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주기다. 1991년 5월 6일 박창수위원장의 의문사는 지금까지도 의문사로 남아있다. 여름처럼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노동자들의 분노는 그칠 줄 모르게 정부와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안기부의 협박 그리고 회유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해 전노협탈퇴, 연대회의 탈퇴공작을 하였지만 이것을 거부하고 죽음으로 대항한 이가 박창수 위원장이었다.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은 위원장의 죽음이 안기부공작이라고 외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투쟁을 정말로 열심히 하였다. 지역의 많은 동지들이 희생을 감수하면서 정부와의 투쟁을 전개하였고,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고,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면서도 우리들의 의문사진상규명을 요구하였다. 60여일을 싸웠지만 끝내 의문사진상을 규명하지 못한 채 양산 솥발산에 박 위원장을 묻어야만 하였다.

처음으로 전국노동자장을 치루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열사를 보내야만 하였다. 전노협을 사수하여 지금의 민주노총을 건설할 수 있었다고 지금도 우리들은 말하고 있다. 박창수 위원장은 평소에도 노동자들은 산별노조를 건설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강조를 많이 하였다. 그래서 대기업노조가 앞장서서 참세상, 노동해방을 건설해야한다고 몸으로 실천을 하였다.  

▲ 왼쪽이 박창수열사 아버님, 어머님

이를 정부와 회사가 방해하기 위하여 조합원 93%의 지지를 받은 한진중공업노동조합을 집중적으로 회유하고, 협박을 스스럼없이 하면서 공작을 일삼았지만, 박창수 위원장은 거리낌 없이 헤쳐나가는 도중에 의문사를 당하고 말았다.

많은 대기업노조가 전노협을 탈퇴하고 연대회의도 탈퇴하는 현상이 발생되면서 노동자의 산별노조가 더디게 만들어가고, 기업주의, 개인주의, 조합주의로 변신을 하였다. 지금도 대기업노조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변하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을 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민주노총도 반성이 필요하다. 제자리에서 움직임이 없다면 발전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단한 노력과 실천 그리고 희생이 담보되지 않으면 민주노총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래도 한진중공업은 지금까지 변함없이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지키고 있다. 이 모두가 박창수 위원장의 정신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년이 지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퇴직하고 사표쓰고 떠나가고 없지만 그래도 선배들의 이야기 속에 박창수는 살아있는 위원장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 5월 1일 솥발산묘소 참배가 있었고, 4일 박창수열사 20주기 정신계승제를 한다. 열사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열사의 참뜻을 이어받고자 나 자신도 노력해본다. 아마도 노동자가 웃으면서 일을 할 때가 노동해방이 아니겠는가? 해고없는 세상에서 일하고 싶다.

윤국성 /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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