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투쟁의 상징과도 같던 기륭전자 투쟁이 지난 11월 1일 마무리됐다. 마지막까지 농성을 벌였던 조합원 10명의 고용을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노사 간 합의했다. 이때까지 1895일이 걸린 것이다.

시민과 함께 하는 ‘축제, 골목에서 만나다’를 준비하기 위해 12일 다시 농성장에 모인 조합원들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조합원들은 먼저 지역주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현수막을 농성장 앞에 내걸었다. 지난 6년 동안 조합원들은 모든 일을 스스로 해내야했고, 이제는 높은 전봇대에 올라가 현수막도 척척 걸 수 있게 됐다.
조합원들은 승리에 대한 기쁨을 감추지 못했지만, 역시 1895일의 투쟁이 남긴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은 듯했다. 유흥희 조합원은 "6년이나 걸렸던 문제가 10분 만에 타결됐다"며 허탈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성과는 조금밖에 안 났지만 그 조금을 위해 이렇게 처절하게 싸워야 했나 싶어서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지만, 그 내용이 모두 지켜져야만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축하전화를 받아도 잘 몰랐는데, 그런데 오늘 농성장을 치우다보니 조금 실감이 나긴 하네요. 연대의 힘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금속노조 조합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유흥희)      

“도와주신 많은 분들 너무 고맙습니다. 하지만 같이 복직 못하는 조합원들에게 너무 미안해요. 조인식을 하는데 ‘저 종이 쪼가리 한 장 받으려고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7개월 된 우리 아기를 더 이상 농성장에서 키우지 않게 되어 좋아요.” (이미영)

“마음이 안 편해요. 회사에서 몇 번 약속을 뒤집었잖아요. 그래서 복직해봐야 알 거 같아요. 허탈하기도 하고. 그래도 끝을 봐서 다행입니다. 투쟁하면서 많은 동지들을 만났는데, 모두들 고맙습니다.” (이인섭)

"이제 우리 아이 농성장에서 키우지 않게 됐어요"

“조인식 이후에 보고대회도 하고 집회에도 가고 계속 일정이 있어서 진짜 우리 투쟁이 끝났나 아직 실감은 안나요.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셨지만, 특히 친정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2008년에 협상 결렬됐을 때 정말 힘들었어요. 단식하고 있었는데 걷기 힘들 정도로 몸과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하지만 곧 마음을 비웠죠. 잘 안되고 나니까 오히려 ‘같이 가보자, 끝까지 가보자’ 는 오기가 생겼어요.
사실 너무 오랫동안 싸웠고, 힘든 시간들이였기 때문에 투쟁할 때는 이런저런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끝나고 보니 그저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일정이 계속 있거든요. 그래도 틈 날 때마다 21개월 된 세연이와 같이 있어주려고요.” (강화숙)

단식투쟁을 하느라 20일간 곡기를 끊었던 윤종희 조합원은 "2008년 단식으로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며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정말 끝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단식에 들어갔다”고 당시의 심정을 밝혔다. 윤 조합원은 “물론 쉽게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 11월12일 '기륭의 6년, 골목에서 6년 그 끝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골목축제가 기륭 공장 농성장 앞에서 열렸다. 지금은 철거해 볼 수 없는 기륭전자분회 컨테이너 농성장과 경비실이다. 신동준

“힘들었지만 투쟁 6년 자체가 값집니다.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와서 다행입니다. 제가 마지막 단식을 결심했을 때, 교섭을 책임지고 있는 동지들이 너무 마음 아파했는데 어쨌든 결과가 나와서 좋습니다. 함께 하던 조합원들이 하나 둘 떠나갈 때, 제일 힘들었죠. 붙잡으려고 설득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분이라 어쩔 수 없었죠. 그걸 잘 알기 때문에 다같이 복직하지 못해 더 미안합니다.
이제 많은 분들이 느끼셨겠지만, 비정규직 투쟁은 비정규직 당사자들만의 싸움이 아니에요. 정규직 역시 노동조건이 점점 뒤로 가고 있잖아요. 우리가 투쟁을 시작할 당시, 기륭전자 정규직들 상황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어요. 프랑스 보니까 학생들이 노동자들 파업에 함께 하던데 연대의 의미도 있지만, 결국 그 학생들이 미래의 노동자이잖아요. 바로 자기 자신의 일이라고 인식한 거예요. 정규직노동자의 자녀가 비정규직이 되지 말란 법은 없거든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투쟁에 관심을 갖고 연대해 주세요.”

"여러분 자녀가 비정규직 되지 말란 법 없어요"

이같이 말하는 윤종희 조합원을 비롯한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무엇보다도 다같이 여행을 가보고 싶다"며 입을 모았다. 유흥희 조합원은 “함께 해온 시간에 대해 마음 터놓고 얘기할 시간이 필요한 거 같다"고 말했고, 이미영 조합원 역시 “그동안 하루도 마음편할 날이 없었는데, 다같이 여행가서 마음 편히 놀았으면 좋겠다”라는 뜻을 전했다.

또한 조합원들은 직접 당사자로서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흥희 조합원은 “파견 문제를 해결 못해서 셀 수 없이 많은 노동자가 힘겹게 살아가는 현실”을 지적했다. 유 조합원은 “우리 투쟁을 6년까지 끌게 한 파견법을 없애야 다시는 이런 고통이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이다”라며 “현재 싸우고 있는 비정규직들을 모아서 파견법 철폐를 위한 공세적인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윤종희 조합원은 “구로공단에는 제2, 제3의 기륭전자들이 있다. 3개월, 6개월짜리 초단기 파견 계약직으로 떠도는 노동자들이 정말 많다”면서 노조 차원의 조직화 사업을 요구했다.

지나가던 동네주민이 조합원들에게 다가와 “뉴스에서 봤다”며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행사 준비를 도와주기 위해 와 있던 한 분은 “농성장에 오기 위해 탔던 03번 마을버스, 농성장 앞 충남슈퍼, 농성장 천막, 쉽게 잊지 못할 거 같다. 언제라도 찾아오면 여기에 누군가 있을 것만 같다. 이상한 기분이 든다. 어쨌든 현장으로 돌아가시게 되어 기쁘다”라며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이제 그 험난했던 1895일의 시간을 끝내고, 다시 공장으로 돌아간다. 회사의 복직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고, 기륭전자의 싸움이 진정으로 끝나는 그 날을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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