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조선해양 하청노동자 7명은 2월7일 설 연휴를 마치고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다. 짧게는 4년, 길게는 7년을 매일 드나들던 출입문이었다. 하지만 회사 경비는 이들의 출입을 막았다. 이들이 일하던 하청업체가 폐업했고, 새롭게 선정된 업체는 고용승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STX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신규업체가 고용승계를 거부한 것은 이 7명 뿐이었고, 이들은 모두 금속노조 조합원들이었다.

▲ 오민수 STX조선 비정규직 조합원. 강정주
“우리는 사실 노동조합이나 비정규직, 이런거 전혀 몰랐습니다. 그냥 같이 일하는 사람들하고 다르게 너무 차별을 받으니까 지노위(지방노동위원회)도 가고, 노조도 가입하고 그런거죠.” 3월30일 금속노조 경남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오민수 조합원은 노조 가입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조합원들이 일하던 곳은 STX조선 물류지원팀이었다. “철판만 빼고 각종 자재, 부품까지 배 만드는데 필요한 물품은 다 관리하고 지원하는 일을 했죠. 이게 그냥 단순 업무가 아니라서 경력도 있어야 하고 사람을 쉽게 못 바꿉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4년 넘게 일했죠.” 오 조합원은 업무의 내용이나 환경까지 정규직과 하나도 다르지 않게 일했다고 설명했다.

같이 일하고 상조회도 같이 하는데… “우리는 ‘개잡부’였다”

“처음 입사했을 때 업체에는 사장 같은 사람도 없었어요. 일 할 때 다 원청 관리자랑 얘기하고 배 설계에 문제가 생겨도 바로 처리해야 하니까 관리자랑 직접 싸워가면서 일했거든요.” 작업도 정규직과 같이 하고, 밥도 같이 먹고, 야유회도 같이 갔다.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같이 상조회 회원으로 가입하기도 했다.

“원래는 직영과 하청은 명찰이랑 작업복 질이 다릅니다. 근데 우리는 바로 옆에서 같이 일하니까 명찰과 작업복을 직영이랑 똑같이 주더라구요. 다른게 없어요.” 해고된 하청노동자들과 공장 안의 정규직, 그냥 세워두고 보면 차이가 하나도 없었다는게 정태창 조합원의 설명이다.

하지만 그것은 겉보기 뿐이었다. 오 조합원은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스스로를 ‘개잡부’라고 부릅니다. 시키면 시키는대로, 안잘리려면 ‘지붕 고치러 가라’면 갔다가 ‘창고 가라면 갔다’가 하니까요. 자르는데 이유가 없다. 원청 맘에 안들면 잘리는 거”라고 현장 상황을 설명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임금에도 체계가 없었다. 따로 요구할 것도 없고 원청이 올려주면 올려주는 대로, 안올리면 안올리는 대로 받았다. “맘에 드는 사람은 5만원 더 주기도 하고, 우리처럼 미운 짓 하면 안올려주고 그러는거죠 뭐.”

▲ 정태창 STX 조선 비정규직 조합원. 강정주
“금속노조 선전물, 딱 우리한테 필요한 내용이더라”

더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당사자들은 하소연 할 생각도 못하고,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른다는 것. “금속노조는 정규직만 하는 건 줄 알았어요. ‘조합원=정규직’ 이렇게 생각한거죠. STX에도 노조가 있는데 당연히 정규직을 위한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차별을 겪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개인적으로 노무사 찾아갈 생각만 했지 노조에 가 볼 생각은 아예 못했죠.” 오 조합원은 하청노동자에게 노조를 만들고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딴 세상 얘기라고 얘기했다.

정 조합원도 “경남지부 사무실 처음 와보고 우리한테 필요한 선전물이 정말 많더라구요. 다 우리가 알아야 할 내용이고 부당하게 대우받고 있다는게 다 나와있는데 이런걸 정작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받아볼 기회도 없다는게 안타까웠다”고 덧붙였다.

모르는 것도 문제지만, 알아도 ‘밥줄’이 걸렸기 때문에 실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STX에서도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 년 전인가, 한 사람이 노조 만들자고 유인물을 돌렸어요. 그런데 유인물 돌렸다는 소문이 나자마자 해고됐다고 하더라구요.” 오 조합원은 그 때 일도, 지금 자신들이 해고된 것도 하청 노동자들이 아무것도 못하게 하기 위한 본보기라고 말한다.

어딜가나 비정규직, 하청인생 끝장내고 싶다 

그래서 이들은 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 심판을 청구하고, 노조를 만들고,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법원에 접수하면서 “해고될 것도 다 각오했다”고 얘기한다. 하청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하는 것이 그만큼 탄압도 심하고 어려움이 많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 STX조선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3월30일 금속노조 비정규직투쟁본부 조합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투쟁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강정주

“어쩌면 회사는 돈 몇 푼 더 주면서 노조 포기하고 소송 취하하면 다시 받아주겠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는 못합니다.” 오 조합원은 자신들이 이런 각오를 하게 된 이유를 “어차피 지금 다른데 가도 다 비정규직입니다. 이대로 다시 회사에 들어가도 지금이야 돈도 더 주겠지만 내년에 또 해고될 지 모르는 일”이라고 말한다. 비정규직만 점점 더 늘어나는 현실에서 비정규직이 스스로 나서서 자신들이 처한 문제를 바꿔야 하고, 거기에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관심과 지지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이 노동자들은 노조 활동을 시작하고 뭔가 하지도 못한 채 해고됐다. 조합원들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해고됐으니 현장으로 돌아가는데 당연하다고 말한다. 현장에 돌아가면 노조가 뭔지도 모르고 움츠려 있는 하청노동자들이 자유롭게 노조활동도 하고 권리도 되찾을 수 있는 싸움도 해볼 참이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투쟁도 이렇게 불이 붙을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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