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만에 공장에 들어가보니 가동을 멈춘 채 더운 여름을 보낸 기계에 녹이 다 슬었다. 30년 동안 1천도가 넘는 열을 뿜어내다 냉랭히 식어버린 화로는 다시 불이 붙었다.

평균나이 54세에 평균근속 23년. 내년이면 만 57세로 정년퇴임을 맞는 노동자가 30명 중 15명이다. 젊은 시절부터 철선 만드는데 청춘을 바친 늙은 노동자들이 지난 2일 161일 파업 투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우리 합의서 보면 사람들이 웃을지도 몰라요. 이게 뭐라고 161일을 싸웠냐고. 근데요, 다 이루진 못했지만 우린 승리한 겁니다. 노조를 지켰으니까요”

▲ 12월8일 부산양산지부 진흥철강 김영진 지회장(사진 오른쪽)과 장수일 사무장이 투쟁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신동준

8일 낮, 회사와 합의를 하고 업무 복귀를 하루 앞둔 진흥철강지회(지회장 김영진) 조합원들을 만났다. 회사의 직장폐쇄와 단체협약 해지에 아랑곳 하지 않고 싸웠다. 그리고 노조 깃발을 들고 당당히 공장으로 들어왔다. 5개월 만에 처음으로 맘 편히 웃어본다는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평균 54세에 근속 23년 노동자들

장수일 지회 사무장은 “우리 회장님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민’자랑 ‘금’자”라고 전한다. 1994년 박태호 회장과 박원호 사장 형제가 회사 경영을 맡으면서부터 늘 하던 말이 “민주노총 탈퇴해라. 금속노조 탈퇴해라. 금속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한다”였다 한다.

올 임단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회는 정년연장과 임금인상, 학자금지원 등을 요구했고 두 달 넘는 기간 동안 10차례 교섭을 진행했다. 하지만 회사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교섭안을 제출하지 않았다. 회사는 “금속노조 탈퇴해라. 탈퇴만 하면 요구안 다 들어주겠다”거나 “탈퇴 안할거면 3~4년 동안 노조 활동 아무것도 안하겠다고 약속하라”는 말만 반복했다.

▲ 12월8일 지회의 한 조합원이 161일간 투쟁을 한 쪽 벽에 사진으로 정리해 놓은 지회사무실에 앉아 있다. 신동준

노조 깃발만 내리면 임금 인상도 원하는 만큼 해주고 정년도 지회가 요구한 것보다 5년이나 많은 65세로 해주겠다는 달콤한 말도 흘렸다. 심지어 교섭 당일 아침까지도 회장은 유니온샵을 포기하라는 말 뿐이었다.

매 년 3~4차 정도 교섭이 진행되면 안을 냈던 회사는 올 해 유독 10차 교섭이 넘도록 버텼다. 직장폐쇄를 통보하고 “공권력 투입하겠다, 회사 문 닫는다”는 협박까지 했다. 올 해만큼은 반드시 금속노조 탈퇴 시키겠다고 작정한 것 같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진단이다.

하지만 지회도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조합원들은 임단협 요구안만 가지고 싸웠다면 이렇게 오래가지 않았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 김영진 지회장은 “지난 몇 년 동안 회사가 어렵다고 해서 임금도 동결하고 노조가 많이 양보했다. 그런데 이제는 노조를 완전히 없애겠다고 하니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고 전한다.

“금속 탈퇴하면 다 들어준다”던 회사

이들이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열악한 처우 때문이었다. 노조 깨기에만 혈안이 된 사장은 설비 투자를 일체 하지 않았다. 나날이 생산물량은 줄었고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은 희생을 강요당해야 했다.

23년 넘게 일한 조합원 한 달 임금은 150만원이 채 안된다. 몇 해째 임금을 동결했고 기본급은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 정도다. 150명이 넘었던 생산직 노동자는 신규채용 없이 정년퇴직자만 생기다 보니 어느새 30여 명으로 줄었다. 2000년에 입사해 11년차를 맞는 장수일 사무장이 막내다.

▲ 12월8일 김두열 부지회장이 취재 중인 노조 편집부장에게 공정을 설명하고 있다. 신동준

“대한민국에 이런 공장 없다”는 게 김두열 부지회장의 설명이다. 공장이 처음 생긴 게 1985년,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용하는 기계가 대부분이다. 5년 전 기계 2대 바뀐 게 전부다. 철선을 만들다 보면 자재에 붙어있던 철가루와 먼지가 많이 생기는데 공장 안에는 환풍기도 하나 없다.

부지가 만 평이 넘어 공단 내 큰 공장에 속하지만 투자가 없다보니 공장 반 쪽은 다른 회사에 임대를 줬다. 30년 전 활기가 넘쳤던 공장은 조용하다. “파업하면 회사 문 닫겠다”는 회사 협박에 오히려 조합원들은 “닫으려면 빨리 닫아라”라고 반박했다. 이대로라면 매 년 열악한 상황만 계속되고 나아질 게 없었다.

