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있어 많이 좋아! 월급 많아, 보너스, 식사, 장갑, 빵, 우유…”, “아파서 병원 치료, 월급 안 깎아…”
노조 가입 후 무엇이 좋아졌냐는 질문에 삼우정밀지회 소속 이주노동자들이 더듬거리며 한 대답이다. 한 공장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온갖 차별과 핍박을 받기 십상이지만 적어도 삼우정밀지회(지회장 김태업)에는 그런 문제가 없다. 이주민 내국인 할 것 없이 함께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 성서공단에 있는 삼우정밀지회는 금속노조 안에서 최초로 이주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둔 사업장이다. 총 69명 중 18명이 이주조합원이며 모두 인도네시아인이다. 지회 대의원이기도 한 무나식 조합원은 공단 내 다른 공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삼우 노조 있어 좋은데 우리 일 많다, 돈 적다”라고 자신들을 부러워한다며 뿌듯해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기까지

현대기아차의 1차 부품업체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에 시달려야 했던 삼우정밀 노동자들은 2006년 12월 4일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노동조합 인정, 장갑지급, 간식지급, 식사 질 개선’이라는 소박한 요구를 걸었지만 회사는 노동조합을 교섭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 지회는 파업을 벌였지만 회사가 사무직들과 이주노동자들을 동원해 생산을 지속하다보니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지회는 처음부터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하고자 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김 지회장은 “회사가 ‘노동조합하면 본국으로 돌려보낸다’고 이주노동자들을 위협했고 이들과의 접촉까지 차단해 가뜩이나 언어의 차이로 소통이 힘든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하기가 어려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삼우정밀지회 이주노동자 조합원들이 공장 기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한국어가 가능한 성서공단노동조합 이주지부 소속 인도네시아 조합원의 도움으로 이들과의 소통이 원활해 질 수 있었고, 노동조합은 이주조합원들의 핵심적 요구가 3년 만기 이후 재계약 문제에 있음을 알게 됐다. 지회는 이 문제를 가지고 집중적으로 교섭을 진행했고 회사는 결국 재고용을 수용했다. 2007년 8월 노동조합의 진심을 알게 된 이주노동자들은 그동안 함께하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며 노동조합에 가입, 조합비 일괄공제 서명용지에 전원 서명하게 된다.

“함께하니 교섭력, 투쟁력 강해져”

이주노동자와 함께 하게 된 삼우정밀지회는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김 지회장은 “무엇보다 현장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게 돼 교섭력, 투쟁력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했다. 회사는 더 이상 노조를 무시하지 못하게 됐으며, 법정최저임금에 시달렸던 임금수준은 금속산업 최저임금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인상됐다.
또한 장갑구입비, 기숙사비, 병원치료비 등을 떼이던 이주노동자들은 이제 내국인 조합원들과 같은 처우의 대우를 받게 됐다. 기숙사에도 침대와 에어컨이 설치되는 등 생활여건도 좋아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주노동자들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야!”, “이 새끼야!”라고 불리던 이들은 이제 그들의 이름으로 불린다. 함께 축구공을 차며 땀을 흘린 후 뒤풀이로 막걸리 잔을 기울기도 하며, 야유회에 함께해 즐거운 시간을 같이하기도 한다. 또 이들은 함께 파업하고 함께 집회에 나와 같은 노래를 부르고 같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주노동자 위한 사회적 보호장치 절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언어가 달라 소통이 어렵다. 외부 단체 도움을 얻어 올 단체협약을 인도네시아어로 번역해 이주조합원들에게 배포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일상에서의 소통은 굉장히 어렵다. 김 지회장은 “사회적으로 이들을 위한 통역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하며, 이게 안 되면 노조나 민주노총이라도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러 이주노동자 운동을 하는 이주민 중에는 한국말 잘하는 활동가들도 있다”며 “이들을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냐”고 구체적인 제안도 덧붙였다.

김 지회장은 지난달 태국에서 열린 ‘세계 이주 연대회의’에도 참가했다. 호주에서는 노총 차원에서 이주노동자를 채용해 임금·근로조건이 일정 수준 이상 되는 기업에 배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이 때 접했다. 김 지회장은 “이주노동자가 계속 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도 호주처럼 이들을 사회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절실하다”며 정책 대응을 주문하기도 했다.

‘노동자는 하나’ 구호로 그쳐선 안 돼

하지만 우리 스스로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자세부터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김 지회장은 “많은 사업장에서 아직까지 이주노동자와 함께하는 사업을 귀찮은 일로 치부하고 있는 듯하다”며 “노동자는 하나라는 말이 구호로만 그치고 현장에서 실현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우리들 스스로 눈앞의 이해를 위해 이주노동자를 차별하고 있다는 것이다.

▲ 지난 6월8일 삼우정밀지회 조합원들이 공장에서 파업집회를 벌이고 있다.
1991년 산업연수생 제도가 도입된 이래 이주노동자 수는 꾸준히 늘어 현재 무려 70만명에 달하고 있다. 금속노조 내에도 최근 경제위기로 줄어들긴 했지만 9월 실태조사에 따르면 약 30~40여개의 사업장에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금속노조에서 이주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두고 있는 사업장은 대구 삼우정밀지회와 경남 한국보그워너씨에스 현장위원회 단 두 군데에 불과하다.

2008년 경제위기로 물량이 줄어 회사가 이주노동자 인력 감축을 강요했을 때, 삼우정밀지회는 내국인 조합원들의 순환 휴업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일자리를 지켜냈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결정일 듯싶지만 이들은 달랐다. 지회의 윤준식 사무장은 “자기 자식 귀한 줄 알면 남의 자식 귀한 줄도 알아야 한다”며 “우리가 남의 나라가서 차별 받는 다고 생각하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겠냐”고 답했다.

김 지회장은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주 노동자가 우리 일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라는 생각, 이주 노동자의 임금·복지 수준이 높아지면 우리가 손해 본다는 생각, 그들은 다만 돈만 벌려고 왔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

“피부색과 언어가 달라도 노동자의 마음은 하나 아닙니꺼!” 김 지회장의 말이다. 이곳의 이주노동자들 역시 언어는 다르지만 마음 속으로는 같은 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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