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민선 지방자치 5기에 이르렀음에도 지방자치가 ‘이 모양 이 꼴’일 줄은 몰랐다. 제2의 도시라는 부산의 시의회가 이렇게 엉망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놀랐다. 단 한 명의 시의원이 4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는지 놀라웠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어찌 이렇게도 꼼꼼히 기록해냈는지도.

▲ 책표지
이 책은 김영희 전 부산시의원이 지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기록한 의정일기다. 지은이는 사상공단 고무공장 미싱사, 고려피혁 노동조합 간사, 전노협 부산노련 교육부장,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부소장으로 활동한 부산의 노동운동가로 2006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부산시의회 5대 시의원이 됐다.

사회운동에 기반을 둔 의정활동 ‘모범답안’

책은 김 전 의원이 버스로 영도다리를 건너 연산동의 부산광역시의회로 첫 ‘출근’을 한 2006년 7월 5일의 일기로 시작한다. 앞으로 4년 동안 다녀야하는 이 ‘직장’에 그와 친분이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47명 의원 중 45명이 한나라당 소속이다.

“의회 안에서 나를 제외하고는 자기들끼리 다들 잘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나만 혼자 던져진 느낌이었다.”
완벽히 혼자인 상황. 그는 움츠러들었고 조심스러웠으며 주눅 들었다. 하지만 노동운동으로 갈고닦은 실력이 어디 가랴. 그는 첫 타석에서부터 장타를 날렸다. 7월 중순에 열린 임시회 첫 시정질문에서 지하철요금 인상근거가 없음을 추궁해 시장으로부터 요금을 인상하지 않겠다는 답변을 받아낸 것이다.

그는 혼자였으되 혼자가 아니었다. 김영희 전 의원의 의정활동은 전교조, 공공노조, 장애인운동단체와 같은 사회운동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함께 문제를 파헤치고 그 힘에 기초해 의회에서 역할을 하는 방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 김영희 전 부산시의원
이 책에서 보이는 부산시와 시의회의 모습은 정말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도 밟지 않는 뻔뻔함, 특정 대학에 명백한 특혜를 주거나 조례를 위반하면서까지 슬그머니 예산을 편성해 넣는 대담함….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은 이 책 추천사를 통해 “적어도 진보정당의 의원이라면 이런 기록과 책 발간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지금 지방의회로 출근하고 있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지방의원들은 기록자로서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어느 디지털카메라 광고카피처럼 기록은 기억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기록해야 할 것 한 가지. 이 책은 부산의 출판사 ‘산지니’에서 나왔다. 서울과 파주 등 수도권에 위치한 출판사가 80% 이상을 차지하고 신간 발행부수로 따지면 99%를 차지할 정도로 끔찍한 ‘서울공화국’에서 이 출판사가 보여주는 모습은 경이롭다. 이 출판사는 문을 연 지 5년여 기간 동안 단행본과 문예지 120여 종을 출간했다. 지역에 기반을 두되 전국과 세계를 오가며 ‘팔리는 책’보다 ‘필요한 책’을 내는 이 출판사의 뚝심에 박수를 보낸다.

윤재설 / 민주노총 전 선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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