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탈퇴공작 ‘태풍’이 휩쓸고 갔던 경남 창원의 센트랄지회를 한 달 반 만에 다시 찾았다. 이곳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이번 일을 계기로 노조 활동을 되돌아보고 금속노조를 포함한 노동조합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하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센트랄. 그 곳에 지난 4월 초 금속노조 탈퇴와 고용보장을 맞바꿈 하자는 사측 확약서가 나돌았다. 그리고 같은 달 12일 조합원 서너 명이 지회 사무실로 찾아와 80장의 조합원 서명이 담긴 용지를 내밀었다. 총회소집을 요구하며 하는 말. “부회장이 민주노총만 탈퇴하면 공장 살려주겠답니다.”

▲ 이 지회장은 “이번에 값비싼 수업료 내고 호된 경험 했다”며 “노조를 재정비하고 현장과의 소통에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도 제대로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노동조합역사를 통한 기본실력이 큰 힘이 되지만 때로는 그 기본실력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닐까 우려가 들기도 한다”는 이 지회장의 말에서 자성과 자각을 느낄 수 있다.

사실 그들의 총회소집요청은 조건조차 성립되지 않았다. 주동자들은 민주노총 탈퇴 건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서명을 받았다. 그래놓고 민주노총 탈퇴하자며 총회를 요청한 것. 그런데 오히려 지회가 나서 민주노총 탈퇴 여부를 묻겠다며 총회를 열었다.

4월 노조탈퇴 공작 ‘태풍’

지난달 19일 개최한 총회결과는 물론 부결이었다. 조합원 240명 중 총 235명이 참석했고 서명자 80명에도 못 미치는 62명만이 민주노총 탈퇴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과를 확인하고 이민귀 지회장은 감격스러웠단다. "조합원들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하는 이 지회장. 하지만 모두 예상하듯 회사는 한 번의 공격만으로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 지회장의 말이다.

이 지회장은 "사측의 금속노조 탈퇴공작은 미수에 그쳤지만, 여전히 조합원들은 혼란 속에 빠져있다“고 설명한다. 센트랄은 생산부품 대부분을 현대차와 기아차에 납품해 왔다. 하지만 사측이 자회사인 센트랄모텍을 세운 뒤 내수생산이 확 줄었다.

현재 센트랄은 미국지엠쪽 수출과 한국지엠 납품물량 일부만 맡고 있다. 그리고 현대기아차는 센트랄모텍에서 나오는 부품만 가져간다. 이 지회장은 “이러다 공장 문 닫는 거 아니냐 걱정하는 조합원들이 많다. 이번 일도 일자리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안감을 회사가 잘 이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납품물량 빌미 조합원 불안감 이용

그곳서 만난 배복기 조합원 또한 "조합원들이 미래에 대해 불확실해 한다"며 일자리 위협에 대해 제기한다. 배 조합원은 "현대차 같은 자동차 완성사들이 금속노조 사업장에 물량 안 주려고 한다는 얘기를 회사에서 계속 흘린다"며 "실제로 내수생산이 센트랄모텍으로 가버리기도 했으니 특히 20~30대 후배들이 회유에 흔들리기도 한다"고 말한다.

