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 시민을 싣고 전주 시내를 달리고 있어야 할 운수노동자들이 4개월 넘게 운전대를 놓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준) 민주버스본부 소속 전일, 신성, 시민, 부안스마일 등 전북지역 일곱 개 사업장 7백 여 노동자들이 근로시간준수 등을 외치며 지난 해 12월 8일 공동파업에 들어갔다. 지난 18일 파업 1백 32일 째를 맞이하고 있는 이들 노동자들을 만나봤다.

▲ 전주공설운동장 앞 건물에 설치된 전북 버스 파업 고공농성장. 신동준
전주공설운동장 인근 농성장에서 만난 이들은 “하루 15시간 일해도 월급은 1백 20만원이고 그마저 제 때 나오지 않았다”며 “회사에 항의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노예처럼 살았던 게 너무 억울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체불임금 지급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시간 준수 △식사시간 보장 △민주노조 인정 등이다. 곽은호 제일여객지회장는 “소박하고 정당한 요구인데도 회사는 말도 안 된다고 우기고 있다”며 분노했다.

회사에 항의한번 못해봤던 세월

곽 지회장은 "장시간 노동에 식사도 제 때 못하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며 "버스사고가 전북에서 제일 많이 나는 것은 이런 열악한 노동환경 탓"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노조로 인해 버스운행보조금 갈취 같은 온갖 비리가 드러나고 사장 마음대로 못하게 될까봐 사측이 전전긍긍하고 있다"며 "그래도 우리는 대화로 풀려고 했는데 회사가 민주노총 용납 못한다, 너희 요구 절대 못 받아준다 계속 버티니 결국 파업까지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파업 장기화의 진짜 원인도 회사의 민주노조 불인정과 교섭거부에 있다고 덧붙인다.

이들은 지난 해 봄까지만 해도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이었다. 제일여객지회의 경우, 작년 7월 29일 통상임금 지급 등을 요구하며 지회 자체 파업을 벌였다. 곽 지회장에 따르면 사측은 경영난을 내세우며 월 25만 원 가량 임금을 깎고 통상임금 미지급분을 위로금 형식으로 일부만 지급하겠다고 지회에 제안했다. 당시 회사는 경영진 임금을 70% 인상시켰다. 그리고 파업 일주일 후, 한국노총 전국자동차노련 전북지부가 지회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측의 뜻을 받아들이겠다며 지회협상을 일방적으로 타결시켰다.

당시 노조의 직권조인

"회사에 대한 오랜 분노가 오히려 어용노조 때문에 터졌다"는 곽 지회장. 그는 “회사를 위해 일하는 어용노조가 아닌 노동자를 위한 제대로 된 노동조합을 해보고자 작년 8월 12일 민주노총으로 조직전환을 결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제일여객지회는 버스사업장 중 조직형태변경을 통해 지회 조합원 전체가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전환한 첫 번째 사례다.

▲ 파업중인 전북 버스노동자들이 전주공설운동장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신동준

나머지 여섯 곳 지회 조합원들도 한국노총 전국자동차노련 전북지부의 반복되는 ‘직권조인’ 등에 반발해 지난 해 6월에서 8월까지 민주노총으로 상급단체를 바꿨다. 현재 이들 여섯 곳에는 한국노총 소속 기업노조 조합원과 산별노조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준) 소속 조합원이 공존해 있는 상태다. 곽 지회장은 “우리야 지회 전체가 민주노총으로 왔지만 다른 지회는 복수노조 형태로 내부 갈등이 심각하다"고 전한다.

공공운수노조(준) 민주버스 박사훈 본부장은 “전북버스파업은 단순히 전북지역 버스사업주와 버스노동자의 다툼이 아닌 복수노조 시대의 예고편”이라며 “버스총자본 대 노동의 싸움이자 어용노조 대 민주노조”라고 이번 파업을 규정한다. 이어 박 본부장은 “버스 파업의 장기화에는 버스자본과 결탁해 있는 지역 정치인들 탓이 크다”며 전북도지사와 전주시장은 물론 지역 국회의원이 모두 속해 있는 민주당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버스자본과 결탁해 있는 지역 정치인들

박 본부장은 “정부의 반노동 정책은 물론 버스사업주와 한 통속인 민주당 때문에 문제해결이 안 된다”고 지적한다. 그는 “지난 10년간 민주당이 노동정책을 후퇴시켰지만 이제와 과거에 대해 물고 늘어지고 트집 잡자는 것이 아니”라며 “민주당 스스로 반성한다고 말했고 그래서 제대로 반성할 기회를 여러 차례 줬지만 계속 말장난만 할 뿐 진정성을 확인할 수가 없다”며 답답해했다.

