 않다”고 한 목소리로 강조한다. 때론 지치고 힘들었던 장기간의 투쟁이었지만, 각종 탄압에 맞서서 싸우는 방법을 몸으로 체득한 기간이기도 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긴 투쟁 속에서 끈끈해진 동지애에 있기 때문이란다. 정경구 지회 사무장도 “싸움이 길어지면서 지회 조합원 수가 줄어드는 등 아픔이 있었지만, 복직을 계기로 다시금 조직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장기 투쟁 속에 탄압에 맞서는 법 체득

공장 밖 장기 투쟁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진방스틸지회. 이제 지회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승리의 기운이 다른 사업장에도 전파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장기 투쟁 승리의 비결을 다른 사업장에 전해달라는 말에 이기형 지회장은 “장기간 투쟁 버텨내는 특별한 비결 따윈 없다”며 “조합원들 매일같이 자꾸 모이게 해서 보듬어 주고 서로 의지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정진명 조합원이 해고자 생활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있다. 신동준
정진명 조합원은 “뭐든지 내리막이 있으면 다시 오르막이 있기 마련”이라며 희망을 갖고 버티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 조합원은 특히 “최근 경기지역 장기투쟁 사업장에서도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며 “지금이 올라가는 분위기”라고 강조했다. 이어 진방스틸 이겼듯이 한진중공업이나 다른 투쟁 사업장도 승리의 분위기가 느껴진다고도 덧붙였다.

정경구 사무장은 진방스틸 부당해고 대법판결을 비롯해 최근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는 판례들이 잇따르는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의 반노동정책이 있다고 지적한다. 사용자들이 정부만 믿고 무리하게 노조 탄압이나 정리해고를 일삼다보니 법원으로부터 제동이 걸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 “탄압이 과하면 역풍이 몰아칠 수밖에 없죠. 진방스틸지회의 승리가 그 시작이 되면 좋겠습니다.” 2년 9개월의 혹독한 시련을 이겨낸 진방스틸지회 조합원들의 바람이다.

두 차례 정리해고와 직장폐쇄, 그리고 복직까지

노조탄압 백화점 진방스틸

진방스틸의 노조탄압은 가히 선도적(?)이다. 작은 사업장이어서 비교적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자문단을 꾸려 치밀한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등 경주 발레오만도나 구미 KEC보다 앞서 노조파괴의 정형을 보여준 곳이다.

실제로 2008년 6월 검찰과 노동부가 진방스틸을 압수수색해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회사는 법무법인, 노부법인, 경영컨설팅업체 등으로 자문단을 꾸려 노조 파괴를 위한 시나리오를 월별, 일별, 쟁점별로 치밀하게 작성한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2008년 한국주철관으로 매각된 진방스틸은 시나리오대로 단체교섭이 시작되기도 전인 2월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를 탈퇴했다. 이어 단협 개악 요구를 무더기로 제시해 실질적 교섭을 방해했다.

같은 해 6월 진방스틸은 조합원 40명을 정리해고 한다. 하지만 경북지방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해 해고자 모두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자 회사는 곧바로 두 번째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같은 해 11월 25명을 다음해인 2009년 3월 추가로 한 명을 경영상 이유로 해고했다. 바로 진방스틸지회의 ‘장기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이다.

지회가 정리해고에 반발해 파업을 벌이자 회사는 직장폐쇄를 단행한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공장에 용역깡패를 불러들인 후 조합원들과 마찰을 유도해 형사상 고소고발과 손배가압류를 남발했다. 또 2009년 12월부터 2010년 9월까지 조합원들만 대상으로 장기간 2차 직장폐쇄를 유지하며 조합 탈퇴를 종용했다. 이와 함께 회사는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해 ‘무단협’ 상태를 만들기도 했다.

지회는 회사 매각 당시 인위적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기로 한 특별단체교섭 합의서를 근거로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그리고 1심 재판부는 모두 지회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올해 2월 서울고등법원이 처음으로 지회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특별단체협약은 강행법규나 공공질서와 선량한 풍속에 위반되지 않는 한 그 내용에 대한 법적 제한은 없다”며 “기업 자체가 존폐위기에 처할 심각한 재정적 위기가 도래했다거나 예상치 못했던 급격한 경영상 변화가 있는 경우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협약은 유효하다”고 판시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법원 판결에 불복에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지난 5월 이를 기각했다. 회사는 결국 대법 판결을 수용, 이달 8일 투쟁을 포기하지 않고 남아 있던 해고 조합원 16명을 복직시켰다.

한편 정리해고와는 별도로 회사는 이기형 지회장에게 징계해고를 남발하기도 했다. 이 지회장은 지난해 사측의 노조탄압에 맞서 투쟁을 벌이다 11월 회사로부터 징계해고를 당했지만 올해 1월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 2월에 복귀했다.

그러자 회사는 업무방해 형사사건 판결과 회장 명예훼손 등의 이유를 추가해 3월 다시 이 지회장을 징계해고 한다. 하지만 지난 5월 23일 지노위는 또다시 이 지회장의 해고가 부당하다며 복직 명령을 내렸다. 이 지회장은 부당 정리해고 판결을 받은 조합원들과 함께 이달 8일 현장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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