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한 해 투쟁의 성과를 모아 11월이면 개최되는 전국노동자대회(또는 전노대)가 올해로 23회를 맞았다. 민주노조운동도 그 만큼 연륜이 생겼고, 지나온 시간만큼 전노대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올해는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났는데, 민주노총이 전야제를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그 이유는 G20 때문이란다. 전노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노동해방선봉대가 꾸려져 전국 곳곳에서 장기간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전국 순회투쟁을 하고 그 기운을 모아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이 공동으로 주최하여 서울역에서 전야제를 연 것이다. 올해 전노대는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연대해 나갈 것을 천명했다.

전노대가 시작된 것은 1987년 7․8․9월 노동자대투쟁으로 더 이상 정권의 탄압에도 쓰러지지 않는 민주노조운동이 전국에 뿌리내렸고, 지역으로, 업종으로 단결의 폭을 넓혀나가다가 마침내 전국의 노동자들이 처음 한 자리에 모인 날, 바로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 대회’를 열었다. 1970년 한 점 불꽃으로 사라졌던 전태일 열사의 정신이 전국노동자대회를 통해 노동자들의 가슴에서 가슴으로 퍼져갔다. 1988년 첫 전국노동자대회의 분위기와 그 의미를 돌아본다.

“열사정신계승, 노동해방쟁취”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민주노조를 쟁취한 노동자들이 1988년 들어서는 더 힘찬 투쟁과 조직 활동을 벌였다. 사업장 차원에서는 민주노조건설과 어용노조 민주화투쟁을, 지역 차원과 업종으로 연대조직을 만들어갔다. 1988년 하반기 들어 노동자투쟁은 노동3권을 근본적으로 무시하는 노동악법 철폐투쟁(노동조합법 3조5호, 제12조 2호의 제3자 개입금지조항 등)으로 나아갔다. 노동자들은 10월 6일 ‘전국노동법개정투쟁본부’를 결성해 10월 9일 1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노동법개정투쟁을 위한 ‘전국노동자 등반대회’를 개최했으며, 그 힘을 모아 11월 13일 5만여 명의 노동자가 모인 전국노동자대회를 만들었다.

11월 12일 저녁 8시부터 연세대에 전국노동법개정투쟁본부가 주최한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에서는 전태일 노동 상 시상식,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노동법개정 전국노동자 웅변대회, 노동자들의 발언, 노조탄압분쇄 및 노동악법개정투쟁 전국선봉대 발대식 그리고 악덕자본과 정권을 형상화시킨 것에 대한 화형식으로 이어졌다. 특히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말씀은 노동자들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노동3권 보장하라! 한다고 누가 보장해 줍니까? 야당이 노동3권 보장하지 못해요.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 힘을 가지고 있으면 보장해 달라고 부르짖지 않아도 자연히 이루어진다고. 우리가 모든 것을 우리 힘으로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진짜 위대한 노동자인 것입니다."

11월 13일 12시 전태일 열사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며 외치며 산하한 지 18년 만에, 전국의 노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투쟁의 의지를 다지는 최초의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전국노동자대회’가 노동자들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연세대 노천극장은 5만여 명의 노동자들로 가득 메워졌다. 노동자들은 서로의 어깨를 부둥켜안으며 서로의 힘을 느끼며 감격했다. 민중의례, 대회 경과보고, 전국교사협의회 투쟁보고, 투쟁선언, 지지연설에 이어 선봉대 결의로 이어지는 대회 내내 노동자들은 목이 터져라 “계승하자 열사정신! 철폐하자 노동악법!", “노동운동 탄압하는 군부독재 타도하자!", “열사정신 계승 노동해방 쟁취하자!"를 외쳤다. 선봉대원들과 인천 세창물산 노동자들이 하얀 광목천에 '노동해방' 혈서를 써 내려갔다.

