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려 뻗쳐 5초 시켰다고 교사 징계 반발"
"휴대폰 압수한 교사 폭행 사실 뒤늦게 밝혀져"

연일 학생에 의한 교사 폭행 사건이 언론을 도배하고 있다. 기사 논조는 대부분 체벌 금지 이후 무서울 것 없어진 아이들이 교사를 만만하게 보고 교사에게 대들다가 폭행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참 재밌는 논리다. 정말 학생들이 교사를 우습게 볼 수 있는 상황이라면 폭행까지 할까? 교사 지시를 무시하고 그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면 될 것을.

대부분 폭력은, 무시당하기 싫은 교사가 뭔가 강압적인 조치를 하고 그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다. 일반적으로 폭력 사건은 뭔가 갈등이 치달아 힘이 아니면 그 갈등을 해결할 수 없을 때 일어난다. 그래서 개인이든 국가든 폭력이 발생한 원인부터 살펴봐야 한다. 그 결과 나 같아도 한 대 쳤을 것 같다고 동조하기도 하고, 아무리 그래도 폭력은 안 된다고 하는 판결을 내린다. 그런데 교사에 대한 학생 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원인에 대해 분석하려 하지 않는다. 오직 학생이 교사를 폭행했다는 사실만 부각될 뿐이다. 마치 파업이 일어날 때 파업 원인이 아니라 파업 자체만을 문제 삼는 것처럼.

마치 파업자체만 문제삼는 것처럼

체벌 금지 이전 교사의 지도와 학생의 반항 사이에 갈등의 끝은 체벌이라는 이름의 폭력이었다. 말로 훈계하다 안 들으면 “너, 나와” 또는 “우선 맞자”하고 때린 뒤 “너의 잘못을 알겠니?”하고 묻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끝을 마무리하던 폭력이 금지되자 다른 결말이 목격되는 것이다. 이전과 똑같이 체벌을 하다가 징계를 당한다든지, 아니면 폭력의 주체가 교사에서 학생으로 바뀌든지.

▲ 대부분 폭력은, 무시당하기 싫은 교사가 뭔가 강압적인 조치를 하고 그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다. 어느 고등학교 수업풍경.
지금 언론을 도배하는 상황은 그렇게 새로운 상황이 아니다. 갈등 해결 방법을 배운 적이 없는, 아니 폭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할 줄 모르는 우리 사회가 길러낸 모습일 뿐이다. 어쨌든 그렇게 아이들이 짐승처럼 구는 게 사실이라면, 왜 아이들은 짐승처럼 구는 것일까? 짐승처럼 구는 모습이 그 아이의 전체의 모습이며 혹시 학교라는 특정 장소에서 교사라는 특정 존재에게만 짐승처럼 구는 것은 아닐까?

다음은 우리 학교의 ‘괴물’이었던 어떤 친구의 글이다.

“학기 초 나는 흡연하다 몇 번 걸렸는데, 다시 걸리면 학교를 못 다닌다고 들었다. 이미 한번 잘렸다가 다시 들어왔으니 다시 쫓겨나는 것은 싫었다. 선생님에게 혼날 때마다 (담배)생각이 났지만, 그래도 내가 형이고 애들도 놀리고 해서 학교에선 레알(정말) 안 피웠다. 어느 날 배가 아파 똥을 싸고 화장실에서 나왔는데 학생부 선생님 한명이 주머니를 뒤지더니, 라이터를 가지고 학생부로 데리고 갔다. 갑자기 나보고 ‘흡연적발 1차’라 했다. 너무 억울했다. 피지도 않았는데. 그래서 학생부 선생님들에게 승질을 냈다(”x발 학교 안다니면 될 꺼 아니야“라고 말하며 학생부를 뛰쳐나갔다-필자 주). 그러다가 학교 못 다닐 뻔 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는 ”선생님이 애를 감싸니까 애가 저모양“이라고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억울한 나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고 했다. 하지도 않았는데 범죄자처럼 취급받는 것이 속상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울 자유와 바꾸기에는 학교를 안다니는 것 때문에 받는 손해가 더 크다고 했다. 나는 선생님까지 욕을 먹는 건 아니다 싶었다. 억울했지만 벌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 담임선생님을 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학교를 다녔다”

“선생이 애를 감싸니까 애가 저모양?”

나는 이 글을 보고 울컥 했다. 늘 적대적인 눈빛으로 자리에 앉아 자거나 떠들거나를 반복하던 저 아이가 이런 마음을 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교사들이 이런 경험을 하게 되기를 원한다. 짐승처럼 보였던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인간적 배려를 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길 원한다. 더 나아가 주민발의가 성사된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어 이 아이가 무심코 주머니를 뒤져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선생님 앞에서 욕을 하며 나가는 짐승처럼 변신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하나, 내가 자랄 때 역시 폭력은 무조건 나쁘다고 배웠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 보니 약자의 폭력과 강자의 폭력은 다르게 대접받았다. 삼성이 노조를 없애기 위해 도청을 하고 협박을 하는 폭력은 감춰졌지만, 용산참사 때 공권력의 폭력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방어적 폭력은 오히려 과장되어 보도되었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무리한 4대강 사업으로 희생된 사람과 자연에 행해진 국가의 폭력은 감춰지고, 한진중공업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크레인을 지키는 투쟁은 노조원들과 용역 깡패 사이의 충돌이라든가, 쌍방간 폭력으로 넘어간다.

학교와 사회를 망치는 폭력의 주범으로 언론에 도배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진실일까? 아이들의 폭력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가? 스스로의 입장을 대변할 언론도 힘도 언어도 논리도 갖추지 못한 아이들이 남들에 의해 묘사되는 모습을 진실로 믿는 우리가 유독 노동자의 투쟁에만 쌍심지를 켜는 언론을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조영선 / 서울 경인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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