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나는 처음에 절대 안한다 했었지. 정년 3년 앞두고 이 나이에 노조니 파업이니 하게 될 줄 알았겠어요?”

10년 넘는 세월, 먹고 살기 위해 10시간 넘게 일했고 휴일에도 나오라면 나와서 일하기 바빴던 노동자. 이제 이들이 설거지 하면서 파업가를 부른다. 옆에 앉은 조합원 손을 꼭 잡으면서 ‘동지애’ 운운하기도 한다. 노조 만든 지 6개월. 전면파업 26일 끝에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현장으로 돌아간 담터 노동자들. 지난 22일 경기도 포천의 한 식당에서 금속노조 서울지부 경기북부지역지회 담터분회 조합원들을 만났다. 저녁 6시30분. 예전 같으면 이들이 회사 밖에서 둘러 앉아 식사를 한다는 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 이성애 대의원은 관리자들에게 무시당하던 옛 서러움을 덧붙였다. 회사 관리자들은 40~50대 조합원들에게 늘 반말을 하고 “들어가, 저리가, 이거 해”라며 늘 명령이었다. 그래서 처음 라인을 멈추고 집회 하러 나오던 날 이 대의원은 관리자에게 “존댓말 쓰세요”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반말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
“저녁 8시, 밤 10시까지 잔업해야 할 시간인데”
“잔업 한 번 빠지고 나오려면 얼마나 죄인 취급을 받았는지 몰라요”

노조를 만들고 26일간 벌인 파업 투쟁은 많은 변화를 만들었다. 이번 합의를 통해 주5일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상여금 50%와 연차휴가 17개도 생겼다. 임금도 처음으로 최저임금보다 0.8% 많이 인상됐다. 회사 취업규칙은 정년이 55세지만 단체협약에는 60세로 명시했다. 작지만 이들이 만든 첫 번째 ‘승리’다.

노조 덕택에 상여금과 연차휴가도 생겼다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황인순 대의원은 “예전에는 야근 안하려면 관리자한테 가서 잔소리 듣고 왜 가야되는지 세세하게 다 얘기하면서 죄인처럼 취급받고 주눅 들고 그랬는데, 이제 당당하게 내 얘기 할 수 있는 게 제일 좋아”라고 심경을 털어놓는다. 이제는 조퇴증을 담당자에게 내기만 하면 된다. 잔업도 자신이 선택해서 할 수 있게 됐다.

이성애 대의원도 관리자들에게 무시당하던 옛 서러움을 덧붙였다. 회사 관리자들은 40~50대 조합원들에게 늘 반말을 하고 “들어가, 저리가, 이거 해”라며 늘 명령이었다. 그래서 처음 라인을 멈추고 집회 하러 나오던 날 이 대의원은 관리자에게 “존댓말 쓰세요”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반말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

“금속노조 사람들이 같이 하니까 회사도 함부로 해고 못하고 우리가 그래서 버텼어요. 노조라는 게 밖에서 보면 부정적일지 모르지만 안에서 보면 서로 믿고 가족적이고 긍정적이라는 걸 알게 됐죠”

최근태 대의원은 이번 경험이 소중하다고 얘기한다. “GM비정규직이나 홍익대 타결됐다는 소식 들으면 다 내일같이 좋고, 대우자판 아직 농성하고 있잖아요. 그런 얘기 들으면 마음 아프고. 그래서 이번에 쌀이랑 김치도 모아서 보내고 했어요”라고 말하는 이 대의원과 담터 노동자들.

▲ 최근태 대의원은 현장에 복귀한 조합원들이 나가서 목청껏 외치고 투쟁하던 때를 그리워한다고 전한다. 불이익을 당하는데도 속 시원히 얘기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아직 가득이란다. 여전히 노조를 인정 못한다며 온갖 탄압을 가하는 회사 때문에 해결해야할 문제도 아직 태산이다. 1월 28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 노조 사무실도 회사가 바쁘다는 이유로 언제 생길지 기약이 없다.
반말 관리자 이제는 존댓말

파업 끝내고 현장에 돌아간 조합원들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부터 많이 달라졌다. 전에는 일을 하면서 힘든 일, 조금 덜 힘든 일 나눠가며 조합원들끼리 싸우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려고 하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도와주다보니 싸울 일이 없다. 점심시간이나 출퇴근 때도 살갑게 인사를 나누고, 힘든 일 한다며 서로 간식도 챙겨준다.

