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바쁘고 힘들어도, 가족이나 동료들과 함께 어디론가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을 때가 있다. 모처럼 떠나는 여행, 좀 더 알차게 보내고 싶을 때 역사기행을 떠 올리게 된다. 그냥 무작정 역사의 현장을 찾을 것이 아니라, 가기 전에 준비해서 알고 가면 더 많은 것을 얻고 느낄 수 있다. 역사기행,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옛 사람들은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려면 10년은 책과 자료를 읽고, 10년은 역사의 현장을 찾아 답사를 하고, 10년을 글을 써야 한다고 했다. 공부하고 답사하고 글을 쓰는 일이 순서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과거의 시간과 공간을 찾아 직접 발로 밟으며 역사를 좀 더 가깝고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배우고 느끼는 답사가 중요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흔적, 행위의 흔적들도 오늘 우리의 삶과 마찬가지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았던 결과이다. 그래서 역사의 현장을 찾을 때 언제나 중요하게 짚어 볼 것이 ①그 일을 누가 했는가(행위의 주체)? ②긴 시간 가운데 왜 그때 그 일을 했을까(시간)? ③너른 공간에서 왜 그곳에서 그 일이 있었을까(공간)? ④그 일은 했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갔을까(사회관계)? 이렇게 의문을 가지면서 행위의 주체와 시간과 공간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과거의 시간과 공간을 직접 발로 밟아 보자

또 중요한 것이 행위 주체들의 의식과 관점과 의도를 살피는 일이다. 그때 그 사람들이 왜 그 일을 했을까, 목적이 무엇인가, 그 일에 담긴 이해관계는 무엇일까 하면서 따져 볼 일이다. 그렇게 따져 보는 과정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폭을 넓힐 수 있다.

▲ 역사의 현장을 찾을 때 언제나 중요하게 짚어 볼 것이 ①그 일을 누가 했는가(행위의 주체)? ②긴 시간 가운데 왜 그때 그 일을 했을까(시간)? ③너른 공간에서 왜 그곳에서 그 일이 있었을까(공간)? ④그 일은 했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갔을까(사회관계)? 이렇게 의문을 가지면서 행위의 주체와 시간과 공간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자료사진>

사람들은 아침에 깨어났다 저녁에 잠들고, 다음날 다시 깨어나면서 하루 단위로 살아간다. 오늘밤 잠자리에 들었다가 내일 영영 깨어나지 못하면 죽는 것이다. 살아서 움직이는 하루하루 생활이 일상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 누구도 따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한자로 사람 ‘人’자는 하늘과 땅 사이에 우뚝 서 있는 사람들이 따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기울여 기대고 서 있는 형상으로 읽을 수 있다. 인간은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관계를 맺어야만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일상생활은 하루라는 시간을 단위로, 주어진 문이라는 공간에서 관계를 맺으면서 이루어진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면 문(門)을 나서야 한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 가족과 관계를 맺고, 현관문이나 대문을 열고 나가고, 다시 문을 들어가 학교에서건 일터에서건 친구, 동료와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문이라는 소통의 공간은 일상 활동의 테두리인 내 집과 일터, 그리고 지역 뿐 아니라 온 나라와 지구 더 넓게는 우주까지 연결된다. 그런 면에서 사람들은 대 우주라는 문안에서 살아가는 소우주들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며(人), 문(門)이라는 공간 속에서 하루(日)라는 시간을 단위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이 인간{人間 = (l+l)+(門+日)}이라는 단어에 담겨 있다.

역사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자

주체와 시간, 공간, 사회 관계, 행의의 의도 같은 여러 요소들 가운데서도 역사의 현장을 찾을 때 눈여겨야 할 핵심 고리는 자연과 사회의 공간이다. 현장을 찾는다는 것은 어떠한 공간으로 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연과 사회의 공간 속에 자리 잡은 터에서 살아간다. 그 자리를 바탕으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으면서 관점을 형성한다.

“우물 안 개구리 하늘 넓은 줄 모른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늘 넓은 줄 모르던 우물 안 개구리가 하늘 넓은 줄 아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물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우물 밖으로 나오면 하늘 넓은 줄 안다. 알고 모르는 큰 차이가 ‘자리’에서 말미암는 것이다.

“몸 가는데 마음 간다”고 몸담고 있는 자리에서 마음이 말미암는다. 자리에서 생겨나는 인식과 관점, 지와 무지가 사람들이 행동을 이끌고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니까 행위에 작동한 생각, 생각이 어떤 자리에서 말미암은 것이지 따져볼 일이다.

▲ 현장에 가기 전에 가서 배우고자 하는 바를 미리 정리하고 준비를 한다면, 직접 가서는 그것들을 확인하고 느끼는 깊이가 달라진다. 즉, 준비한 만큼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느끼며 볼 수 있다. 사진은 2011년 금속노조 4.3항쟁 역사기행단 모집포스터.

