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속년수 20년, 나이 42살에 사춘기를 겪고 있는 자녀를 둔 어느 자동차공장 노동자. 이 노동자의 가장 큰 고민과 관심사는 무엇일까? 인천 부평의 GM대우차지부가 지난 9월부터 10월까지 조합원 전체교육 때 ‘자녀와의 소통’이라는 주제로 강사 6명을 섭외해 교육을 펼쳐 화제다. 이번 교육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아래 전교조) 학부모지원사업단이 이례적으로 나섰기 때문. 금속노조 조합원 교육을 기획한 상인천초등학교 박문희 교사(전교조 인천지부 수석부지부장)로부터 그 사연을 들어봤다.

전교조가 ‘자녀와의 소통’이라는 주제로 다른 노동조합에 ‘선생님’을 강사로 보내는 사업을 추진한 건 올 1월부터였다. 이 사업은 전교조 학부모지원사업단이 올해 의욕적으로 벌인 사업이다. 박 교사는 전교조 인천지부 학부모지원사업단장.

▲ 박문희 선생님(전교조 인천지부 학부모지원사업단장). 신동준
“사업제안은 GM대우차지부 교육위원회에서 했고 우리는 이 주제에 맞는 추천된 선생님 6명을 9월부터 투입해 교육을 벌인 것입니다”. 전교조 인천지부 학부모지원사업단은 지난해 소속지회 10곳마다 책임자 한명씩을 정해 지역의 다른 노조나 단체에서 교육요청이 오면 그에 맞는 ‘선생님’을 보내는 시스템을 갖춰왔다 한다. 하지만 GM대우차 교육은 한번에 6백명에서 8백명까지 듣는 대규모 교육이라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스타급 강사를 찾느라 힘들었지요”. 그렇게 추천된 강사들은 두 달 동안 △노동자라서 행복한 아버지 △애들아, 아빠는 금속노조 GM대우차지부 조합원이란다 △사교육 함께 탈출하기 △자녀와 소통하는 아버지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 교육희망 만들기 등의 주제로 교육을 펼쳤다.

금속노조 교육에 전교조가 투입된 사연

이번 교육에 GM대우차군산지회와 창원지회 교육위원들도 참관했다. 그 결과 군산지회도 12월부터 ‘자녀와 소통하기’ 교육을 전북지역 전교조 학부모지원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할 예정이다.

1년에 한 두 번의 기회밖에 없는 조합원교육이니 GM대우차지부도 준비에 만전을 기했을 거다. “선생님을 교육에 투입하기 전에 GM대우차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두 번의 시범강의를 했어요”. “어떤 선생님은 자녀와의 대화법을 중심에 뒀고 어떤 분은 사교육 폐해에 대한 제기를, 또 어떤 선생님은 노동자 정체성에 대한 교사의 존중감에 교육초점을 뒀어요”. 박 선생은 그렇게 나름 철저한 준비를 거쳐 펼친 실전 뒤 자녀문제에 대해 상담전화가 줄을 잇는 강사도 있다고 전한다.

‘자녀와의 대화’를 주제로 전교조 ‘선생님’을 다른 노동조합 교육에 활용해야겠다고 처음 생각한 이는 전교조 본부의 학부모지원사업단장 진영옥 선생. 진 선생은 전직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었다. 민주노총 근무 당시 주변의 노조간부 및 활동가들이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와의 소통문제로 골머리 썩고 있는 것을 보고 전교조 복귀 뒤 이를 곧바로 추진했다고 한다. 그렇게 올 초부터 추진된 이 사업은 울산의 현대자동차지부도 활용했다.

울산의 현대차지부는 일찌감치 올 2월부터 4개월 동안 ‘자녀와의 소통’을 주제로 조합원 교육을 펼쳤다. 67차례에 걸친 교육에 투입된 ‘선생님’도 수십명. 지부의 공식 교육평가서에 따르면 “앞으로 부부간의 소통문제와 가정 내 민주적 소통에 대한 교육도 해달라”는 요구도 많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고 전한다. “자녀와의 소통 교육에 투입되는 교사들은 모두 상담심리를 전문적으로 공부했습니다”. 박 교사의 말이다.

