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8~9일 어렵사리 열렸던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 예비회담이 결국 결렬로 끝났다. 북측은 남측 책임이라고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남측은 ‘별도 대응 필요없다’며 언급을 피했다. 북의 성명에 따르면 남측은 본회담 날짜를 늦추자고 하면서 ‘정월대보름 명절 휴식’을 주장했다고 한다. 이걸 이유라고 댔단 말인가.

‘정월대보름’은 무슨 공휴일도 아니고 그저 오곡밥이나 지어 먹으며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월대보름 명절 휴식’을 이유로 회담을 늦추자는 남측 국방부의 제안은 아마 남북 회담사에 길이 남을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이렇듯 이명박 정부는 남북대화에 대한 의지도 진정성도 보여주지 못했다.

올 연초부터 북측의 대화공세가 적극적, 전방위적으로 펼쳐졌다. 북측은 1월 초 남북 당국자 회담을 조건없이 개최하자고 제의했으며, 1월 20일에는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을 제안했고, 정부가 이를 전격적으로 수용하면서 예비회담으로 이어졌다. 이어 2월 2일 북측은 조국전선 명의로 남북 국회회담까지 제의했다.

이러한 북측의 전방위적 대화제의에 대해 보수언론에서는 “대체 무슨 속셈인가”, “연평도 도발할 땐 언제고 이제는 대화공세인가”, “북의 상투적인 전술”이라고 폄하하기에 바빴으며, 심지어 “식량지원이 다급해서 그런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있었다.

▲ 2월7일 오전 판문점에서 남북군사실무회담이 열리고 있다. <국방일보>

그러나 이러한 북측의 대화제의는 느닷없는 행동이 아니다. 보수언론 스스로가 ‘대화제의는 상투적 수법’이라고 표현한 데에서도 드러났듯이, 북측이 남북관계에서 대화를 제기하고, 문제가 생기면 대화로 풀려고 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북이 연초부터 대화를 제의한 것은 무슨 속셈이 있어서라기보다 정상적이고 예측가능한 행동방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오히려 작년의 연평도 포격사건이야말로 ‘53년 휴전이후 처음 있었던’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임기 내내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를 철저히 ‘국내정치용’으로 활용해왔다. 특히 정치적 위기돌파를 위해 남북간의 긴장과 대립, 심지어 무력충돌까지 적극적으로 이용해왔다. ‘천안함’ 사건 당시 부실한 조사결과를 지방선거 일정에 맞추어 서둘러 발표하는가 하면, 연평도 포격사건 당시 국민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린 틈을 타 한미 FTA 재협상을 전격적으로 타결하고, 2011년 예산안도 날치기로 통과시켜 버렸다.

이같은 ‘국내정치용’ 대북정책이 과연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국민 대다수는 북측에 적대적이며, 남북간의 긴장과 충돌은 정권과 보수진영에 유리하다’는 오랜 통설을 믿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신화는 깨진지 오래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여론조사 때마다 나타났던 결과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현 정부는 대북정책 기조를 바꾸어야 하며, 항상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 12월 25일 실시된 KBS 여론조사에서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찬성한다’는 48.5%, ‘반대한다’는 51.5%로 비판여론이 더 높았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노무현 정부와 비교했을 때는 ‘잘한다’(34.9%)는 응답보다 ‘못한다’(46.1%)는 응답이 크게 높았다.

또 작년 12월 <국민일보>가 여론조사기관 <GH코리아>에 의뢰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북한의 연평도 도발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 ‘현 정권의 대북 강경정책 때문’이라는 답변이 46.4%로 ‘전 정권의 햇볕정책 실패(39.9%)’보다 6.5%p 높게 나왔다.

▲ 이명박 정부는 임기 내내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를 철저히 ‘국내정치용’으로 활용해왔다. '천안함' 사건 당시 부실한 조사결과를 지방선거 일정에 맞추어 서둘러 발표했다. 천안함 침몰 조사결과 토론회에서 신상철 합동조사단 조사위원이 천안함 좌초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연평도 포격 직후인 작년 11월 사회동향연구소의 여론조사에서 “서해상에서 지속되는 군사적 충돌에 대해 향후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과반수가 넘는 56.8%가 ‘남북간의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야 한다’고 응답했다. 지난 12월 1일 KSOI 여론조사에서는 남북 정상회담 추진에 대해 60.1%가 ‘찬성한다’고 응답하여 대화 여론이 높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다.

위의 결과는 가장 최근의 조사를 인용한 것이며, 현 정부가 출범한 200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남북관계 관련 여론조사 마다 이러한 응답경향은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연평도 포격사건 직후에 진행한 여론조사를 보면 대북 보복 여론이 높게 나오거나 북측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게 나타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남북간의 충돌이 격화되거나 확전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반대의사 또한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 여론은 남북관계의 악화를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실패’로 간주하는 것이며, 해결은 철저히 ‘평화적으로’, ‘대화로’ 풀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측의 책임있는 조치’를 대화의 선결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북측도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를 포함한 남북간 상호도발 중지’에 대해 논의하자고 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선결과제’ 또한 남북간 대화에서 얼마든지 논의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 북측의 대화제의는 거절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꼬일 대로 꼬인 남북관계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기회’라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진정으로 남북간 충돌위기 상황을 평화와 대화의 국면으로 전환시키고자 한다면 북의 대화제의에 적극 나서야 한다.

김용현 / 사회동향연구소 상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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