“전에는 우리끼리 소통이라는 게 없었어요. 회사가 그렇게 만든거지. 그런데 이제는 소통을 시작한 거야. 옆에 좋은 사람 두고도 마음을 못줬었는데 지금은 서로 손 잡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됐어” 유도산 대의원의 말에서 조합원들의 끈끈한 정이 느껴진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을 때는 어려움도 많았다. “노조 가입하고 돈만 내면 다 해주는 줄 알았어요. 교섭만 하면 새 세상이 열리는 줄 알았지. 그런데 1인시위도 하고 집회도 해야 한다니까 암담했지. 그런데 이제는 싸워야 한다는 걸 알아” 황 대의원은 당시를 그렇게 회상했다.

황 대의원은 6년 전 해고당한 적 있다. 밤 10시까지 하라는 강제 잔업을 거부한 것이 해고 사유였다. 그 일이 있은 뒤 사람들은 더 숨죽이고 뭐든지 참으면서 살아야 했다. 잘리지 않기 위해서. 이 대의원은 “다들 억눌려서 살았던 거예요. 그러니까 처음 노조 만든다고 했을 때 생산직 거의 100%가 가입원서 썼던거지”라며 “나도 이번 대의원 뽑을 때 워낙 불이익 당하니까 고민 많이 했는데, 대의원 없는 노조를 만들 수는 없잖아요. 누군가는 해야지. 난 다 각오했어요”라고 노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싸우던 조합원들 이제는 서로 챙겨

투쟁을 마치고 현장에 복귀하니 분위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예전보다 훨씬 심하고 안 좋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회사는 이른바 패배를 만회하기라도 하겠다는 듯 조합원들에게 온갖 치졸한 탄압을 가하고 있다고 한다. 현장 복귀하고 일주일 뒤 회사는 조합원들을 일방적으로 배치전환했다. 조합원들이 신입사원이나 비조합원들과 못 만나게 하려고 다른 공장으로 몰아넣고 대화도 못하게 했다. 왕기주 수석대의원과 최근태 대의원 등 3명은 창고직으로 내쫓겼다.

“작업하는데 2명이 사정이 있어 빠지면 인원을 채워줘야 정상적으로 일이 되는데 우리 라인에는 절대로 사람을 충원을 안 해준다. 비조합원들 있는 라인은 일이 없어 쉬고 있는데도 절대 안 보내 준다.” 이 대의원은 공장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일들을 쏟아낸다.

▲ 황인순 대의원은 “예전에는 야근 안하려면 관리자한테 가서 잔소리 듣고 왜 가야되는지 세세하게 다 얘기하면서 죄인처럼 취급받고 주눅 들고 그랬는데, 이제 당당하게 내 얘기 할 수 있는 게 제일 좋아”라고 심경을 털어놓는다.
최근 승진이 있었지만 조합원 중 몇 명은 배제됐다. 파업 시기에 1인 시위 했다고 조합원을 징계하고, 언론사와 인터뷰 한 조합원은 창고직으로 배치전환. 회사의 행태는 끝도 없다. 이른바 ‘사유서’라는 것도 노조 만든 뒤 생겼다. 파업 기간 불량냈다며 다짜고짜 사유서를 쓰라고 들이민다.

회사는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갈라놓고 사무관리직과 일부 생산직 노동자들을 동원한 어용노조를 만들어서 회사편, 노조편 ‘편가르기’에 혈안이다. 요즘은 간담회, 단합대회 명목으로 거의 매일 회식을 한다. 신입사원이 들어왔다고 출근 첫 날 소고기집에서 회식도 했다.