자연과 사회적 공간이 당대의 생각을 만든다

예를 보자. 선종 스님들의 사리 무덤인 부도(승탑)는 9세기 통일신라의 중심이었던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에 세워졌다. 선종이 도입된 시기가 800년대 전반이었고, 귀족 중심의 교종이 중심이던 경주에 발을 붙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방 근거지를 둔 호족세력이 선종 사찰을 지원하고 부도를 만들 때 후원하여 ‘9세기 부도의 시대’를 열었다.  또 한 예를 보자. 19세기 ‘민란의 시대’에 곳곳에서 터져 나온 농민항쟁은 주로 장날 장터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에게 널리 뜻을 알리고 인원을 늘리기 좋았기 때문이다.  

역사의 현장을 찾을 때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할 것은 그때와 지금이 똑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관계나 생각보다 자연 공간의 변화가 느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고 하지만 “산천 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라고 하였듯이 산천도 변한다.  

자연 물리적 공간으로는 같은 공간이며 거리라도 길과 교통 수단의 발달과 함께 사회 역사의 공간은 달라진다. 주거공간이나 사람들이 움직이는 동선도 달라지게 된다. 근대화된 신작로와 철도, 자동차와 기차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이 그때 그 길이 아니며 지금 가고 있는 이 방법으로 옛 사람들이 다니지 않았던 과거를 그 시대 사람의 처지에서 보고 느껴보는 것이 필요하다.

역사의 현장, 유물 유적을 볼 때 고려할 요소들을 기준 삼아 보더라도 지금 여기서 보고 다니는 주체는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나와 우리들이다. 과거 사람들의 의식과 행위의 흔적은 결국 ‘지금 여기’서 내 눈으로 다시 보게 된다. 내 눈을 가지고 과거 행위의 주체와 좀 더 가까이서 이야기를 나누며 관계를 맺는 것이 역사의 현장을 찾는 일이다.

내 시선으로 역사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역사기행이다

역사를 좀 더 가깝고 생생하게 느끼면서 배우려고 역사의 현장을 찾지만, 떠나기 전에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준비 없이 저절로 알 수는 없다. 역사의 현장을 찾는 것은 현장에 직접 가서 보는 행위이기 때문에 가보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현장에 가기 전에 가서 배우고자 하는 바를 미리 정리하고 준비를 한다면, 직접 가서는 그것들을 확인하고 느끼는 깊이가 달라진다. 즉, 준비한 만큼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느끼며 볼 수 있다.

준비할 때는 가보려고 하는 곳에 대한 역사기행 안내문이나, 먼저 갔던 사람들의 기행문, 보고서, 그리고 갈 곳에 관한 참고자료들을 보면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함께 갈 사람들이 어울려서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가볼 곳에 대한 기대와 상을 그려본다면 현장을 찾을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공부하고 정리한 것을 엮어 자료집을 만들어 가지고 간다면 훌륭한 참고서가 될 것이다.

자료집과 함께, 용어해설과 연대표가 실린 간단한 안내책, 지도와 나침반, 보고 느낀 것을 그때그때 기록할 메모지, 카메라, 녹음기 같은 도구들도 준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도와 나침반은 산을 갈 때뿐 아니라 역사의 현장을 찾을 때도 꼭 필요한 준비물이다. 새로운 곳에 가서 길이 헛갈릴 때, 해뜨기 전이나 해가 진 뒤, 날이 흐리거나 눈비가 올 경우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울 때, 유물 유적지의 방향을 확인할 때 크게 도움이 된다.

준비하고 찾아가고 정리하자

준비가 됐으면 ‘지금 여기’ 현실과 일상을 벗어나 ‘그때 거기’ 역사의 현장으로 미리 상상여행을 떠나보자. 떠나지 않고도 남들이 써놓은 역사기행기를 읽거나 역사현장을 잘 찍어놓은 역사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때거기’를 상상하는 머릿속 여행도 좋은 역사 공부이지만 역사의 현장을 찾는 것은 현장을 밟으며 보고 느끼는 것이 중심이다. 똑같지는 않더라도 그때 그 자리에 있어 보아야 실감하고 느낄 것이 많다.

마지막으로 정리가 필요하다. 역사의 현장을 찾는 일은 밟아보고 둘러보는 과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준비하는 과정,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면서 느끼고 경험한 것을 역사기행문이나 보고서로 정리해야 제대로 마무리 된다. 경험과 느낌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진다. 기억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갔던 과정을 정리해두면 자신 뿐 아니라 다음 그곳을 갈 사람들에게도 훌륭한 안내서가 된다.

책과 자료를 보면서 공부하고, 현장을 찾아 직접 발로 밟으면서 답사하고, 보면서 새로 배우고 느낀 것을 정리하고 글로 쓰는 과정은 예나 지금이나 과거의 객관적 역사를 지금 여기서 재구성하는 기본이 되는 과정이다.

박준성 / 노동자역사 <한내> 연구위원

* 필자가 앞으로 한달에 한번 씩 ‘함께가는 역사기행’이라는 꼭지의 역사칼럼을 새로 연재합니다.  필자는 『박준성의 노동자 역사이야기』,『슬라이드 사진으로 보는 노동운동사』,『역사현장을 찾아서』(공저),『바로보는 우리역사』(공저) 등의 책을 썼으며 현재 역사학연구소 연구원, <역사와 산> 고문, 노동자교육센터 부대표, <작은책> 편집위원, 노동자 역사 <한내> 연구위원 등을 맡고 있습니다. / 편집국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