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초, GM대우차 비정규직 농성장에 들렀더니 누군가 “김성만 노래가 새로 나왔는데 가사가 참 좋다”며 음반 하나를 건넸다. 그 두께가 여타 음악시디가 아니라 500쪽짜리 책의 느낌이다. “시디 네 장에 악보까지 들어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결정적 한 마디. “음반이랑 같은 제목으로 책도 냈대”. 노래 부르는 사람이 어떤 연유로 책을 냈을까. 70곡 가까이 되는 새 노래에는 무슨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서울에 많은 눈이 내린 지난 29일 오후 김성만 동지를 만났다.  

"노래는 언제부터 만들게 됐냐”고 물었다. 김성만은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를 만든 백창우가 노동가요를 만들면 꼭 내게 줬다”며 “백창우 노래를 받기만 하다가 직접 만들어볼까 용기를 내봤다”며 설명했다. 김성만은 처음 만든 노래를 백창우와 정태춘에게 들려줬고, 그들은 계속 작곡을 해보라며 김성만을 부추겼다.

정태춘 백창우와의 인연

김성만은 “산재보험금으로 산 기타로 혼자 노래하다가 지금까지 오게 됐다”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열여섯 살에 공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인천 부평구 작전동에 있던 삼익악기에서 조각 일을 하며 틈틈이 기계목수 기술을 익혔다. 그 뒤 경기도 성남으로 일터를 옮겨 가구목수로 살았다. 김성만은 “전날 쏟아진 비로 작업장이 젖은 데다 그날따라 조수가 결근을 했다”며 “책상 서랍을 만드는데 순간 커팅날이 내 손가락을 날렸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성남 새로나가구에서 일하던 시절 얘기예요. 피가 사방으로 튀었어요. 산업재해 14급, 우측 사지 골절 일부 탈락. 그 때 받은 산재보험금이 26만 원이었는데요. 노동부 찾아가 일주일동안 싸워서 겨우 받아냈어요. 근데 다른 사람들이 기타 치는 걸 보면 그게 참 부럽더라고요. 82년도인데, 제 월급이 6만 원 정도 됐어요. 산재보험금 받아 4만원 주고 기타를 샀는데 좋았어요. 기숙사에서 혼자 기타 치면서 노래 부르고, 그러다 음악 하는 형들 만나게 되고” 그게 노래 인생의 시작이었다.  

이른바 ‘투쟁가’ 중에서 <불패의 전사들>을 최고로 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김성만은 “90년인가 성남전자 싸움을 함께 했는데 파업현장에 결합하고 맞은 첫 패배였다”며 “경찰한테 밀려 회사 옥상까지 올라갔다 그 곳에서 글을 썼고 나중에 노래로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다시는 패배하지 말자는 다짐과 함께 <불패의 전사들>이라는 제목을 붙였고 노래를 지역의 노동자들에게 들려줬다. 그러던 중, 누군가 “전노협 창립 1주년 노동자노래 공모를 한다는데 이 노래를 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김성만은 대상을 받았고, 노래는 전노협 노래음반 <철의 노동자>에 실렸다.

산재보험금으로 산 기타로 노래인생 시작

<비정규직 철폐 연대가>의 탄생비화도 궁금해졌다. 김성만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자주 만나면서도 비정규 문제를 잘 몰랐다”며 “그러다 불안정노동철폐연대라는 단체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노래 작업을 하자며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에 대해 알기 위해 그 단체에서 주는 자료들을 읽어 보았고, 무엇보다도 김성만은 비정규직 투쟁 현장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투쟁의 노래는 투쟁 현장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그. “비정규직 철폐하자”는 구호를 듣고 노래 가사와 제목을 생각해냈다. 이 노래를 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김성만의 손을 잡으며 “우리 노래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 뒤 김성만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청소 노동자를 위한 <날아라 빗자루>를 비롯하여 <유통 비정규직 투쟁>, <경기보조원의 노래>, <덤프야 가자> 등.

<삶과 사랑을 온몸으로 노래하라>는 제목의 책에 대해 물었다. 김성만은 “지금은 없어진 인천노동자문학회에서 시를 썼고, 현장을 다니며 인터넷에 글을 꾸준히 올렸다”며 “음반을 준비하는데, 그동안 쓴 글들을 묶어 책도 함께 내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 우리네 삶에 대해 노래해 보고 싶었다”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번에는 그저 강하고 센 노래만 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잔잔하게 불러보고 싶었고요. 그래서 군고구마 파는 할아버지, 국화빵 장수, 구둣방 수선공 그런 이야기들이 많아요. 아참, 중요한 거. 음반판매해서 비정규 투쟁기금으로 쓰거든요. 무엇보다 투쟁사업장에는 그냥 보내드리니까 저한테 연락주세요”  

“음반판매해서 비정규 투쟁기금으로 쓴다”

자신과 홍동수 GM대우차비정규지회 조합원 휴대폰 번호를 꼭 실어달라 당부하는 김성만. “현장에서 노동자 문화가 사라지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더니 그는 고개를 젓는다. 김성만은 “노동자들이 전혀 조직되어 있지 않았던 그 이전을 떠올려보면 지금 상황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김성만은 “무엇보다도 비정규 투쟁이 늘면서 현장 문화패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며 “몸짓, 노래 등과 같은 문화 활동들이 새 간부와 활동가를 만들어내는 역할도 한다”고 덧붙였다.

김성만은 “전문가들의 수준 높은 공연을 접하는 것도 좋지만, 노동자 스스로가 노동자 문화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이왕 현장문화 얘기가 나왔으니 ‘노동자가요제’ 홍보를 해야겠다”며 ‘이용석가요제’에 대해 소개했다. 이용석 열사는 2003년 근로복지공단 비정규 노동자로 일하다 집회 도중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분신했다.  

김성만은 2008년에 이용석 열사상을 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 이용석 추모사업회에 노동자 가요제를 열어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이용석가요제’가 올해로 두 번째를 맞았고, 1회 때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가 대상을 받았다. 김성만은 “올해 금속노조, 공공운수연맹, 전교조에서 후원을 해줬고, 관심도 늘고 있다”며 “노동자 가요제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동자 스스로 문화의 중심이 돼야 한다”

그의 바람은 무엇일까. 김성만은 “세상 좋아졌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민중가요의 존재가치가 남아있다”며 “언젠가 저항의 시대가 가고 내 노래, 우리의 저항가요가 사라지는 그 날을 꿈꾼다”고 말했다. 부평역 집회에 가야한다며 일어선 김성만은 “집회에서 노래 한 두곡 부르는 김성만이 아닌, 노동자들과 함께 우리네 삶을 노래로 얘기하는 ‘노래하는 김성만’으로 기억된다면 좋겠다”라며 이야기를 맺었다. 거리에서 외치는 그의 뜨거운 노래 덕분에 오늘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힘을 받고, 이겨야 할 이유를 얻는다.

* 비정규 투쟁기금 마련을 위해 음반 '삶과 사랑을 온몸으로 노래하라'(CD 4장)와 악보집을 택배비 포함 2만 2천원에 판매중입니다. GM대우차 비정규지회 홍동수 010-2944-2534, 김성만 010-9120-8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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