▲ 곽은호 제일여객지회장. 신동준
제일여객 곽 지회장 역시 “요즘 민주당이 보편적 복지를 내세우고 있는데 결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돼야 복지도 향상되는 것”이라며 “지방자치단체와 국회가 회사를 교섭장에 나오게 하는 것조차도 못하냐”고 말했다.

그는 "이 곳에서는 민주당이 여당이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면서 "그런데도 전북도청은 책임회피로, 전주시는 행정대집행과 폭력진압으로 나오니 참 답답한 노릇"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래도 곽 지회장은 "포기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사장이 막 부리는 노예로 살았고 억울해도 묵묵히 일만 했죠. 노조가 있었지만 달리 어용이겠어요. 회사가 불법파업 운운하면서 우리를 매도하고 파업 길어지니 여러모로 힘들죠. 그래도 스스로 민주노조 세우고 회사에 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게 우리에게는 중요합니다. 이제야 사람같이 사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곽 지회장. “이번 파업을 통해 내 노동이 지닌 가치와 공공성을 제대로 알게 됐는데 이대로 끝낼 수 없다”고 강조한다.

“노조 있어도 달리 어용이겠냐”

지난 3월 26일 전주공설운동장에 20미터 높이 망루를 지어 올라간 호남고속지회 김현철 쟁의대책위원장은 “민주노조를 세우고 파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연대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살았을 것”이라며 “전주 코아백화점과 현대차비정규 투쟁에 연대하러 가고 우리 싸움에 연대오는 민주노총 조합원들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고 말한다.

망루 위에 올라간 날부터 지금까지 단식농성중인 호남고속 김 위원장은 “위에 올라와보니 같은 상황인 동지들의 심정을 조금 알 것 같다”며 곡기를 끊은 자신보다도 대우조선과 한진중 고공농성자들을 더 걱정한다. 그는 “김진숙 지도위원께서 크레인 위에 올라가기 전에 교육을 한 번 오셨다”며 “지금도 조합원들이 그 때 들었던 내용을 얘기하고 되새기며 힘을 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 고공 단식농성 중인 호남고속지회 김현철 쟁의대책위원장. 신동준
“김 지도위원께 배우고 싶고 듣고 싶은 것들이 아직 너무 많다”며 “부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전북버스에 들러주시길 바란다”고 안부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빨리 승리해서 지역의 다른 투쟁사업장은 물론 부산 한진중공업에도 힘 실어주러 가고 싶단다.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라는 말이 딱 떠올랐다.

“민주노총 보면서 많이 배웠다”

김 위원장은 “금속노조의 지난 투쟁이 우리 민주노조의 역사인만큼 앞서 싸워준 금속노동자들이 자랑스럽다”며 “현대차 전주공장 노동자들, 특히 녹록치 않는 상황에도 계속 연대해주는 비정규지회에 너무 고맙다”고 말한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간혹 이들에게 묻는다. “월급 더 달라고 파업하는 거죠?” 물론 이번 파업에 최저임금수준인 월급을 인상시켜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가장 큰 바람은 사측과의 대화, 그저 교섭 한 번 제대로 해보자는 것이다. 회사와 마주 앉아 동등한 입장에서 자신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얘기하겠다는 노동자들의 바람이 그렇게 무리한 것일까.

민주노총과는 한 자리에 앉아있기조차 싫다는 회사. 그에 맞서 당당히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전북지역 버스노동자들. 요구는 소박하지만 수 십년 노예의 삶을 스스로 끊어내며 내딛은 그들의 첫 발걸음은 위대했다. 전주에서 승리의 소식이 곧 들려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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