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삼십 분. 대표자급 노조간부 연설 서너 개, 초청가수 노동가요듣기 두 어 곡. 그리고 사회자 호령에 맞춰 잇따르는 구호제창. 노조가 펼치는 집회의 거의 똑같은 풍경이다. 그런데 충남지부(지부장 장인호)가 서울에서 이색 집회 풍경을 연출해 눈길을 끌었다.

▲ 4월13일 서울 르노삼성차 본사 앞에서 열린 충남지부 실천투쟁단 1차 집중투쟁에서 1부 집회를 마친 조합원들이 거리에서 도시락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신동준

지부 조합원 2백여 명은 4월13일 지부 소속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지회장 이택호) 조합원들의 싸움을 지원하기 위해 상경투쟁을 벌였다. 이들이 모인 곳은 서울 남대문 근처 프랑스문화원 앞. 건너에는 프랑스 발레오자본이 제품을 납품하고 있는 르노삼성자동차 본사도 있다.

낮 2시. 집회 시작과 동시에 대형 윷놀이판이 등장했다. 말이 지나가는 윷판에 1부터 30까지 숫자가 적혀있다. 매번 연설과 노동가요만 듣던 집회참가자가 한 명 씩 무대로 나와 윷을 던지고 말이 전진한 곳에 써있는 숫자에 맞는 ‘준비된 미션’을 수행하는 게 프로그램이다.

▲ 4월13일 서울 프랑스 문화원 앞에서 열린 충남지부 실천투쟁단 1차 집중투쟁 2부 집회에서 윷놀이가 진행되고 있다. 신동준

▲ 4월13일 서울 프랑스 문화원 앞에서 열린 충남지부 실천투쟁단 1차 집중투쟁 2부 집회에서 벌어진 윷놀이에서 벌칙을 받게된 지부 사무국장과 한 조합원이 노래와 춤을 선보이고 있다. 신동준

‘준비된 미션’은 무엇이 있을까? 일단 웃고 즐길만한 것부터. 충남지부장 업고 집회주변 한바퀴 돌기. 충남지부장과 두 글자 끝말잇기해서 진 사람이 투쟁구호 외치기. 청양고추 두 개 먹고 구호외치기. 지부 사무국장 불러서 함께 노래하고 춤추기. 그리고 즉석 단독 댄스에 엉덩이로 이름쓰기 까지. 윷을 던진 집회참가자들, 하라는 대로 다 한다.

이런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집회 때 흔히 볼 수 있는 연설도 ‘미션’에 있었다. 그런데 준비된 연설이 아니다. 윷을 던져 윷말이 도착한 곳 번호에 걸린 ‘연설하기 미션’. 그렇게 현대차사내하청지회 교선부장과 대한칼소닉지회장이 즉석해서 연설을 한자락 한다.

▲ 4월13일 서울 프랑스 문화원 앞에서 열린 충남지부 실천투쟁단 1차 집중투쟁 2부 집회에서 벌어진 윷놀이에서 벌칙을 받게된 한 조합원이 청양고추 두 개를 한꺼번에 먹고 있다. 신동준

▲ 4월13일 서울 프랑스 문화원 앞에서 열린 충남지부 실천투쟁단 1차 집중투쟁 2부 집회에서 조합원들이 집단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고 있다. 신동준

특히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 한 조합원에게는 프랑스문화원 입구 앞에 혼자서서 큰 소리로 자기 주장을 펼치라는 임무가 떨어진다. “프랑스 악질자본이 아무리 탄압해도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이 조합원이 셔터가 내려진 프랑스문화원 입구에 대고 분노를 터뜨린다. 이날 사회를 맡은 발레오공조코리아 정지덕 조합원은 “미션 중에 이곳 문화원 속 커피숍 커피 한 잔 먹고 오기도 있었는데 프랑스문화원이 입구셔터를 내려 그것을 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웃으며 말한다.

현대차사내하청지회와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 임원 즉석 합동 노래하기도 펼쳐졌다. 노조 김형우 부위원장과 이날 참석한 노조사무처 노래하기 임무도 있었다. 윷놀이만 있었던 건 아니다. 순대 등 먹을거리도 참가자들에게 나눠졌다. 흥겨우면 놀고, 출출할 땐 먹고 화나고 분노할 땐 싸우는 게 본능이고 그게 한국문화라는 게 사회자 설명이다.

▲ 4월13일 서울 프랑스 문화원 앞에서 열린 충남지부 실천투쟁단 1차 집중투쟁 2부 집회에서 벌어진 윷놀이에서 벌칙을 받게된 이택호 발레오공조지회장과 부지회장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신동준

한 조합원이 윷을 던지고 말이 한 숫자에 섰다. 사회자는 집회대오를 모두 일으킨다. 그리고 집회대오는 프랑스문화원을 향해 서서 프랑스자본 발레오에 맺힌 한과 분노를 폭발하는 함성과 욕설(?)을 자유롭게 ‘배설’했다.

그렇게 한 시간 삼십 분이 지났다. 여느 때와 같은 시간에 연설과 노래, 그리고 구호와 함성, 어느 것 하나 빠뜨리지 않았다. 집회 참가자가 정말 그 집회에 ‘참여’했다는 것이 달랐을 뿐. 어느 때보다 웃음과 박수가 많았던 집회이기도 했다. 노동가요를 부르는 이른바 민중가수 박준은 “참가자들이 군대식으로 도열해 있지 않고 자유롭고 옹기종기 모여있으면 더 좋겠다”고 말한다. 진정한 ‘난장’이란 그런 것일 수도 있다.

▲ 4월13일 서울 프랑스 문화원 앞에서 열린 충남지부 실천투쟁단 1차 집중투쟁 2부 집회에서 가수 박준씨가 신명나는 노래 공연을 하고 있다. 신동준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는 지난 2009년 10월30일 프랑스 발레오자본의 일방적인 공장청산 뒤 1년 6개월 째 거리투쟁을 벌이고 있다. 발레오자본은 한국공장을 청산한 뒤 중국공장에서 같은 제품을 한국의 르노삼성자동차에 저가로 납품하고 있다. 이들이 르노삼성자동차 본사 앞을 찾은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11일 천안지방노동청 주관으로 회사 청산대리인과 1년 6개월 만에 대화가 성사되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 청산대리인은 “청산에 따라 공장 안 생산설비를 바깥으로 뺄 수 있게 협조해달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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