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원달러 환율이 1,100원선을 깨고 1,080원 부근까지 내려왔다. 2008년 3월 베어스턴스 사태 이후 1년 만에 950원에서 1,600원(2009년 3월)까지 수직 폭등했던 환율이 이후 2년이 지나도록 정상화되지 못하고 1,100원선 위에 머무르다 결국 내려온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최근 미국의 달러 증발에 따른 곡물가와 유가의 폭등으로 물가가 급등하고, 부동산 거품 붕괴의 영향으로 전세가가 급등하며 고환율 정책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분출되는 기미가 보이자 어쩔 수 없이 1,100원선을 포기하고 1,080원선으로 ‘찔끔’ 물러났다.

▲ 금융위기 전후 원달러 환율 추이(2008년 1월 ~ 현재)
환율이 하락세를 지속하자, 재계와 보수 언론들은 또다시 “원화 강세가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이는 상투적이고 진부한 엄살에 불과하다. 계속되는 무역수지 흑자, 환차익을 노리고 증시와 채권 시장으로 계속 들어오고 있는 외국 투기자본이 이를 증명한다. 무엇보다 원엔 환율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주력 수출제품이 일본과 겹치는 국내 수출에 있어 원엔 환율의 고공 행진은 ‘천군만마’와 같다. 여기에 대지진으로 인한 일본 기업들의 수출 차질까지 겹쳤으니 ‘겹 호재’를 만난 꼴이다.

“원화강세=수출경쟁력 약화” 진부한 엄살

상황이 이러함에도 이들이 엄살을 떨며 여전히 높기만 한 환율의 하락을 막으려 나서는 것을 보면 ‘극단적 이기주의’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유력 경제신문의 한 기자는 “환율 1,400원대가 마지노선이며 1,300원이면 수출 기업의 절반 이상이 문을 닫는다는 보고서도 기억난다”며 이들의 엄살을 꼬집은 바 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3월 실질실효환율(국가간 상대 물가를 반영한 환율)은 83.3을 기록했다. 이는 적정 환율 수준인 100에 비해 환율이 16.7%(100-83.3) 가량 저평가돼 있다는 얘기다.

▲ 금융위기 전후 원엔 환율 추이(2008년 1월 ~ 현재)
주지하다시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내 수출 대기업들은 환율 폭등으로 막대한 이득을 올렸고, 이를 기반으로 타국 기업들이 감당할 수 없는 낮은 가격과 파격적 판촉 전략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 결과 세계 경제의 파이가 줄어들었음에도 국내 재벌들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크게 높아졌고,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었으며, 세계 시장에서 그 위상이 질적으로 한 단계 상승했다.

반면 국민들은 고환율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과 실질소득 감소로 고통받았다. 국민소득은 1만 7천불까지 떨어졌다 올해에서야 겨우 2만불을 다시 회복했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는 민생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고 있다.

고환율은 실질소득 감소 동반

고환율로 국민의 부가 수출 재벌들로 이전되었음에도, 수출 재벌들이 무언가 내놓았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참으로 어렵다. 연간 수조원 이익을 얻는 현대자동차가, 자신들 편인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연간 수천억원이 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는 대신 “불법 파업” 운운하며 해고와 손배 등 갖은 만행을 일삼고 있다. 지난 2년간의 사상 최대 실적의 수혜가 2~3차 협력업체, 더 아래로 내려간다는 미담을 들어보기가 어렵다.

나날이 치열해지는 자동차산업의 경쟁 속에 현대자동차는 전문업종과 무관한 건설회사를 인수하는 데 5조원을 퍼부었다. 계열사들의 ‘일감 몰아주기’로 막대한 수익을 얻은 현대엠코는 순익의 무려 75%를 배당해 대주주인 정의선의 배만 불려주었다. 국민들이 수출 대기업들의 사상 최대 실적에 대해 “수출이 잘되면 뭐하나”라고 냉소하는 것은 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수출 잘되면 뭐하나

경제가 발전하면서 통화가치가 강해지고, 이에 따라 국민 실질 소득이 증가하는 것이 정상적인 나라다. 그러나 해방 이후 한국 경제는 이와 정반대였다. 경제 위기와 이에 따른 환율 폭등, 이를 통해 국민의 부를 강탈해 수출 재벌에게 넘겨주는 행태가 반복된 것이다. 원달러 환율의 역사는 지난 60년간 ‘평가 절하’의 역사였고, 한국 정부와 재벌들은 지속적으로 ‘원화 약세’를 통해 국민의 부를 강탈, 제 배를 채워왔다.

▲ 연평균 원달러 환율(上. 1964년~현재)
1964년 원달러 환율은 250원이었고, 1980년에는 600원. 2010년에는 1,150원이다. 반면 1977년 달러당 250엔 수준이었던 엔화가치는 점차 강해져 현재 80엔까지 내려왔다. 그 과정에서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5천불을 넘어섰고, 우리나라는 여전히 2만불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 연평균 엔달러 환율(中, 1977년~현재)
그 결과 1977년 100엔 당 185원이었던 원엔 환율은 2010년 100엔당 1,320원으로 무려 7배 이상 뛰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일본 기업과 경쟁한 것이 신기한 것이 아니라, 일본 기업들이 이들과 어떻게 경쟁할 수 있었는지를 신기해해야 할 정도다.

재벌들 원화약세 통해 부 강탈

“환율이 올라 수출이 잘되면 직원인 나도 잘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투쟁해 임금을 5% 올려도, 환율이 10% 뛰어 그 결과 물가가 5~6% 뛰면 임금은 실질적으로 삭감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늘어나는 임금보다, 실질적인 구매력을 중심으로 냉정히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 연평균 원엔 환율(下, 1977년~현재) / 자료: 한국은행
결론은 다음과 같다. 환율이 1,080원으로 떨어졌다. 사측과 보수언론이 “원화 강세”라며 호들갑을 떤다. 이는 엄살에 불과하지만, 임단협으로 그대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임단협에서 노동자들은 사측이 ‘원화 강세’ 운운하며 할 “회사가 어렵다” 타령에 “엄살부리지 마라, 지금도 여전히 고환율이다! 원엔 환율을 보라!”고 반박해야 하며, “고환율로 얻은 성과를 임금 인상, 노동조건 개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협력업체와의 상생에 써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또한 정부의 고환율 정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와 감시의 눈길을 계속해 노동자의 피땀이 재벌 일가와 외국 투기자본에게 강탈당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윗 글은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이 매월 초 발행하는 뉴스레터 <금속희망> 31호(2011년 5월 호)에 담긴 산업동향 글입니다. 일부 토씨 등을 수정하여 그대로 싣습니다 /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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