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7일 한 청년이 용광로 쇳물에 녹아 숨졌다. 그 뜨거운 고통이 한 네티즌의 시를 타고 세상에 울려나갔고, 시구에 있는 것처럼 어머니가 어루만질 수 있게 하자고 청년의 동상 건립이 제안됐다. 그러나 벽은 두꺼웠다. ‘일하다 죽은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것이 무슨 기억할 일이냐’는 목소리들이 거세게 일어섰다.

조각가의 꿈은 사라졌다. 그러나 조각가에게는 금속노동자와 산재노동자, 그리고 건강권 활동가라는 친구가 생겼다. 이들은 2011년부터 4.28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을 시민의 아픔으로 만드는 일을 해보자며 문막에 있는 조각가의 작업실에서 술잔을 부딪쳤다. 이 얘기는 지난해 9월 15일자 금속노동자 칼럼(아직 ‘다수’가 아닌 어느 조각가의 좌절)에서 이미 다뤘다. 오늘은 그 다음 이야기다.

커다란 문화제도 기획해 보았으나 예산 문제로 좌절됐다. 몇 번인가 주저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도 어찌어찌 앞으로 조금씩 나아갔다. 노동자의 죽음을 개인과 가족의 아픔, 동료의 아픔, 그리고 사회의 아픔으로 기억하게 하자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얼마 전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인권단체연석회의 등이 발기인이 돼 ‘4.28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 시민위원회(이하 시민위원회)’ 구성을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시민사회단체들에게 참여해달라고 제안했으며, 시민과 노동자 개개인들도 자유롭게 참여하도록 할 계획이다. 그 힘을 모아 4월22일부터 28일까지 추모기간 기획과 행사를 치르려 한다. 22일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산재사망 주제 토론회를 거쳐, 28일 시민과 노동자가 참여하는 추모문화제로 마무리를 한다.

시민위원회를 준비하면서 ‘어떻게 해야 아픔을 나눌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다 ‘무엇이 아픈가’라는 질문에 도달했다. 눈을 감고 떠올렸다. 제일 먼저 2008년 1월, 40명의 건설노동자가 사망한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의 코리아2000 냉동창고 화재참사가 떠오른다. 당시 한국인 건설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이 불에 타고 가스에 질식해 쓰러졌다.

더 최근의 일은 없었을까? GS건설이 시공 중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 건설현장은 5명째 사망한 죽음의 현장이다. 건설노동자의 죽음 말고는 없을까? 지난 2월13일 오후 6시30분, 영등포 문래동 사거리에서 버스에 치여 숨진 18세 피자배달 노동자가 있었다. 대학 입학을 한 달도 남기지 않고 사망한 아들의 죽음 앞에, 제대로 된 헬멧을 제공해야 한다고 어머니는 울었다.

수많은 죽음들, 기억해야 할 죽음들

죽음들이 이어진다. 2011년 1월 11일 아침 6시 44분 경 삼성전자 기숙사에서 뛰어내린 고 김주현은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비인간적 조직이 죽인 과로 자살이다.

▲ 해고에 의한 살인도 있다. 쌍용자동차에서 일하던 고 임무창 조합원이 무급휴직자가 되고 나서 2010년 4월25일 아내가 투신자살을 했다. 두 아들과 함께 어떻게든 살아보려던 고 임무창 조합원은 2011년 2월 26일 집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쌍용자동차에서 해고에 의해 발생한 15번째 사망이었다. 2월28일 쌍용차공장 앞에서 열린 임무창 조합원 노제에서 몸짓패 선언이 추모공연을 하고 있다. 신동준

해고에 의한 살인도 있다. 쌍용자동차에서 일하던 고 임무창 조합원이 무급휴직자가 되고 나서 2010년 4월 25일 아내가 투신자살을 했다. 두 아들과 함께 어떻게든 살아보려던 고 임무창 조합원은 2011년 2월 26일 집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쌍용자동차에서 해고에 의해 발생한 15번째 사망이었다.

죽음은 더 있었다. 제주도의 한 병원에서는 2009년에 15명의 간호사가 임신했다가 5명이 유산했고, 2010년에는 열 명 중 세 명이 유산했다. 부족한 인원으로 심각한 강도의 노동에 시달리던 엄마의 뱃속에서 아이들이 죽어갔다.

학습지 교사의 뱃속에서도 죽음이 있었다. 노동자 엄마의 뱃속에서 그렇게 아이들이 죽어갔다. 이것이 어찌 산업재해에 의한 사망이 아닐 수 있을까? 아프고, 또 아팠다. 죽은 자와 그 가족의 고통만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아픔이었다. 동료들이 나누고 사회가 나눠야 비로소 치유할 그런 아픔이었다.

그래서 추모 기간 내내 ‘당신의 빈자리, 기억하러 갑니다’라는 온라인 및 오프라인 추모행동을 진행할 계획이다. 우리 사회의 노동자 죽음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 아픔이 어찌 개인의 것이겠느냐고 묻는 행동이다.

건설노동자와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경기도 이천시 고속도로변의 냉동창고 앞에 40송이의 국화꽃을 들고 가려 한다. 청년유니온과 피자헛 노동조합이 문래동 사거리에 국화꽃 한 송이를 들고 가려 한다. 여의도 건설현장에, 삼성전자의 기숙사가 보이는 그곳에, 쌍용자동차 앞에, 제주의 병원에. 환영철강의 용광로 청년 뿐 아니라 사회가 아파해야할 죽음들이 여기 있었고, 당신의 빈자리를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러 갈 것이다. 추모의 행동은 사진과 동영상으로 기록되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전파될 계획이다.

자, 이제 우리는 뭘 해야 할지 생각해보자.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에도 수많은 죽음이 있다. 당신의 빈자리를 내가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자. 고인이 일하던 그 자리에 국화꽃 한 송이 두고 눈을 감아보자. 사람이 죽었다. 그 자리 거기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또 죽지 않는다.

* 당부의 말씀 : 4.28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 시민위원회는 개인 추모위원을 모집중입니다. 1인당 5천원의 추모기금을 납부하면 추모위원이 됩니다. 먼저 가신 동료를 기억하며 추모위원으로 힘을 모아주십시오. 

김신범 /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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