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상담을 하다 보면 참 답답할 때가 많다. 특히 그 중 노동자에게 아무런 자료가 없고 말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을 듣고 있을 때 가장 답답하다.

요즘에는 근로기준법이 개정돼 임금, 근로시간, 휴일, 휴가 등을 명시해서 근로계약서를 체결하고 근로자가 요구하면 교부하도록 돼 있다. 2012년부터는 요구가 없어도 교부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대체로 근로계약서 정도는 많이 가지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특히 노동조합이 없는 영세사업장의 경우에는 근로계약서를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시피 했다. 물론 아예 작성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 임금 체불이 돼도 당초에 약정한 금액이 얼마인지, 포괄임금제로 계약을 한 것인지 아닌지, 소정근로시간이 몇 시간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난감한 경우가 많았다. 매월 급여명세서도 없어서 통장에 찍혀 있는 입금 내역을 보면서 4대보험과 근로소득세를 역산해 노동자가 받아야 하는 세전 임금액을 추산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무슨 보물단지도 아니고 기밀문서도 아닐텐데 왜 사용자만 꽁꽁 감추어놓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최근 나와 상담을 한 전직 버스기사가 있다. 20년 가까이 장기 근속하신 분이어서 퇴직금액이 상당한 편이었다. 계산해보니 대략 세전으로 7천 3백 만 원 정도였다. 그런데 회사는 이분의 퇴직금을 무려 네 번에 걸쳐서 6천 8백 만원 가량 찔끔찔끔 계좌로 입금시켜 주었을 뿐, 퇴직금액의 계산 내역이나 퇴직소득세나 다른 공제내역을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 나와 상담을 한 전직 버스기사가 있다. 20년 가까이 장기 근속하신 분이어서 퇴직금액이 상당한 편이었다. 회사는 퇴직금액의 계산 내역이나 퇴직소득세나 다른 공제내역을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전주버스노동자들이 파업 집회를 벌이고 있다.
아무리 계산을 해보아도 일부 미지급된 것으로 생각되어 본인에게 말씀드렸고 그분은 회사에 문의도 하고, 노동부에 진정도 넣어보고 했는데, 끝내 회사에서는 정확한 계산 내역을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지금 민사소송을 하고 있다. 회사로서도 미리 꼼꼼하게 계산 내역을 노동자에게 알려주고 “회사 사정상 당장 전액 지급하기 어려우니 이러이러하게 언제까지 지급해 주겠다”고 양해를 구했으면 되었을 일을 법정에까지 가게 되었으니 회사의 그런 마인드가 참 이해되지 않았다.

해외 건설현장에서 파견근무 했던 노동자들이 있었다. 당초 해외 건설현장 인력을 모집할 때 회사에서 여러 가지 약속을 했던 모양이다. 휴가도 충분히 보장하고 휴가 때는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항공료도 지불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러니 누구는 받았는데, 누구는 받지 못했다고 원성이 자자했다. 그렇지만 아무런 근거자료가 없으니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물론 건강한 민주노조가 있고, 단체협약도 완비돼 있는 사업장에서는 이런 일들이 쉽게 일어나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없는 90%의 미조직노동자들을 생각하면서 꼭 명심할 일이다. 사용자가 말로 하는 것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고. 반드시 서면으로 받자고. 보험계약서도 한부씩 나누어 가지고 전세계약서도 한부씩 나누어 가지는 것처럼, 근로계약서도 꼭 한부씩 나누어 갖자고. 아마 이것만 명심하시면 금속노조의 조합원 누구나 훌륭한 노동상담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제희/ 공인노무사(노무법인 노동과삶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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