회사는 여전히 회사편-노조편 편가르기

“지금까지 회식이라고는 1년에 딱 2번밖에 없었어요. 송년회때랑 여름에 삼계탕 사주는 거. 근데 그때도 우리가 비싼거 시킬까봐 식당 메뉴판 가려놓고 술도 소주 보다 비싼 술을 시키지도 못하게 했다니까.” 황 대의원은 회사의 최근 행동이 어이없다고 말한다. 황 대의원은 “애초에 우리한테 지금 하는 것처럼 사주고 잘했어봐. 우리가 여지껏 회사 발전시켜온 사람들이고 알짜배기 일꾼들인데, 회사가 잘못하고 있는거지”라고 덧붙인다.

유 대의원은 아무것도 모른채 회사에게 끌려다니는 사람들이 안타깝다고 얘기한다. 유 대의원은 “사실 우리가 없으면 회사가 왜 그 사람들한테 이것저것 먹이고 잘해주겠어”라며 “신입사원들은 처음부터 회사에 상여금도 있고 연차휴가도 있는 줄 알지, 어용노조는 자기들이 그렇게 바꾼 것 처럼 얘기하는데 싸우지 않았으면 하나도 안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최 대의원은 현장에 복귀한 조합원들이 나가서 목청껏 외치고 투쟁하던 때를 그리워한다고 전한다. 불이익을 당하는데도 속 시원히 얘기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아직 가득이란다. 여전히 노조를 인정 못한다며 온갖 탄압을 가하는 회사 때문에 해결해야할 문제도 아직 태산이다. 1월 28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 노조 사무실도 회사가 바쁘다는 이유로 언제 생길지 기약이 없다.

▲ “전에는 우리끼리 소통이라는 게 없었어요. 회사가 그렇게 만든거지. 그런데 이제는 소통을 시작한 거야. 옆에 좋은 사람 두고도 마음을 못줬었는데 지금은 서로 손 잡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됐어” 유도산 대의원의 말에서 조합원들의 끈끈한 정이 느껴진다.
“상여금 연차휴가 원래 있는 줄 아는 신입사원들”

하지만 이들 자신감 하나는 끝내준다. 똘똘 뭉친 단결력으로 헤쳐 갈 생각이다. 사무실이 생기면 조합원들이 더 자주 모여서 대화도 나누고, 교육이나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도 벌써 준비하고 있다. 노조 사무실 현판식도 거하게 할 생각이란다. 물론 파업 끝내고 일도 더 열심히 하고 있다. 황 대의원은 “1인시위 할 때도 현장에 돌아가면 더 좋은 제품 만들겠다고 시민들한테 얘기했어요. 앞으로도 열심히 일하면서 좋은 회사 만들어야죠”라고 강조한다.

노조를 만들자마자 시작된 회사의 탄압과 투쟁이 이들을 변하게 했다. “예전에는 약하던 우리 아줌마들이 이제는 다 전사, 투사가 됐어요. 아마존에 가도 다 살아남을거야”라고 최근태 대의원이 설명한다. 담터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던 시기는 전국이 지독한 한파에 시달렸던 때다. 서울까지 먼 길 나오면 하필 제일 추운 날에 대형마트로 1인시위를 다니고, 국회도 밀고 들어가봤다. 길에서 동지들이 챙겨준 막걸리 한 잔 하는데도 팔 다리가 오들오들 떨렸던 기억이 난다. 황 대의원은 “그것도 견뎠는데 이제 뭘 못견디겠어. 50명이 안흩어지고 똘똘 뭉쳐서 다 견뎠잖아요”라며 앞으로도 자신있다고 말한다.

“우리 계속 지켜봐주세요” 담터 노동자들은 앞으로 더 잘 해보이겠다고 금속노조 조합원들에게 인사를 전한다. 이들에게 노동조합은 바로 즐거움이고 친구고 힘이다. 6개월, 이제 노동조합 첫 발을 뗐다. 한 고비 넘었으니 그 힘으로 두세 번째 고비도 넘길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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