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서 무슨 힘이 있다고 이런 걸 공개했겠어. 너무 억울하고 견딜수가 없으니까...”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업체 소장과 조장에게 성희롱을 당해 온 하청 여성노동자는 그 사실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9월20일 해고 됐다. 회사내 선량한 풍속을 문란하게 했다는 것이 이유다. 억울함을 호소했더니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징계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는 공장 정문 앞에 찬 바람 막아줄 천막도 없이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해고 시킬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지. 징계위원회가 열릴지도 몰랐어. 내가 잘못한 게 아니니까 나한테 해 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지” 예상치 못했던 징계 해고 통보를 받은 피해자는 정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시작했다. 하지만 투쟁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피해자는 1인시위를 해야 하는 건지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첫 날은 창피해서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을 수가 없었어. 마스크를 내려야 커피라도 마실텐데 이걸 내리면 얼굴이 보이니까 너무 싫은거야. 그래서 정말 물 한 모금 안마시고 있었다니까” 회사가 원했던 것도 바로 이런 것이었을 거라고 얘기한다.

“회사는 해고하면 내가 창피해서라도 조용히 나갈거라고 생각했을거야. 저 공장 안에서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겠어. 그런데 성희롱이라고 하면 대부분 여자들이 수치스러워서 못 밝히고 숨기고 살거든” 제2, 제3의 피해자를 막기 위한 ‘본보기’가 필요했던 회사가 내린 결정이 해고아니겠냐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밖에서 싸워주겠다고 결심하고 피켓을 들었다.

14년 하청 인생, 그리고 두 번째 해고

사실 피해자는 현대차에서 두 번 해고를 당했다. 그녀는 아산에 출고센터가 처음 생길 때부터 14년 간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하는 일은 늘 같았지만 그 사이 7번이 넘게 소속 업체가 바뀌었다. 그리고 2002년 다른 때와 다름없이 업체가 변경됐고 같은 공정에서 평소처럼 일을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 온 업체 사장은 갑자기 사무실로 피해자와 3명의 여성노동자를 불러 이름을 확인하더니 그 자리에서 해고했다. 첫 번째 해고였다. 

“처음에는 나가라니까 짐을 싸서 나왔는데 집에 가서 생각해보니까 너무 억울했어. 그때 현대차에 노조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114에 노조 전화번호 물어봐서 전화를 했지” 노조 간부를 만나 사연을 얘기하고 며칠 뒤 업체 사장이 찾아왔다.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면서 복직을 약속했고 결국 4명 모두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번에도 꼭 복직해서 현장에 들어가야지. 내가 왜 쫓겨나야돼. 나오더라도 내 발로 나와야지” 8년 전 보다 훨씬 길고 힘든 복직 투쟁을 시작한 셈이다. 투쟁 과정의 어려움이야 말하자면 끝도 없다. 공장 정문 앞과 출고센터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피해자를 회사 경비가 폭행해 벌써 2번이나 병원에 입원을 했다. “현대 땅이다, 현대 화장실이다”라면서 발도 딛지 못하게 했다. 농성이라고는 하지만 허허벌판에 돗자리만 깔고 앉아있다보니 추운 날씨 탓에 어깨, 허리, 목 안 아픈 곳이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나는 해고 됐는데 정작 성희롱한 조장은 당당하게 회사 다니고 있어. 심지어 내가 1인시위 하고 있으면 뻔뻔하게 구경하러 나오는거야”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신경성 위염이 심해졌다. 피해자는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 “조장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또 경비한테 맞아서 병원 입원했을 때 내가 자면서 ‘놔, 저리가, 건드리지마’하면서 헛소리를 하더래”

정규직으로 복직하는 그 날 꿈꾼다

하지만 이번 투쟁은 결코 외롭지 않다. 매일 오전반, 오후반을 정해 농성장을 함께 지키는 지역 동지들이 있다. 그녀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도 따뜻한 호빵을 들고 농성장을 찾는다. 얼마 전에는 새 식구도 생겼다. ‘단결이’라는 이름의 강아지. 단결이는 신기하게 현대차 정문 쪽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보면 으르렁거린단다. 농성장 마스코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공장 안에서 파업하고 잔업거부하면서 비정규직을 없애야 한다고 외치는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은 누구보다 큰 힘이 되고 있다. “다들 출퇴근하면서 들러서 힘내라고 얘기도 해주고 따뜻한 음료수도 갖다주고 내 몸 같이 싸워주고 있어. 그저께는 한 명이 와서 ‘추우시죠. 힘내세요. 저희가 더 힘내서 싸울께요’ 이렇게 말하고 갔어. 다들 너무 감사해”

공장 밖 피해자와 공장 안 조합원들의 투쟁은 하나라고 얘기한다. “하청이라서 받는 고통은 다 똑같아” 피해자는 자신이 정규직이었다면 이런 일로 회사가 해고까지 시켰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희롱 당해도 억울하다고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비정규직의 삶이라는 것. “하청노동자는 잘라버리고 업체 폐업하고 가버리면 끝이라고 생각하는거야. 하청 설움 안 당해본 사람은 몰라” 14년 동안 무엇이 제일 힘들었냐고 묻자 너무 일상적으로 차별받다보니 이제는 억울한 일을 당해도 다 잊어버리게 된다고 대답한다.

“나도 정규직 되고 싶지” 피해자는 이번에 복직할 때는 정규직으로 현장에 들어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입고 있는 잠바에는 노란 색으로 ‘현대자동차’라고 적혀 있다. 처음 입사했을 때 회사는 비정규직에게도 이 옷을 줬다. 5년 정도 전부터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라면서 업체 이름이 적힌 잠바를 주기 시작했다. “같은 회사에서 같은 일 하는 노동자들이 동등한 대우 받는 게 제일 중요한거야. 비정규직이라고 정규직한테 지배받지 않아도 되고” 해고자가 되고 공장 안에 들어가 같이 싸울 수는 없지만 정규직으로 일하고 싶다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공장 밖을 열심히 지키고 있다.

아산을 찾아간 26일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공동 잔업거부 투쟁을 벌인 날이다. 저녁 5시, 잔업이 없는 노동자들이 하나 둘 공장 밖으로 나온다. 피해자와 같이 농성장을 지키던 사람들도 피켓을 들고 퇴근 선전전을 시작한다. 곧 이 자리에 천막을 칠 예정이다. 갈수록 추워지는 날씨에 천막이라도 생긴다니 다행이다. “앞으로 계획? 끝까지 싸워서 꼭 복직해야지” 몸도 마음도 지치지만 투쟁 의지만큼은 약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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