“그때는 정말 굉장했죠. 노동자들이 그렇게나 많았는지...노천극장이 꽉 차서 감동스러웠고. 한사람도 빠짐없이 목소리 크게 구호를 외치고, 움직이는 그런 모습이나 분위기 자체가 감동적이었어요.”(마창노련 노동자)

대회를 마치고 노동자들은 “노동법을 개정하자”, “전두환․이순자를 구속하자”, “군부독재 타도하자”, “전경련을 해체하라” “노동해방쟁취”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노동자들의 대오는 끝이 보이지 않았고, 신촌을 지나 한강다리를 건너는 대오는 깃발의 물결을 이루었다. 시위 대오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좌하여, ‘망국 민정당 규탄 및 노동법개정 촉구대회'를 가졌다. “왔다갔다 노동정책, 야3당은 자폭하라!", “전경련을 비호하는 민정당은 자폭하라!"고 외치며, “노동법 개정투쟁은 노동자의 손으로 해내야 한다. 꼭 우리 손으로 해내자!"는 결의를 다졌다. 독점재벌 규탄 연설과 만세삼창으로 투쟁을 마쳤다.

“…노동자들은 여의도로 행진하며 ‘노동해방, 악법철폐, 해체 전경련, 타도 민정당, 악법철폐, 노동운동 탄압하는 군부독재 끝장내자!’ 같은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노동자 계급이 역사와 정치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는 순간이었다.”(1988, 『노동자의 길』, 33호 사설)

“가두행진에서 경찰이 중간에 끊으려 했지만 스크럼 짜고 돌파하고. 그때에 그렇게 멋진 집회, 감동과 힘 있는 가두행진을 해본 적이 그 후로 없었던 거 같아요.”(인노협 노동자)

대회 다음날부터 한동안 현장의 노동자들 사이에는 전노대를 둘러싼 이야기로 술렁였다. 대회에 참여해 힘을 받은 노동자들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참여했는지, 어떤 사업장 노동자들이 연설을 했고. 가두행진에서 경찰을 어떻게 몰아냈는지를 이야기했다.

1988년 첫 전국노동자대회는 현장 노동자들의 열기를 모아 열렸으며, 노동자들의 주체적인 참여로 전국 노동자들이 하나로 뭉치면 얼마나 큰 힘인가를 모두의 가슴에 깊이 새겨놓았다. 전노대의 결실은 12월에 ‘지역 업종별 노동조합 전국회의’를 조직하였고, 이어 전노협 건설로 나아갔다. 또한 이후 전국노동자대회를 통해 한 해 사업장과 지역, 그리고 전국적 투쟁의 힘을 모아 ‘노동자의 계급적 총단결 투쟁’으로 발전시키는 전통을 세워 냈다.

전노대 정신을 되찾는 시도가 필요하다

1988년 시작된 전국노동자대회의 역사는 한 동안 자본과 정권의 탄압에 가두투쟁과 연좌농성으로 대회를 열기도 하고, 노동자와 민중이 함께 대회를 개최함으로써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의 연대투쟁을 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1988년 첫 노동자 대회 이후 매년 전국의 노동자들이 조직적 총결집을, 투쟁의 결의를 대중적으로 확인하는 장의 전통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어느 새 전국노동자대회는 관성적인 연례행사가 되어, 자발적인 참석이라기보다 동원된 참여로, 대회진행 측이 대회의 주체가 되고, 참여 노동자들은 단상의 진행에 맞춰 때때로 박수치며 구호를 외칠 뿐이다. 1993년부터 ‘노동해방’이라는 구호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거리행진과 투쟁도 사라졌다. 2003년에 등장한 '현장의 소리'라는 자발적 발언도 사라졌다. 이런 전노대의 분위기를 비판하는 소리조차 이제는 무뎌진 것 같다.

그런데 노동자가 주체가 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만들어갈 수는 없는 것일까. 대회장에서 단상에 올라가 노동자들이 하고 싶은 발언을 하고, 대오에서 일어난 노동자가 외치고 싶은 구호를 외치고, 노래나 율동을 같이 하고 싶은 노동자들이 나와서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제는 노동자가 주체가 되고 전국 노동자들이 하나가 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전노대에 왜 참여하는가, 한 해 동안 현장과 지역의 활동 중에 전국의 노동자들과 함께 소통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인가, 그 내용은 어떤 방식으로 대회에서 소통하고 싶은가를. 그래서 노동자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내용과 방식으로 전국의 노동자들과 소통하면서, 현장과 지역의 힘을 전국의 힘으로 모아가는 대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유경순 / 노동자역사 <한내>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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