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지켜보았으나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다”.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 내정자의 인사청문회 뒤 나온 민주노총 논평이다. 이날 이 내정자는 유성기업 사태와 관련해 “쟁의의 주체와 목적은 인정하지만 쟁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공권력 투입을 옹호했다.

지회의 쟁의 요건은 합법적이었다. 유성기업 노사는 지난 12일까지 열 한차례 교섭을 진행한 뒤 지난 13일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조정중지 결정까지 받았다. 이어 지회는 지난 17일부터 이틀 간 파업찬반투표를 펼쳤고 78.2%의 가결로 합법적인 파업권을 획득해 둔 상황이었다.

▲ 이채필 고용노동부장관 내정자가 인사청문회 때 답변을 하고 있다. 이명익 기자(노동과세계)
하지만 이 내정자는 “시설 점거를 했기 때문에 명백한 불법”이라고 말했다. 회사가 직장을 폐쇄했음에도 조합원이 농성을 벌인 건 불법 시설 점거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회사의 공격적 직장폐쇄는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례도 있고 지역노동위원회에서도 회사의 직장폐쇄와 노조의 시설점거에 대해서는 공정히 위법여부를 따져보아야 한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이 내정자의 발언에 대해 민주당 정동영 의원이 “그렇다면 유성기업처럼 한진중공업에도 경찰력을 투입해야 하냐”고 따져물었다. 하지만 이 내정자는 “쟁의행위를 할 때 정당성을 갖춰야 한다”는 애매모호한 말만 되풀이했다.

이 내정자에게는 한진중공업 문제에 대한 해결의지도 없어 보였다. 정 의원이 이 날 고공농성 141일째를 맞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의 통화내용을 들려주며 “현장을 방문해 사태를 해결할 생각이 있냐”고 따지자 이 내정자는 “경영상 정리해고와 관련 법적 소송이 진행 중이고 단체협상 문제는 노사 자율로 풀어야 한다”고만 언급했다.

이에 정 의원이 “6개월 째 파업 중인데 노동부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다그치자 이 내정자는 “노동부 부산지청장이 현장에 방문하는 등 역할을 못한 것은 아니”라며 발뺌했다. 이 때 방청석에 앉아 있던 한진중공업 박태준 조합원이 일어나 “책임지십시오. 한 번도 온 적 없습니다. 말씀 좀 들어 주십시오”라고 외쳤다. 박 조합원은 그 뒤 국회 경위들이 입을 막아 더 이상 말하지 못한 채 회의실 밖으로 쫓겨났다.

▲ 방청석에 앉아 있던 한진중공업 박태준 조합원이 일어나 항의하자 국회 경위들이 입을 막고 회의실 밖으로 끌어내고 있다. 이명익 기자(노동과세계)

한나라당 의원조차도 이 내정자의 부정적 노동관을 꼬집기도 했다.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은 노동부가 임의로 만든 타임오프 매뉴얼로 입법취지를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내정자는 전혀 잘못이 없다며 우겼고, 이에 차 의원은 “답답하다. 그 정신으로 어떻게 노동부에 있었냐”고 목소리를 높이기까지 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인사청문회 뒤 논평을 통해 “반노동행정 대표주자 답게 막말을 쏟아낸 이 후보자의 장관 임명은 악화된 노동관계에 쐐기를 박는 것”이라며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이 후보를 자진사퇴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청문회는 한나라당의 반대로 노동현안 관련 증인 및 참고인 신청이 무산된 채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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