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광성 곤충이 빛을 쫓듯 권력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거의 맹목적이다.

1월11일 일본 출장에 나선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일본을) 한참 배워야 한다”고 한마디 하자, 다음날 거의 모든 언론은 그 싱거운 말을 일제히 제목으로 뽑아 보도했다. 이틀 후에는 이건희 회장이 자신의 칠순 만찬장에서 사장들에게 나눠준 와인에 대한 기사가 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또 며칠 후에는 이건희의 한마디에 담긴 교훈을 전하는 칼럼과 분석기사들도 나왔다.

대통령과 재벌의 일이라면 어제 싼 똥 색깔까지 소중히 보도하고 싶은 언론도 있겠지만, 죽어 나가야 겨우 언론에 날까 말까한 노동자의 현실을 보자면 참으로 밸이 꼴리는 보도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이건희는 일본을 배우러 나갔고 동아일보는 이건희를 따라 일본을 배우자며 ‘이건희의 일본관’을 설파했다.

▲ 언론은 삼성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며 선망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심지어 이건희의 칠순에 나눠준 와인조차도 선망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이건희와 일본의 사이는 각별하다. 지난해 3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볼모로 경영에 복귀한 이건희 회장의 첫 공식행보는 일본 기업인들과의 만남이었다. 이건희는 초등학교 때 일본으로 유학을 갔고 대학도 와세다대학에 진학했으며, 지난해에는 와세다대 명예 법학박사 학위도 받아 챙겼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꿔라”라고 한 삼성의 (가문 중심의)신경영 전략도 변화에 민감한 일본의 영향이라고 하고 부친 이병철 회장도 연말연시를 일본에서 일본 기업가들과 함께 자주 보냈다고 한다. 그토록 삼성은 일본을 따라 배우고 싶어 했는데, 삼성이 배운 것은 일본의 첨단기술력만이 아니었다.

최근 삼성전자에서는 두 명의 노동자들이 연이어 자살했는데, 그 이유는 회사에 대한 복종과 과로를 강요하는 억압적 노동규율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무노조경영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언론은 그러한 사실을 충분히 전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삼성의 이면이야말로 매우 일본을 닮은 모습이다.

일본은 1978년 세계 최초로 과로사 개념을 탄생시킨 나라이고, 1990년에서야 비로소 과로사를 산재로 인정받은 일본의 과로사 유족단체는 매년 만 명 정도의 일본노동자가 과로사에 희생당한다는 통계를 발표하기도 했다.

게다가 오랜 일본특파원생활을 했던 패트릭 스미스라는 미국 언론인은 ‘과로사’를 일본사회의 ‘종합적 특징’이라 칭했는데, 그가 전하는 일본은 흡사 오늘의 우리를 떠올리게 한다.
“높은 땅값, 초만원 통근교통, 비좁은 주거, 주택마련 융자부담, 여가시설 부족...... 이 모든 것이 초과근무를 부추긴다. 이런 희망 없는 환경 속에서 부모들은 자식을 위한답시고 사설학원으로 등을 떠밀고, 샐러리맨 아버지들은 지방으로 전근을 가더라도 아이를 명문학교에 다니게 하기 위해 가족들을 떼어 놓은 채 혈혈단신으로 생활한다. 이렇게 혼자 사는 이들이 대략 50만 명쯤 되고, 바로 이들이 과로사의 주요 희생자들이다.”

그런 혹독한 사회임에도 일본의 언론은 기업의 오늘을 칭송하고 내일을 찬양하기에 바쁘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언론도 권력과 자본의 말과 소소한 일상을 전하며 그들을 우상화하기에 여념이 없다.

언론의 권력에 대한 아첨은 국경을 넘어 공통적이다. 그 가운데 백미는 단연 일본 언론인데, 1988년 히로히토 일왕이 중태에 빠지자 일본 언론의 천박함은 절정을 이뤘다. 일본 궁내청(왕실 관리집단)은 히로히토의 맥박, 체온, 출혈량 등 신체수치 따위를 매일 발표했고, 이를 그대로 받은 일본 언론은 일왕의 변 상태가 어떻다, 뭐를 소화시켰다, 얼음을 씹었다 등의 내용을 연일 신문 1면에 장식했다.

그런 일본을 마침내 삼성이 앞지른 듯한 지금, 언론과 국민들은 자부심과 존경의 눈길로 삼성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삼성은 일본을 더 따라 배우자고 하고, 언론은 삼성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며 선망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심지어 이건희의 칠순에 나눠준 와인조차도 선망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당시 사용된 와인 2종 중 레드 와인 ‘시네 쿼 넌 레이블스 시라 2007’의 1병 가격은 70만원이고 화이트 와인 ‘피터 마이클 벨 코트 샤도네이 2006’은 28만원이라고 한다.

“먹고 죽자”는 주당들의 구호가 있는데, 이건희의 와인을 그렇게 마셨다간 노동자는 정말 죽을 지경에 이르고야말 가격이다. 도대체 이건희와 언론은 일본의 무엇을 배우고 싶은 것일까? 단지 기술력뿐일까? 삼성전자 노동자 고 김주현 씨를 비롯해 ‘또 하나의 무덤’ 삼성에 묻힌 모든 노동자들의 명복을 빈다.

박성식/ 민주노총 부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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