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됐다. 새해라고 노동자들의 삶에 변화가 있을 리는 만무하지만, 연말연시가 되면 곧잘 벌어지는 흥청망청하는 분위기에도 끼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말 그대로 전국 방방곡곡이 투쟁판인 금속노조는 힘든 형편을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GM대우 비정규 노동자들을 필두로 하여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한 투쟁들이 해를 넘기면서 이어가는 가운데, 부산의 한진중공업에선 김진숙 동지가 타워 크레인에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다시 등장한 민주노조 사수투쟁

2010년 말부터 각종집회에서 등장한 단골 구호는 ‘민주노조 사수’였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겪으면서 만들어진 신생노조들과 전노협 건설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목청껏 외친 구호중의 하나는 민주노조 사수였다. 20여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민주노조 사수라는 말을 듣다 보면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 듯 착각마저 들기도 한다. 물론 이명박 정부 집권이후 사회 전체적 분위기가 마치 역류하듯이 하고는 있지만, 현장에서 마저도 민주노조 사수라는 말이 입에서 입으로 번져 나가고 있는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지극히도 간단하다. 노조를 협상상대방으로 인정조차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노조라는 조직이 있어도 없는 존재인 양 하는 경영진이 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볼 수 있었던 억압적 노사관계를 다시 만들어서 아무 거리낌 없이 돈벌이에만 몰두하려는 자본이 존재하는 한 노조를 부정하고 침탈하는 행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 2010년 말부터 각종집회에서 등장한 단골 구호는 ‘민주노조 사수’였다. 금속노조가 지난해 8월 25일 대구고용노동청 앞에서 고용노동부포항지청의 불법 개입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1987년 시절의 억압적 노사관계는 지극히 노골적이고 단순하면서도 폭력적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교묘하면서도 치밀하고 폭력을 은폐하고 위장할 줄 안다는 점이 바뀌었을 뿐이다. 여기에 ‘민주노조 사수’ 구호를 입에 발린 소리 정도로 치부하는 조합원들도 동시에 존재한다.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이기심과 고압적 경영진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자포자기가 합쳐지면서 노조가 점점 자리를 잃어가는 게 현실의 모습이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과연 무엇일까?

과거 민주노조 사수 구호는 노조를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회적 기초조직을 인정하라는 요구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구호는 정부와 자본의 침탈로 인해 노조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방어적이거나 수세적인 변호의 측면이 더욱 많다. 억압적 노사관계의 근본적인 성격이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방어적이거나 수세적인 민주노조 사수투쟁은 노조운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상대방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를 인정해 달라는 요구를 관철하려면, 노조운동은 사회 개혁적이라고 하든 변혁적이라고 부르든 사회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어야 가능하다. 노조운동은 사회전체적인 이해관계부터 계산할 줄 알아야 한다. 이기는 싸움을 하려면 그에 맞는 방법을 찾는 게 순리이듯이 금속노조는 이제부터라도 좀 더 큰 계산을 할 줄 아는 조직으로 되어야 한다.

금속노조가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의 최저임금 인상을 앞세우는 조직이 되길 기대한다. 아울러 노조전임자 임금정도는 조합원들이 각출하여 충당하면 그만이라는 대범함도 지니는 조직이 되고 노조를 물로 보면 수십 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으름장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조직이 되기를 바란다.

특히 노조는 사회에서 결국 가지지 못한 계급이 지닌 최후의 보루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시민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조직으로 바꾸는 원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물론 지극히 단순한 소망희망을 가능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단초라도 마련되기를 꿈꾸는 건, 어쩌면 우리가 그 동안 잃어버리거나 놓치면서 지나쳐 왔던 과거의 기억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가 있다.

이종래 /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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