▲ 최영현 조사통계부장은 "센트랄모텍은 정규직이 한 명도 없는 무노조 사업장이고 센트랄은 모두 정규직 노조원"이라며 "센트랄의 현재 조건은 당연히 선배들이 투쟁으로 얻어낸 결과물이지만 젊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른다"고 말한다.(사진 앞) 뒤에 보이는 이는 배상룡 조직쟁의차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속노조 탈퇴는 부결됐다. 황태건 사무장은 "적지 않은 조합원들이 회사말에 솔깃해 했는데 회사가 티를 너무 많이 냈다"며 "휴게실을 무슨 서명운동본부처럼 만들어 사측 관리자들이 마구 드나들었으니 회사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라고 분석했다. 지회간부 중 가장 어린 배상룡 조직쟁의차장 역시 "조합원들 몇 명 앞세워 노노갈등 일으키는 사측 신뢰 못하겠다는 얘기가 많았다"고 또래 동료들의 의견을 전한다. 그는 "어떤 문제든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해결해 나가자는 생각을 가진 조합원들이 현명한 판단을 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날 만난 사람들은 모두 ‘반성해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홍준호 지회 운영위원은 사측 도발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며 "95년 연말 성과금 관련 투쟁이 잘 안되자 사측이 잔업 등을 내걸고 300명이던 조합원 수를 60명으로 끌어내린 적이 있었다"며 지난 일들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는 “그 때 남은 조합원 대부분 80년대 말 노동자 대투쟁 겪으며 민주노조 세운 분들이어서 그 힘으로 현장을 다시 조직하며 고생했다”면서도 “지금 그 시간들을 잊어버렸고 그간 큰 노사갈등 없이 잘 왔다며 착각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반성해야 한다’

최영현 조사통계부장은 "센트랄모텍은 정규직이 한 명도 없는 무노조 사업장이고 센트랄은 전원 정규직"이라며 "센트랄의 현재 조건은 당연히 선배들이 투쟁으로 얻어낸 결과물이지만 젊은 조합원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른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이 지회장은 "선배들이 노조활동과 현장근무에서 모두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선배들이 나서 왜 우리가 민주노조를 만들었는지에 대해 적극 알리고 후배 조합원들을 다독였어야 했다"고 말한다.

▲ 홍준호 지회 운영위원은 사측 도발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며 "1995년 연말 성과금 관련 투쟁이 잘 안되자 사측이 잔업 등을 내걸고 300명이던 조합원 수를 60명으로 끌어내린 적이 있었다"며 지난 일들을 늘어놓는다.

이 지회장에 따르면 탈퇴공작의 전면에 섰던 한규환 부회장은 이곳에 부임하자마자 작업복 차림으로 현장을 돌면서 조합원들 이름 일일이 물어보고 얼굴 익히고 손 잡아주는 등의 ‘액션’을 취했다고 한다. “회사 확약서에 버젓이 나와 있는 한 부회장 서명을 보고 아차 싶었다”는 이 지회장. 회사는 노동조합보다 더 열심히 현장과의 접촉도를 높여가면서 노조와해를 준비해온 것이었다.

이 지회장은 “이번에 값비싼 수업료 내고 호된 경험 했다”며 “노조를 재정비하고 현장과의 소통에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도 제대로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노동조합역사를 통한 기본실력이 큰 힘이 되지만 때로는 그 기본실력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닐까 우려가 들기도 한다”는 이 지회장의 말에서 자성과 자각을 느낄 수 있다.

회사태도에 “아차 싶었다”

이번에 만난 이들은 금속노조에 대한 주문사항도 많이 늘어놨다. 이 지회장은 "노조가 너무 대기업 사업장만 보고 있다. 현장에서 금속노조의 존재를 느낄 수가 없다"며 "금속노조에서 현장을 꾸준히 찾아줘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공장에 금속노조 위원장이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노조에서 우리에게 관심 갖고 있구나' 조합원들이 소속감을 얻는다"고 말한다.

홍준홍 운영위원은 불공정한 원하청 관계에 대한 금속노조의 역할도 지적한다. 홍 운영위원은 “자동차 부품사업장 지회들과 완성차 지부들을 한 자리에 모아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논의케 해야 한다”며 “지속적이고 주기적인 대화가 이뤄지도록 금속노조가 노력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배복기 조합원은 “회사가 원청의 금속노조에 대한 반대입장을 계속 내세우며 노조를 흔들고 있다”며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고 워낙 원청 입김이 막강하기 때문에 중소사업장으로서는 감당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한다. 배 조합원은 “원하청 간 불공정 관계가 계속되는 한 센트랄 조합원들은 고용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노조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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