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명이 몇 개를 얼마의 속도로 제품을 생산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이른바 ‘적정 노동강도’. 이것을 모든 제조업 사업장 작업자 스스로 결정할 수는 없을까? 이와 관련해 금속노조(위원장 박유기)가 적정 노동강도 산정기준을 담은 지침서 제작을 추진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같은 지침서 발간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다.

노조는 14일 낮 3시 노조회의실에서 근무형태변경추진팀 7차 회의를 열어 이달 말까지 ‘맨아워 산정기준 매뉴얼’을 제작해 배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맨아워(M/H)란 노동자가 1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작업분량을 뜻한다. 노조는 이 지침서에 노동강도 교섭체계 개선방향과 적정한 노동강도 수준을 산출하기 위한 기술적 가이드라인을 담는다는 계획이다.

한국 최초 맨아워(M/H) 지침서

노조는 지난해 12월 24일 근무형태변경추진팀 6차 회의 때 현장의 노동강도 협상 체계를 지원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올 4월까지 집중적으로 펼치기로 정했다. 이날 회의 때 노조는 이 연구에 △맨아워 학문 전공 공학자 △사회학 전문가 △해외 작업현장 실사 및 교섭체계 분석가 등 외부 전문가를 동참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날 결정한 전문가는 인천대학교 백승렬 교수, 한국노동혁신연구소 이문호 박사,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임상혁 소장(의사),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이윤근 박사 등 네 명이다.

▲ 14일 낮 3시 노조회의실에서 근무형태변경추진팀 7차 회의 때 인천대 백승렬 교수가 맨아워 교섭체계 개선방향에 대한 초안을 설명하고 있다. 김상민
이들 전문가들은 지난 2월 11일 현대차지부를 방문해 현장 맨아워 노사협상을 둘러싼 실사를 마쳤다. 이어 이들은 지난 전미자동차노조(UAW)와 캐나다자동차일반노조(CAW), 그리고 독일금속노조(IG Metall) 소속 자동차 회사 맨아워 노사 협상 관련 문헌자료를 검토한 뒤 지난 3월 첫 주 일주일 동안 독일에 직접 실태조사까지 다녀왔다.

이들과 함께 독일에 다녀온 하영철 노조 정책국장은 7차 회의 때 “폭스바겐과 오펠공장 실사를 거쳐 독일금속노조(IG Metall) 담당자와 표준시간 산정 절차 관련 레파(REFA) 관계자, 맨아워 관련 연구기관과 표준시간을 정하는 엔지니어들을 직접 만나고 왔다”고 보고했다.

미국 캐나다 독일 등 실태조사 반영

인천대 백 교수는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이 더 빨리 생산케 하려는 게 자본가들의 욕심인데 여기에 노조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며 “독일은 작업시간을 노동자가 스스로 결정하는 체계를 70년대부터 시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백 교수는 “독일 등 다른 나라의 경우 필요여유시간, 분진, 소음, 화장실, 교대에 따른 고려, 주야 편차에 따른 고려가 모두 포함되는 노동강도 산정 기준이 마련돼 있다”며 “예컨대 독일은 야간노동 때는 주간노동의 30%수준의 노동강도 수준으로 일하도록 기준 잡혀 있는 게 그런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합의된 적정 노동강도 기준이란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남양연구소 등 완성차 연구소에서 신차양산 설계가 완료되고 생산공장에서 라인설계와 모듈 및 외주여부가 다 정리된 뒤에야 맨아워 노사협상이 겨우 시작되는 수준이다. 백 교수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맨아워를 만들어 노조에 던지는 형태”라고 말한다. 이러다보니 해당 공장 인원수 지키기에 급급한 채 회사 논리에 끌려다니는 게 노조 쪽의 모습이었던 셈이다.

백 교수는 “완성차 연구소 등에서 공수설계가 개시될 때부터 노조가 개입해야 한다”며 “노조가 마련한 노동강도 기준은 물량변동에 따른 배치전환 기준도 되며 사내모듈 등 일자리창출방안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공수설계 때부터 노조 개입하라”

적정 노동강도 산정과 관련해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이 박사는 △작업자세 △작업의 반복성 △작업시 들어가는 힘 △작업을 방해하는 요인 △정신적 긴장 △작업의 단조로움 여부 △눈의 피로 △공기 조건 △소음 △작업장의 온도와 습도 △작업자의 성별 △교대작업 여부 △연장근무 여부 △휴식시간 여부 등이 모두 반영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조는 이번에 제작하는 지침서에 이를 상세히 담는다는 계획이다. 지침에 담긴 가이드라인을 넘을 시 작업환경을 개선하든 맨아워 조정으로 노동강도를 낮추고 추가 인원투입을 회사에 요구하라는 것.

▲ 우리나라의 경우 합의된 적정 노동강도 기준이란 것이 없다. 회사가 일방적으로 맨아워를 만들어 노조에 던지는 형태다. 자동차 컨베이어벨트에서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백 교수는 독일의 경우 이 같은 적정 노동강도의 기술적 가이드라인을 측정 할 때 하위 5%의 여성노동자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아울러 백 교수는 “마련된 적정 노동강도 기준에 따라 작업한 현장 조합원 누구든 이의제기하면 그 기준을 재 논의할 수 있도록 단체협약에 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일금속노조와 전미자동차노조 및 캐나다자동차일반노조 모두 이것이 단체협약에 규제돼 있다는 게 백 교수의 설명이다. 백 교수는 독일 폭스바겐의 경우 노동강도를 측정하는 노조 현장위원이 회사 설계팀에 함께 들어가기도 한다고 덧붙인다.

환경개선하든지 노동강도 낮추고 인원 늘리든지

노동강도는 작업장의 작업조직과 임금 및 고용문제까지 모두 직결돼 있는 개념이다. 적정 노동강도를 넘을 경우 회사가 작업설계를 다시 하든 임금을 더 주든 사람을 더 투입하든 해야 되는 문제이기 때문. 때문에 적정 노동강도 산정기준이 담긴 이번 노조 현장대응 지침서는 현장마다 파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노조는 이번 지침서에 노조와 지부, 현장대의원과 조합원의 역할도 세부적으로 담는다는 방침이다.

백 교수는 “적정 노동강도를 산정하는 매뉴얼화 된 기준을 노동자가 제대로 알수록 회사가 더 불리해진다”고 강조한다. 백 교수는 “이를 통해 회사에 작업환경개선을 요구하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놀고먹는다’는 회사의 악의적인 이데올로기도 무력화할 수 있다”고 덧붙있다. 이번에 발간되는 지침서가 노동강도를 높이자거나 인원을 줄이자는 회사 쪽 논리에 대응하기 위한 제대로 된 무기로 활용될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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