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출발합시다.”
1월27일 오전 11시. 경남 김해시청 주변에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해노동인권상담센터 사람들이 모였다. 김해공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1월 선전전’ 날이기 때문. 몇 가지 점검을 한 뒤 차 두 대에 나눠 타고 목적지로 향한다.

20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김해 진영 본산농공단지.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의 홍순호 부지부장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 식당 앞에서 부양지부가 수첩 돌릴 테니, 나머지는 ○○식당으로 이동하면 되겠다”고 말한다. 다들 하루 이틀 해 본 모습이 아니다. 선전물 챙기는 속도하며 척척 착착 움직임이 재빠르다.

▲ 1월27일 노조 부산양산지부, 민주노총 부산본부 서부산 노동상담소, 마산창원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김해노동인권상담센터로 구성된 '녹산김해지역 공단조직화를 위한 대책회의' 활동가들이 김해진영 본산농공단지에서 노동자 권리, 산업재해 상담 등 내용이 담긴 수첩을 노동자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박향주

그런데 공장 밖 식당에서 선전전이라니? 홍 부지부장은 “선전전이라고 하면 보통 통근버스 승하차장이나 공장정문에서 하는 출퇴근 선전전을 생각하지만 중소영세사업장이 대부분인 이곳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점심시간이 아니면 노동자들을 만날 기회가 없으니 지역공단 조직화사업에서 식당위치 파악이 매우 중요하다는 게 홍 부지부장의 설명이다.

“점심 시간 말고는 노동자들 만날 기회 없다”

금속노조, 민주노총 부산본부 서부산 노동상담소, 마산창원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김해노동인권상담센터로 구성된 <녹산김해지역 공단조직화를 위한 대책회의(이하 대책위)>는 녹산공단과 김해공단에서 한 달에 각각 한번씩 공단 노동자를 상대로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홍 부지부장은 "김해공단 선전전은 지난해 하반기에 시작해 오늘이 다섯 번째”라고 소개한다.

경남 김해에는 2009년 11월말 현재 농공단지 6곳과 산업단지 1곳, 공업 및 준공업지구 여러 곳이 있다. 그리고 그 규모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김해시 기업체등록현황에 따르면 6천 여 개 사업장에 8만여 노동자가 일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중 50인 이하 사업장이 97%를 차지한다.

홍 부지부장은 “공단주변에 세워놓은 차 앞창에 꽂아두고 오겠다”며 수첩 한 아름을 안고 발걸음을 옮긴다. 오전 11시 30분. 진선우 부산양산지부 정관지역지회 사무장이 식당 앞에 자리를 잡고 서 있자 작업복을 입은 이들이 하나둘 식당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이 날 대책위에서 배포한 선전물은 손바닥 크기의 <산재보상 권리찾기 수첩>과 <노동법 바로알기 수첩> 두 종류다.

▲ 1월27일 홍순호 부산양산지부 부지부장이 노동자 권리 등의 내용이 담긴 수첩을 공단 노동자들의 승용차 유리창에 꽂고 있다. 박향주

사람들이 귀찮아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의외로 다들 잘 받아간다. 자전거 타고 들어오는 이들도 수첩을 받기 위해 잠깐 멈춰 선다. 잠시 훑어보더니 수첩을 작업복 주머니에 넣고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

수첩 두개 의외로 잘 받아간다

진 사무장에게 사람들의 반응을 물었다.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고 현장에서 즉석 상담이 이뤄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한다. 진 사무장은 “산업재해와 임금 및 퇴직금에 관련된 질문을 주로 한다”고 말한다. 이어  “최근에는 올 7월부터 전면 시행되는 주5일제 근무에 대해 많이 물어 본다”고 덧붙인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와 식당 앞에서 담배를 피며 수첩을 펼쳐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다 진 사무장 설명대로 대책위 사람들에게 다가와 이것저것 물어본다.

이 날 오전 11시30분 부터 낮 1시30분 까지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가 선전전을 펼친 식당을 이용한 노동자는 2백50명 정도. 그 중 권리수첩 등을 받아간 이는 1백50여 명이다. 낮 1시 40분쯤 흩어져 있던 대책위 사람들이 점심식사를 하려고 다시 모인다. 인근 한림농공단지에서 노동자들을 만나던 금속노조 경남지부 사람들도 도착했다. 강추위에 다들 코끝이 빨갛다.

