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7월부터 복수노조의 시대가 열린다. 민주노조운동이 활기찼던 시절 복수노조가 되기만 하면, 무노조 사업장으로 유명한 일부 재벌 대기업에 노조 깃발을 꽂을 것 이라는 기대도 했다. 하지만 지금 현장은 기쁨보다 두려움이 더 많다. 마치 흘러가는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해야 할 것 같은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부터 살펴보자.

개정노조법에 따르면 교섭권을 두고 산별노조와 기업별 노조가 경합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 한 사업장에서 금속노조에 반대하는 기업노조가 만들어질 경우 산별노조와 기업노조는 팽팽한 긴장관계에 놓일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가 다수의 자리에 있으면 교섭권을 행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사용자들이 도리어 자율교섭을 내세울 경우 소수노조 역시 교섭권을 확보할 수 있다. 반대로 산별노조가 소수일 경우 교섭권 확보를 위한 노노갈등이 본격화될 가능성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에선 다수노조 지위만 유지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할 법 하다.

그렇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생기고 있다. 금속노조를 탈퇴하면 회사가 나서 ‘제 2노조’를 만들지 않고 성과급까지 주겠다는 달콤한 유혹이 실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금속노조를 힘든 조직으로 여기게 만드는 언사들도 여기저기서 불쑥 튀어나오고 있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산별노조를 왜 만들었는지 이유마저 망각하게 만들고 있다.

▲ 지금 상황은 '나만 살면 그만’이라며 수동적인 조직방어만 하도록 노동조합들을 내 몰고 있다. 조합원들이 직장폐쇄철회와 노동탄압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중소사업장 기업노조들이 산별노조로 조직전환을 한 것은 바로 교섭의 어려움이 가장 큰 이유였다. 사용자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교섭에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면서 단체교섭마저 체결하기 어려웠던 게 산별노조가 만들어지기 직전의 일이었다. 기업단위 교섭에 힘을 싣기 어려웠던 당시 상황을 지역집단교섭방식으로 풀어가려면 산별노조 전환은 불가피했다. 기업단위 구조조정으로 인한 대량실직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안전망 확보와 같은 의제들을 전파하기 위해서도 산별노조 건설은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이런 문제의식을 희미하게 만들고 과거 경험들까지 잊도록 한다. 그리고 ‘나만 살면 그만’이라며 수동적인 조직방어만 하도록 내 몰고 있다.

금속노조만 탈퇴하면?

이처럼 산별노조 존재를 어렵게 만드는 노조법 개정은 기업노조 생존은 마치 가능하다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여기엔 그 기업노조조차도 친기업적인 노조만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때론 노조조직이 노동자들의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노조활동마저 할 수 없도록 법을 만들고 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부정이다. 현재 금속노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바로 이런 민주주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작업장 노사관계에서 늘 대화로 소통이 가능하다면, 누가 노조를 만들자고 나서겠는가. 노사가 사이좋게 말로 다 해결되는 데, 누가 머리띠 불끈 동여매고 싸우려 들겠는가. 직장을 잃으면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벌어지는 불합리와 부당함을 조금이라도 시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노조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인정되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자발적 결사체인 노조는 일방적으로 작동되는 힘 관계에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제도적 장치인 것이다.

때문에 교섭권을 핑계로 기업노조로 되돌아가라고 부추기는 것을 합리화해줘서는 곤란하다. 생존이 힘든 조건에서 생존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해야하고 노사관계에서 그것은 노동자들의 희생으로만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쪽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관계를 두고 협조와 상생 운운하는 건 몰염치다. 기업노조 조직이라도 지키려면 산별노조 탈퇴를 불사하라고 부추기는 말에 연민과 측은함이 느껴지더라도 그것이 과연 노조를 살릴 수 있는 길일까 반문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아울러 자신들 입맛에 맞는 조직만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조직은 활동마저 못하도록 하겠다는 정부와 사용자의 의도를 알면서 투쟁하지 않고 회피하려드는 건 오히려 생존이 아니라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이종래 /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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