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인 점거 농성 109일차. 오늘은 일요일.

1년 동안이나 결혼식을 정리해고 투쟁으로 미뤄왔던 현이가 결국 해고자 신분으로 장가를 가는 날. 결혼을 하는 당사자는 물론 부모님들도 하객들도 다들 마음이 얼마나 무거울까? 그 가까웠던 현이와 사수대들이 예식장엘 가고 텅빈 현장을 내려다보는 마음이 아득하다.

35m 높이는 세상과 의외로 멀다. 하고 싶은 말, 보고 싶은 사람, 가고 싶은 곳, 그런 욕망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그리고 결국은 혼자 삼켜야 한다. 늘 노심초사 내 기분을 살피는 사수대들. 밥을 한 끼만 굶어도 불안해하는 조합원들. 상경투쟁을 가서도 수시로 소식을 묻고 전하는 조합원들 그들이 있어 나는 109일을 견딜 수 있었다.

정규직노조에서 배치했던 사수대마저 철수했다는 강병재 동지의 소식을 듣던 날. 그 마음을 뭐라 가누기가 힘들었다. 늘 멀미가 나도록 흔들어 대는 바람. 감전위험 때문에 천막을 칠 수도 없어 그 무수한 비바람을 맨몸으로 견뎌야 하는 154000볼트 송전탑. 그 위에 하청노동자 하나가 올라있다. 49일째.

경찰이 외부와의 교신을 막는다는 이유로 휴대폰 충전도 끊긴 상황에서, 지키는 이 하나 없는 막막한 허공에 혼자 나부끼고 있을 그의 외로움과 고통을 나는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다. 비바람이 사납게 크레인을 흔들어대는 날도 그저 강병재 동지에 비하면 나는 호강이다 생각하며 견딜 뿐이다.

‘자본의 이윤보다 인간이 우선이다.’라는 그의 외침은 부당한가. ‘해고된 하청노동자들을 복직시켜라’는 그의 구호는 틀렸는가. 그럼에도 그는 외롭다. 세상과 철저히 고립돼있다. 그의 외로움을 외면한 채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우리’가 부끄럽고 죄스럽다.

더 이상 그를 홀로 두지 말자. 누구든 그의 곁을 지키자. 그리하여 강병재의 정당한 외침이 민들레홀씨처럼 세상에 흩날리게 하자. 그리하여 오늘도 곳곳에서 부당함에 숨죽이고 속으로 우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눈물이 개인의 서러움이 아닌 조직의 희망이 되게 하자.

강병재 그 외롭고 우직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땅을 디디고 내려올 수 있는 사다리가 되어주자. 그를 살리는 일이 노동운동을 살리는 길이고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다.

김진숙 /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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