각자 활동을 보고하니 경남지부 박홍진 부지부장이 재빨리 받아적는다. 박 부지부장에게 지역공단조직화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명함과 수첩 등을 꾸준히 배포하다보니 간혹 상담전화가 오긴 한다”고 운을 뗀다. 하지만 “실질적인 조직화로 이어지지 않고 상담 수준에서 그치고 있는 실정”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그 원인에 대해 박 부지부장은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에 대한 거리감이 그 원인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 1월27일 김해 진영 본산농공단지 한 식당 앞에서 금속노조 활동가가 한 노동자에게 노동자 권리, 산업재해 상담 등 내용이 담긴 수첩을 나눠주고 있다. 박향주

산재와 임금, 주 5일제 등 문의 잇따라

실제 지난해 8월부터 약 2개월 동안 진행된 녹산산업단지 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설문응답자 중 70%가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금속노조 가입의사를 밝힌 사람은 전체응답의 36%에도 못 미쳤다.

박 부지부장은 “편하게 다가가기 위해 건강권이나 노동법 등 노동자들의 주된 관심내용으로 선전물을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금속노조에서 발행할 공단노동자를 주요 독자로 한 신문이 나오면 한 달에 한 번 하는 선전전을 더 자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금속노조는 경기, 경남, 부산, 서울, 전남 등지의 지역공단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타블로이드판 8면 신문을 준비 중이다. 이 신문은 매달 나올 계획이며 첫 작품은 3월 첫 주에 나온다.

3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점심식사를 마친 대책위 사람들은 남은 수첩을 나눠들고 다시 흩어졌다. 공단주변에 세워져 있는 차량에 수첩을 꽂아두거나 전신주와 공장벽 등에 홍보스티커를 붙인다. 길게 늘어서있는 차량을 가리키며 부산양산지부 홍순호 부지부장은 “김해공단이 외곽에 떨어져 있어 교통편이 좋지 않지만 회사에서 통근차량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노동자들의 교통비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멀어도 통근차량조차 없는 현실

홍 부지부장은  “고용형태로 보면 정규직 비중이 낮지는 않지만 임금수준이 최저임금에서 조금 더 받는 정도”라며 “근로기준법 위반사례는 일일이 얘기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김해공단 실태를 소개했다. 평균임금이 아닌 ‘기본급’을 퇴직금 기준으로 삼고 있는 곳도 있고 연월차휴가를 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게 홍 부지부장의 이야기다.

홍 부지부장은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항상 시달리는 것이 지역공단 노동자들의 실상”이라며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은 물론 노동조합조차 이들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비정규직 못지않은 차별에 저임금 수준이지만 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외곽에 일하고 있다는 이유로 외면당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대적 소외감과 박탈감이 클 것이 분명하다.

▲ 1월27일 '녹산김해지역 공단조직화를 위한 대책회의' 활동가들이 김해 본산농공단지에서 나눠준 노동자 권리 등의 내용이 담긴 수첩을 받은 한 노동자가 활동가들에게 즉석 노동상담을 받고 있다. 박향주

이에 대해 홍 부지부장은 “예전에 비해 비정규직문제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지역공단 조직화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도 아직 적고 심지어 존재 자체를 모른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듯하다”고 말한다. 특히 홍 부지부장은 “공단노동자 조직화 사업은 노동자들의 눈에 우리가 꾸준히 띄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공단조직화 활동이 임단협과 현안투쟁 등에 밀려날 수밖에 없는 노조의 현실이 안타깝다는 게 그의 속내다.

“노동자들 눈에 자주 띄는 수밖에 없다”

홍 부지부장은 “노조에서 사업계획이 만들어지고 예산이 배치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조합원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며 “노조 내에서 일상적으로 지역공단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토론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보였다.

낮 2시30분. 이 날 준비한 수첩을 모두 배포한 대책위 사람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며칠 뒤 있을 녹산공단 선전전과 2월에 펼칠 김해공단 선전전 일정을 확인하고 각자 지역으로 돌아간다. 경남지부 박홍진 부지부장은 “녹산지역과 김해공단 외에도 부산양산지부는 정관공단을, 그리고 경남지부는 창원공단 노동자들을 매달 만나고 있다”며 “노조 차원에서 공단조직화사업을 위해 힘써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1월27일 '녹산김해지역 공단조직화를 위한 대책회의' 한 활동가가 공단 전신주에 노동 산재 상담전화번호가 인쇄된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박향주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공단조직화 사업에 대한 대책위 사람들의 고민은 끝이 없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친숙한 선전물을 만들 수 있을까.’ ‘예산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등등 걱정거리들이 쏟아진다. 그 와중에  버스정류장이 보일 때마다 차를 멈춰 세워 스티커 부착작업을 잊지 않는다.

이들의 노력이 빛을 발해 노동조합 깃발이 공단마다 휘날릴 그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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