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욕심이 많아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고 명석하게 생겨서 호감을 줄 것 같은 영희는 사실 선생님들 사이에서 걱정 섞인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말투 때문입니다. 퉁명스럽게 뒤끝을 올려서 말을 하기 때문인데, 어쩌다 순서가 늦거나 놓치면 “선생님 사탕 왜 안 줘요?”, “선생님 자리 왜 안 바꿔요?”, “왜요?”. 경직된 얼굴로 물어볼 때마다 가슴이 꽉 막힙니다. 지금 저 아이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겠지 하면서도 그 말투에 일단 상처 받게 되면 상대도 친절한 말이 안 나오지요.

알고 보니 직장일로 바쁘신 부모님이 아이가 친밀감을 보이는 말을 할 때나 아이들이 실수했을 때 시간을 충분히 갖고 친절하게 일러주시거나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주시지 못했다는 겁니다. 바깥일 하다 보니 행여 아이들이 버릇없게 자랄까봐 엄격하게 기르고자 어머니가 그렇게 딱딱한 말투로 말씀하시곤 했다 하더군요.

아이들은 경험을 통해 배웁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이 아이들을 분노하게 하거나 상처를 입히거나 자신감을 떨어뜨리거나 자신의 능력과 자존심에 대한 믿음을 파괴하지 않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폴란드의 교육학자 야누슈 코르착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퉁명스럽게 뒤끝 올려 말하는 한 아이

“‘잘못했어요’ 하는 말을 들으려 애쓰는 대신 어른의 따뜻함을 보여 주세요. 이들은 지금 여기, 오늘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이들입니다. 한 아이가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예를 들어 창문 유리를 깨뜨렸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아이는 이미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이때 아이를 나무라면 설사 그 이유가 타당할지라도 뉘우치는 기색을 보이는 대신 반항하고 얼굴을 찌푸리거나 화를 내게 됩니다. 사실 아이가 죄책감을 느낄 때, 그때는 바로 어른들이 따뜻함을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 사실 깨진 유리는 아이들 편에서 보면 실패한 시도일 뿐입니다. 비록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은 결과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미 깨진 유리뿐 아니라 실패해 삐치고 화가 난 그 마음까지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이들이 실수했을 때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전인격을 비난해서라도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게 하려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전혀 아이들이나 부모에게나 도움이 되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여러분의 자녀를 ‘인간다운 사람’으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방을 어지르고 치우지 않는다면 “방이 어지럽게 지저분한데 네가 치우지 않으면 엄마가 치워야 하니 저녁을 차리는 시간이 늦어져서 엄마가 힘들단다” 식으로 부모의 마음을 전해주는 언어로 말하세요. 또 방법을 알려주거나 언제 치울 건지 아이에게 물어보고 스스로 자기 시간을 선택하게 하면서 시간을 지키면 격려해 주세요. 만약 약속을 안 지킬까 걱정이 된다면“ 10분 남았네.”로 놀기에 골몰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주시면서 기다려주고, 시간을 넘기더라도 비난하는 말 대신에 “깜빡했구나, 놀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며 따뜻함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나 부모에게 도움 안 되는 말들

아이들이 부모에게 어떤 마음을 갖게 될까요? 비록 방을 치우지는 못했을지라도 관계가 깨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깨끗한 방’과 ‘좋은 관계’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인지 생각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단지 방 하나를 안 치웠을 뿐인데 부모는 아이가 게으른 아이가 될까 걱정과 불안이 커집니다. 그래서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들었던 말을 되뇌입니다. “왜 이렇게 게으르냐”, “몇 살인데 네 방 하나 못 치우냐, 한심하다”, “부모가 니 하인이야?”는 등 인격을 모독하거나 아이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도록 아이의 죄책감을 주거나 자존감을 서서히 해치는 말을 하면 과연 아이가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행동하게 될까요? 방금 부모들이 한 말은 어린 시절에 들었을 때 반항심이 생기거나 듣기 죽도록 싫었던 경험이 있을 말인데도 말입니다. 아마 여러분의 아이들도 여러분이 아이였을 때처럼 무기력해지거나 반항심을 가지지는 않을 런지요?


가정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것은 부모입니다. 부모가 반응하는 태도에 따라 분위기가 살아나거나 가라앉거나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부모들은 비난과 배척의 언어를 버리고 너그럽고 친절한 언어를 익혀야 합니다. 지난 세대 어른들에게서 배운 말들을 친절한 말들로 바꿔보는 것입니다.

지난 세대 배운 말을 바꿔라

여러분이 듣고 싶었던 말을 떠올리거나, 여러분이 손님이나 다른 어른들에게 하는 말을 떠올리면 너그러움의 언어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것은 행동을 비판하는 언어가 아니라 감정을 보호하는 언어입니다.

갑자기 배려의 언어로 대체하기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대화를 나눌 때 전에 없이 배려하는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항상 아이들이 그걸 고맙게 생각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가끔 자기들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고집을 부리기도 하니까요. 교과서와 다른 아이들의 반응에 좌절하거나 화가 나서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기술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아이들이 힘들어 할 때, 부모가 힘들 때, 서로의 욕구가 강할 때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제가 아이들과 살면서 겪은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 나갈까 합니다. ‘말’ 때문에 아이들이 자존감을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명남 / 서울 영서중학교 교사

* 필자 이명남 선생은 26년째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좌충우돌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는 중학교 교사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1년 동안 금속노조 조합원과 자녀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대화의 기술’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자녀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키우고, 동시에 부모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태도를 가르치는데 도움을 되길 기대한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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