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관련 현안으로 연일 현장이 뜨겁습니다. 가급적이면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사연과 애환을 들려드리고자 했는데, 시국이 시국인 만큼 노조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민주노총이 ‘민주노조 사수’를 핵심구호로 외쳐야하는 이 비장한 시국에서 과연 노조가 노동자에게 무엇인가를 종종 생각해보게 됩니다.

똥 푸는 사람들의 노동자선언, 인간선언

월드컵이 개최되던 2002년에 그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첫 상담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말은, 매일 새벽 4시부터 일한다는 얘기도, 늘 일찍 자야해서 친구들과 술 한잔하기조차 힘든 삶이라는 얘기도,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지만 월급이 고작 100만원 조금 넘는다는 얘기도, 씻을 곳조차 제대로 없고 옷에 배인 냄새 때문에 식당에도 가기 어려워 도시락이나 빵으로 똥차 안에서 하루 두 끼를 때운다는 얘기도 아니었습니다. 지금껏 십수년이 넘도록 자식들에게 직업을 숨기며 살아왔다는 얘기, 그 말에 저는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더러는 운전기사라고 또는 시설보수원이라고 자식들에게 얘기해왔다는 이 아버지들은 정화조 청소를 하는 노동자들입니다. 결국 그 사람들이 노조를 만들었습니다. 쉰이 넘고 예순이 넘은 나이가 되어, 인간답게 일하고 싶었던 긴 세월 억눌린 소망을 결국 노조에 담은 것입니다. 동시에 8개 회사지부를 설립하였습니다. 여덟 군데 단체교섭과 각종 법적 대응을 하며 그해 여름을 온전히 그들과 함께 보내느라 그 열기 뜨거웠던 월드컵을 저는 한번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 지난 3월31일 부산지역일반노조 정화지회 조합원들이 수영구청의 정화조 청소비리를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부산지역일반노조

지부장들 중에는, 노조 관련 서류들과 함께 꼭 소주 한병이 들어있는 007가방을 들고 다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늘 넉살좋은 웃음을 보여주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단체협약이 빨리 체결되어 기본적인 노조활동을 보장받고 다소간의 근로조건 개선이 이뤄지자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늘 싱글벙글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회사의 노조탄압은 단협 체결 이후가 시작이었고 회사와의 싸움이 최고조에 치닫던 중 회사비리를 폭로한 것이 명예훼손죄라며 구속까지 되었습니다.

환갑이 다 되가는 나이에 처음으로 구치소에서 몇 달을 살았습니다. 검사로부터 갖은 모욕까지 당했습니다. 노조가 없던 시절 사장한테서나 가끔 들던 “야! 한번 혼 좀 나볼래?”라는 말을 검사한테서까지 들을 줄은 상상도 못했었답니다. 보석으로 풀려난 날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래도 노조를 만들고 나서 자신의 노동이 당당하고 신성한 것임을 처음으로 깨달았다고, “똥에는 계급도 차별도 없다”고 외치며 그 넉살좋은 웃음을 호탕하게 또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지체 높은 검사님보다, 세상 사람들이 다 가장 더러워하는 똥을 치우는,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직업을 가진 노동자라는 사실을 이제는 어린 두 딸에게 당당하게 얘기한다는 말에 저는 또다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어느 쪽이 진정한 노조인가

8개의 지부들 중 한 곳은 결국 깃발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단체교섭을 요구하니 이미 기업별노조가 있다며 교섭을 거부합니다. 듣도 보도 못했던 노조가 역시 듣도 보도 못한 단체협약을 갖고 있었고 한국노총 연합노련이라는 그 잘난 상급단체까지 두고 있었습니다. 정말 힘들게 싸웠지만 악법의 위력을 돌파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여러 개 회사지부 건설 시도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회사들이 재빠르게 어용노조를 만들어버린 관계로 소위 복수노조 금지규정에 걸려 번번이 조직은 무산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해고되기도 하였습니다. 7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복수노조 금지라는 이 악법조항은 조직이 확대되지 못하게 만드는 큰 장애물이 되고 있으며 지역 업종별 노조라는 특성상 노조의 존립까지 종종 위태롭게 하는 크나큰 질곡이 되고 있기도 합니다.

노조는 노동자에게 무엇인가

자주성은 노동조합의 법상 첫 번째 성립요건입니다. 그럼에도, 자주성을 상실한 어용노조들이 버젓이 합법노조의 지위를 누리고 노동자들의 진정한 자주적 결사체는 오히려 법으로 금지당하는 참 어처구니없는 현실입니다. 이 참담한 현실을, 한국노총과 경총과 노동부는 13년이나 유예해온 지난 세월도 모자라 또다시 2년 6개월을 유예시키는 야합을 했습니다. 명백한 어용노조는 아무 문제삼지 않고, 노조가 투쟁으로 쟁취해온 유급 노조전임자를 부당노동행위라며 임금지급을 금지시키고 위반 시 처벌까지 하겠다합니다. 부당노동행위란 사용자에 의한 노동삼권 침해행위라고 일관되게 쓰여 있는 노동법 교과서들을 다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노조 하나 만들고 제대로 활동하려면 해고와 구속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노조 하나 만들기도 이렇게도 힘든 나라에서, 이제는 아예 민주노조 자체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있습니다. 노조는 노동자로서의 인권과 생명을 담는 유일한 그릇이 아닐까 합니다. 너무 익숙해져서 노조의 소중함을 가끔은 잊고 살아가기도 하는 민주노조의 조합원들이, 노조를 통해 노동자로서의 인권과 조금은 더 나은 삶을 누리게 된 우리들이 이제는 노조를 지켜줘야 할 때입니다. 시대가 우리에게 싸울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박성우 / 민주노총 서울본부 법규국장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