자녀와의 소통, 반응 좋았다

이 사업은 사실 업종이 다른 노동조합간의 교류와 연대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연대라고 하면 상급단체끼리의 협의와 연대밖에 없지 않았냐”. 박 교사는 지역에서 교사와 그 교사가 가르치는 학생의 부모인 다른 노동자가 이렇게 만나는 것으로도 유의미하다고 덧붙인다. “노동조합 조합원에게 교육을 하러 가는 연대는 전교조로서도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박 교사의 이어지는 설명이다. 인천에서는 이를 준비하는 금속노조 쪽과 소통의 틀이 마련된 것 만으로도 지역연대 차원에서는 성과라는 게 그가 강조하는 대목이다. “자동차공장 노동자가 주야맞교대로 1년의 반을 강제로 가족과 소통할 기회가 박탈돼 있다는 실정을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됐어요”. 박 선생도 이번에 제조업 노동자들을 제대로 알았다 한다.

▲ 11월17일 열린 '자녀와 소통' 조합원교육사업 평가토론회에서 윤용신 GM대우차지부 교육위원장이 사례발표를 하고 있다. 신동준
하지만 이 사업이 시작된 지 1년도 안되어 아직 평가해야 할 게 많다고 박 선생은 털어놓는다. “교육에 참여하는 조합원들의 자녀 연령층이 각기 다르다 보니 자녀연령에 따른 맞춤별 모임이 필요할 수도 있겠어요”. 이는 교육을 의뢰하는 곳에서 연령별로 모으는 수고가 필요하다. “교육에 투입되는 선생님이 누구든 통일된 교안도 전교조 차원에서 만들어야 하고요”. 박 교사는 이어 “이 교육을 의뢰한 노조의 교육위원들과 우리 쪽 강사들 간에 충분한 토론으로 교안을 만들면 맞춤형 교육에 근접할 수 있었을텐데”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우리도 제조업노동자 제대로 알게됐다”

박 교사는 지역의 교사와 지역의 노동조합을 연결해 줄 수 있는 아이디어도 던졌다. “GM대우지부 홈페이지에 교육상담실 메뉴를 두고 운영하고 전교조 교사가 지속적으로 그곳을 통해 상담을 해준다거나 하는 방식은 어떨까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직 1년도 안된 초기단계이니 할 말도 평가할 것도 많은 모양이다. 박 교사는 이제 인천지부 수석부지부장과 겸임한 학부모사업단장이라는 직책을 임기를 다해 내려놓는다. 하지만 박 교사는 “이 사업 꾸준히 하면서 교사노동자와 금속노동자가 서로 알아가면서 서로에게 도움주는 관계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한다.

“맞벌이 하면서 학부모는 학교 갈 시간이 없다. 조합원 가족이 만나기 힘든 선생님을 현장에서 만나니 그것 자체가 좋다”. 인터뷰 날 GM대우차지부 윤용신 교육위원장이 한 말이다. “선생님이 조직적으로 강사단 구성해 우리 같은 조직된 노동자 교육을 이렇게 계속 배치하면 선생님들만의 외로운 싸움은 줄어들 것이다. 교사와 자주 교류한 학부모들이 학교를 향해 의견개진을 직접 하게 될테니”.

인천과 울산만이 아니다. 전국의 16개 시도에 전교조 각 지부가 있고 모두 학부모지원사업단이 있다. 그냥 전교조 각 지부에 전화만 하면 된다. 그러나 여기서 잠깐. 강사로 뛰게 될 ‘선생님’들은 노조전임자가 아니다. 어떨 땐 조퇴나 월차를 쓰고 투입되는 이들이다. 때문에 가급적 교사들의 방학 때를 이용하면 어떨까. 자기 방에만 쳐박혀 있는 자녀와의 소통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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