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는 2010년 한 해 동안 우리 현장에 얼마나 많은 발암물질이 존재하는지 밝혀냈으며, 우리가 사용중인 발암물질 중 다수가 해외에서 사용하지 않는 대체가능한 물질들이라는 것도 밝혀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금속노조는 시민사회단체들과 공동으로 금지물질을 제정하기에 이르렀고, 내년부터는 현장에서 실제로 발암물질을 추방하는 투쟁에 돌입할 것이다. 이와 함께 전체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개선 투쟁도 시작할 것이다.

이제 금속노조의 행보는 사회적 지지를 얻고 있고, 정부를 견제하는 강력한 주체로 평가받게 되었다. 지난 12월 14일 금속노조 4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토론회 "자동차산업의 발암물질이 노동자, 소비자,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서도 또 하나의 작지 않은 성과가 만들어졌다.

▲ 토론회 수준이긴 하지만 금속노조는 정부에게 발암물질 관리대책을 요구하였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정부는 국제노동기구 협약 비준 필요성을 인정하고 추진할 의사를 밝혔다. 이것은 우리의 투쟁 성과다. 5월27일 충남지부 한 사업장에서 발암물질 진단사업 현장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토론회에는 전문가와 노동자, 환경단체, 그리고 고용노동부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노동부는 최근 발암물질 관리제도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자체계획을 토론문을 통해 소개했다. 그런데 미처 기대하지 않았던 내용이 고용노동부 토론문의 맨 마지막에 실려 있었다. 정확한 문구는 이랬다.

“고용노동부는 국제노동기구 협약 제139호(직업성암협약) 비준을 준비 중이며, 이를 통하여 발암성물질에 대한 관리를 강화할 예정임(토론회 자료집 88쪽)”

토론회자료집에 짧게 언급된 내용을 가지고 다 결정된 일인 양 화들짝 반겨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국제노동기구 직업성암 협약을 소개하고 비준을 요구해왔던 우리 입장에서는 그냥 넘길 문구가 절대 아니었다. 왜냐하면 국제노동기구의 직업성 암 협약을 비준하게 된다는 것은 우리나라 정부가 몇 가지 책임을 이행하겠다는 약속을 국제사회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 협약 비준으로 발생하는 정부책임 중 핵심적인 것은 이러하다.

기대 못했던 고용노동부의 반응

첫째, 정부는 어떤 물질이 발암물질인지 정해야 하며 노출이 금지되거나 승인 또는 제한되어야 하는 물질도 정해야 한다. 최근 노동부가 발암물질 목록을 제정하고 특별관리대상 물질도 정할 것이라고 밝힌 것과 연결된다. 대신 국제노동기구 협약을 비준한다면 ‘특별관리’라는 애매한 말 대신에 ‘금지’나 ‘제한’이라는 수단을 통해 발암물질을 줄여나가야 한다.

둘째, 정부는 노동자들이 노출될 수 있는 발암물질을 비발암물질로 대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발암물질을 안전한 물질로 대체하는 것은 금지 다음의 강력한 예방대책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는 아직까지 화학물질 대체와 관련해 어떠한 역할도 없었다. 협약을 비준한다면 정부는 발암물질 대체에 대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 11월16일 열린 '발암물질 현장조사결과 및 향후 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박유기 노조 위원장이 조사 결과에 대한 노조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신동준

정부차원의 대체노력은 국가별로 다양하다. 캐나다와 유럽처럼 사업주들에게 강제적인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 유해물질에 세금을 부여하는 노르웨이 등의 방식을 따를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소극적으로 대체물질에 대한 연구를 정부에서 일부 진행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한 것처럼 할 수도 있다. 이는 힘겨루기에 달렸다. 노동조합과 시민사회의 요구수준과 요구강도에 따라 결정될 문제라는 뜻이다.

셋째, 정부는 발암물질에 노동자들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를 명시해야 하며 적절한 기록체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 항목에 대해서도 실현방법은 여러가지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는 사업주의 책임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아울러 발암물질 노출노동자들에 대해 통계를 구축하는 것은 국가차원의 직업성 암 예방과 보상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넷째, 정부는 퇴직노동자까지 포괄하여 필요한 건강진단이나 검사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부분의 직업성 암이 퇴직 뒤에 발생할 것을 예측한다면 퇴직노동자에 대한 추적관리는 매우 필요한 일이다. 사업장별로 발암물질을 사용한 경우 퇴직노동자에 대한 추적관리가 의무화될 수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고용노동부가 국제노동기구 협약 비준 가능성을 토론문에 언급한 것을 두고 지나친 확대해석을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국제노동기구 협약 비준은 매우 긍정적인 것이다. 협약비준이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할 성질이 아니다.

토론회 수준이긴 하지만 금속노조는 정부에게 발암물질 관리대책을 요구하였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정부는 국제노동기구 협약 비준 필요성을 인정하고 추진할 의사를 밝혔다. 이것은 우리의 투쟁 성과다. 그렇다면, 이제는 조속한 협약 비준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2011년 제도개선 투쟁방향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면밀한 제도개선 요구안을 만드는 알찬 겨울을 보내야 한다.

김신범 /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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