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속노조가 환경단체들과 연대를 시작했다. 녹색연합, 여성환경연대,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 이렇게 네 개 환경단체가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회의하고 있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발암물질 사업을 통해 금속노조와 환경단체들이 만나기 시작했고, 공장의 발암물질을 없애는 것이 우리 사회 전체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에 대해 금속노조와 환경단체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건강한 자동차 만들기 운동’은 금속노조와 환경단체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운동으로 준비되고 있는데, 환경단체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은 서로 그렇게 친한 관계가 아니었다. 오히려 대립하는 편이었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노동조합은 환경운동이 기업을 감시 고발하는 탓에 노동자들의 고용이 불안해진다고 생각하였고, 환경운동은 노동조합이 공장 울타리에 갇혀서 자신의 기업만 생각하고 지역의 환경은 고민도 않는다며 실망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생존하는데 환경적 가치는 방해가 된다고 오해하고 있었으며, 환경운동은 노동자들의 불안감을 해소시키지 못했다.

▲ 11월16일 필자가 현대차와 기아차 공장에서 실시한 발암물질 현장조사결과를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고 있다. 신동준
해외에서도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관계는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금속노조의 발암물질 추방운동을 준비하면서 찾아본 해외사례들에서는 이미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사례 하나를 들어보자.

발암물질추방사업 금속노조-환경단체 공동사업

캐나다 브리티시콜럼비아주에서는 노동환경연대회의(LEAS, Labour Environmental Alliance Society)라는 단체가 1998년 조직되었다. 단체가 조직된 목적은 환경운동가들과 노동자들 사이의 “직장 대 환경”이라는 식의 대립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그 뒤로 노동환경연대회의는 특히 암과 암예방에 있어서 많은 활동을 하게 되었으며, 노동운동과 환경운동, 소비자운동 사이의 간격을 줄여나가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왔다. 예를 들어, 노동환경연대회의에서는 “세척제, 유독물질, 그리고 생태계”라는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각 사업장에서 사용되는 세척제 제품들을 검토하고 성분을 조사해서 독성여부를 파악한 다음, 그 결과를 가지고 각 사업장의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사업주와 납품업자들로 하여금 덜 유해한 물질로 대체하도록 이끌어내는 활동을 성공적으로 펼친 것이다. 노동자를 위한 활동이 성공하자, 노동조합에서는 생활속의 발암물질 문제에도 적극 나섰다. “암에 잘 대처하는 소비자 가이드(CancerSmart Consumer Guide)"를 제작하여 시민의 알권리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이 가이드는 가정용 살충제, 식품에 잔류된 농약, 세척제품과 플라스틱 등 가정내에 있는 유해물질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 노동조합이 참여해서 만든 소비자가이드. 일상생활 제품 중에 어떤 것에 발암물질이 들어가 있는지 공개하는 운동의 일환이다.
미국 뉴저지주에서는 노동환경회의(WEC)가 만들어졌고,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환경 속의 안전하고 안정된 일자리”라는 슬로건으로 공동운동이 전개되었다. 환경운동을 하면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의식이 팽배하였기 때문에 일부러 만든 슬로건이다. 현재 이 조직에는 50개 이상의 노동조합과 지역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양심적노동자 보호법”을 제정하도록 하여 기업의 환경문제를 지역사회에 알린 노동자를 기업에서 처벌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시민단체가 노동조합과 함께 노동현장의 사안에 대해 공동의 목소리를 내며, 노동조합이 시민들과 함께 지역사회의 환경문제를 개입하는 것이 가능했다. 해외사례는 금속노조의 발암물질조사 및 ‘건강한자동차 만들기’ 운동에도 큰 영감을 주었다. 금속노조는 발암물질감시네트워크에 소속되어 있는 환경단체들에게 만남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한국의 환경운동을 대표하는 녹색연합, 여성환경연대,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와 공동사업을 전개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야를 얻게 되었다. 지금까지 노동현장의 유해물질에 대해서는 ‘노동자들의 노출가능성이 높지 않으면 괜찮다’는 식의 생각이 기준이었다. 특히 회사에서는 발암물질이 있어도 미량이니까 괜찮다, 노출이 적으니 괜찮다는 식으로 말해왔고, 노동조합에서도 특별한 대응을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 생각이 뒤집히게 되었다.

노동조합, 지역사회 환경문제 개입 가능

노동과 환경을 동시에 생각하다보니 ‘미량이라도 들어있다는 것은 폐수나 굴뚝을 통해, 또는 완성된 제품을 통해 사회로 배출된다는 뜻인데, 정말 괜찮은 것일까?’라고 의심이 들었다. ‘제품에 미량이라도 들어있다면, 이 제품을 만드는 노동자는 대량으로 노출되었을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우리 조합원이 안전하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 전체 속에서, 화학물질의 제조와 소비의 과정 전체 속에서 또 다른 노동자와 시민에 대한 발암물질의 위험을 판단해야 했던 것이다.

이제는 환경적 가치를 노동운동이 소화해야만 우리 운동이 발전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때문일까? 금속노조와 환경단체들이 ‘건강한 자동차 만들기 운동’을 기획하는 자리에서 금속노조는 환경단체들에게 놀라운 제안을 하게 되었다. “우리 조합원들에게 환경교육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환경단체들은 진심으로 기쁘게 제안을 수용하였고, 앞으로 공동개발된 환경교육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매월 두 시간씩 주어진 안전교육 시간을 활용해서 1년에 한 번 정도는 환경교육을 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을 통해 내가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이 세상을 어떻게 오염시키고, 그것이 다시 나와 나의 아이를 어떻게 오염시킬 것인지 노동자들이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 정도는 괜찮아’라며 지나치게 유해물질에 관대한 우리 노동자들의 태도에 변화가 오지 않을까? ‘지구는 금속노동자들이 지킬거야’라고 상상하는 것, 너무 오버하는 것일까?

김신범 /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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