6월25일 지회는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부산에 있는 본사 앞, 회장과 사장 집 앞을 찾아다니면서 선전전을 하고 집회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회사는 묵묵부답이었고 결국 8월24일 직장폐쇄, 9월3일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했다. 그렇게 161일을 싸웠다.

조합원들은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사는데다 다들 가장이다보니 세 달 넘게 임금 한 푼도 못받아 많이 고통스러웠다”고 당시 상황을 얘기한다. 그렇다고 싸움을 포기할 수 없어 조합원들은 생계 투쟁에 나섰다. 인력시장에 나가 일당 7만원 ‘막노동’도 했다. 일당 중 10%는 인력소개소 차지였다.

▲ 12월8일 장수일 진흥철강지회 사무장이 먼지가 쌓인 생산설비를 보면서 생각에 잠겨 있다. 신동준

어떤 조합원은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또 어떤 이는 대리운전도 했다. 김 부지회장은 “그때 간부들은 당직을 서면서 사무실을 지켰는데 조합원들이 와서 어떻게 됐나 물어도 되는게 없으니까 마음이 참 착잡하더라구. 여름날 나가서 일하고 얼굴 시커매져서 온 거 보면 눈물도 나고” 라고 뜨겁고 메말랐던 여름을 회상했다.

직장폐쇄에 단협해지 vs 대리운전에 ‘막노동’

어려움이 많았지만 파업 기간 동안 30명 조합원 중 이탈자는 한 명도 없었다. 생계 활동을 하는 중에도 2주에 한 번씩 전조합원 총회를 열고 상황을 공유했다. 이후 투쟁 계획도 같이 논의했다. “한 두 달이면 손들고 들어올 줄 알았을텐데 5개월 넘어도 그런 기미는 안보이고 더 단결이 되니까 회사도 놀랐을거야” 30명을 하나로 뭉치게 만든 건 “민주노조는 절대 못 버린다”는 생각이었다.

“노조만 탈퇴하면 다 들어준다는 말, 우리는 안 믿습니다” 김 지회장은 조합원들이 노조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진흥철강은 부산에도 계열사를 가지고 있다. 그 곳에도 한국노총 소속 노동조합이 있었지만 회사 회유로 노조가 없어졌다. 그 후 노동강도는 세지고 소사장제가 들어와 고용이 불안해졌다는게 김 지회장의 설명이다. “부산공장 보면서 노조 깨지면 바로 저렇게 된다는 걸 조합원들이 알았죠”

진흥철강지회 싸움에 부산양산지부의 조합원들도 큰 몫을 했다. “지부에서 추석 때 양말을 팔아서 조합원들 귀향비로 30만원씩 지원을 했어요. 투쟁이 장기화되다보니 재정적으로 많이 어려웠는데 큰 힘이 됐죠”

▲ 12월8일 김영진 진흥철강지회장이 가동을 앞둔 설비를 살펴보고 있다. 신동준

지부는 소속 조합원들이 1만원씩 모아 진흥철강 조합원들에게 생계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장 사무장은 “연대를 받아보니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겠더라구요. 집회 가는거 별로 안 좋아하던 조합원들이 울산 집회 가겠다고 자발적으로 모였어요.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어요”라며 투쟁을 하면서 생긴 긍정적인 변화라고 얘기한다.

“노조 못 지키면 저렇게 됩니다

조합원들의 의지와 연대의 힘이 모여서 지난 2일 161일 만에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조합원들 중에는 모든걸 걸고 싸운 거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번 싸움의 가장 큰 성과는 노동조합을 지켰다는 것. “다른데 봐도 노조가 흔들리고 노동자들끼리 싸우면 그 싸움 진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똘똘 뭉쳐서 노조 지켰어요. 회사가 앞으로 쉽게 건드리진 못할 겁니다”

▲ 12월8일 노조 선전홍보실의 취재에 열띤 증언을 뱉어낸 지회 조합원들이 점심식사를 위해 지회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신동준

내년 회사를 떠나야했던 15명은 2년 더 일하게 됐다. 부족한 수준이지만 임금도 인상됐다. 하지만 아직 걱정거리가 많다. 김두열 부지회장은 “회사에서 신규채용 하고 지회 간부 할 사람도 많이 생겨야 하는데”라고 걱정한다. 올 해 사장은 교섭자리에서 회사가 어려우니까 내년 구조조정에 합의하라는 말도 했다. 앞으로도 첩첩 산중이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싸우면 이긴다는 자신감, 같이 싸우는 동지가 있다는 든든함이 생겼다. 9일부터 일터가 가동됐다. 이제 다시 공장 안에서 공장과 노조를 지킬 늙은 노동자들에게 파이팅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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