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서울 목동 전화국 점거했던 한국통신 비정규직분들 정말 죄송해요. 그때 내가 잘못한 것 때문에 지금 비정규직으로 살면서 이렇게 싸우고 있는 것 같아요”

2일 저녁, 오전 조 근무를 마치고 공장 근처 식당에서 만난 현대차울산비정규직지회 ㄱ조합원이 꼭 좀 써달라며 꺼낸 얘기다. 2000년 한국통신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계약해지에 맞서 전화국을 점거했던 당시 ㄱ조합원은 시위 진압대로 복무하던 중이었다. 그는 목동 전화국에 투입돼 노동자들을 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그러던 이가 이제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6년째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그 설움을 떨쳐 보고자 투쟁하는 ‘열성 조합원’이 됐다.

“이번 투쟁에 올인 했다”

“입사하고도 한동안 노조에 가입 안 하고 어떻게 하나 지켜봤죠. 근데 하는 거 보니까 안되겠다 싶어서 2006년에 가입했어요. 그때는 별로 할 게 없었거든요. 근데 요즘 해보니까 말이죠, 이게 눈에 띄지는 않는데 할 일이 끝도 없어요” ㄱ조합원은 대의원에 출마할 결심을 할 만큼 열성 조합원이다. 하지만 노조 일을 열심히 하는 걸 알고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입사 추천인이 그의 처갓집에 연락을 했다. 당신 사위 때문에 내가 잘리게 생겼다면서. 처갓집에서는 노조 일 계속하면 이혼 시키겠다며 난리가 났고, 직책달고 앞에 나서지는 않겠다는 약속으로 정리 했다.

“근데 사실 직책 안 달고 조용히 한다는게 불가능하더라구요. 매일 피켓팅 하고 집회 나가고 하는데 누가 모르겠어요” ㄱ조합원은 이번 투쟁을 시작하면서 “올인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왕 하기로 한 거 지회를 따라가기만 하는 건 성에 차지를 않았다. 직접 생각하고 결정해서 움직여야 나중에도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아이 때문에 열심히 싸울 수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우리 큰 애가 6살인데 어느 날 ‘아빠는 회사에서 뭐 해?’라고 묻는거예요. 근데 현대차에서 자동차 만든다는 얘기를 하는게 망설여지더라구요. 왠지 주눅 들고 애한테 미안하고. 혹시 같은 유치원에 현대차 정규직 아이가 다니면 그 앞에서 우리 애가 주눅들것 같기도 하고”

비정규직 설움, 피가 끓는다

같이 나온 ㄴ조합원은 대법원 판결이 난 뒤 노조에 가입한 새내기 조합원이다. 업체는 입사 당시 시급제로 해준다는 약속을 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입사하고 5개월 동안 일급제로 일했다. 업체에 항의를 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더 힘든 일 하는데 월급도 적고 관리자들한테 무시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이 관리자랑 싸우고 당하는 걸 보는데, 나랑 똑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당하니까 피가 끓고 열이 오르더라구요”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대법원 판결이 나고 친척이 전화를 했다. “‘이제 정규직 되겠네. 결혼만 하면 되겠다’면서 연락이 왔었거든요. 근데 내가 비정규직이 정규직 되는 일 지금 회사에서는 절대 없다고, 현대차는 절대 꿈쩍도 안한다고 했죠” 하지만 직접 알아보고 얘기도 들어보니 법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분명히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노조에 가입했다.

“솔직히 당장 정규직 될거라고 기대하거나 확신해서 하는 거 아니예요. 정말 됐으면 좋겠으니까 하는거죠” ㄴ조합원은 정규직이 됐으면 좋겠다는 믿음과 1백 명, 1천 명 늘어나는 인원이 함께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한 번 제대로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집회, 교육, 간담회까지 지회 일정에 빠지지 않는다. “나도 할 일 없어서 하는거 아니예요. 우리가 좋아서 가입했으니까 각자 핑계대기 말고 해야죠”

‘최강 시트’ 유명합니다~

요즘 울산 공장에서 유명한 이들 중 하나가 바로 ‘시트 사업부 비정규직 조합원들’ 이다. 시트 사업부는 올 해 7월 이전에는 조합원이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업부 비정규직의 절반이 노조에 가입했고, 어떤 집회에도 가장 열성적인 단결력을 자랑하는 곳이 됐다. 전태곤 시트 사업부 비정규지회 대의원은 “2005년에 노조 가입했던 사람들도 거의 다 탈퇴하고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분위기였죠. 이번에 새롭게 조직하고 하나씩 같이 하면서 우리끼리는 ‘2005년에 못한 거 다른 동지들한테 미안한 마음 가지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고 마음먹었다”고 전한다.

시트 사업부는 다른 공장과 많이 떨어져있다. 심지어 경비도 따로 있는데 정규직 지부 유인물은 받으면서 비정규직지회 유인물 반입은 금지시켰다. 노조 가입을 위해 지회 간부들이 설명회를 하러 왔을 때 업체 관리자가 휴게실 문을 잠궈 조합원을 감금했던 것도 시트 사업부였다.

▲ 11월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유기 노조 위원장과 소송 대리 변호사들이 현대차에 대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 인정과 그에 따른 미지급 임금 지급을 촉구하고 있다.

여전히 탈퇴 협박이나 회유, 각종 탄압이 계속되고 있지만 시트 조합원들의 단결력만큼은 최고다. 사업부 깃발에는 ‘최강 시트’라고 적어 넣었다. 사업부 차원에서 중식 집회도 하고 노동가요 교육도 따로 진행하고 있다. 10월 30일 상경투쟁 때도 시트 조합원들은 모자를 맞춰 썼다. “다른 공장에서도 자기들도 모자 맞추고 싶다고 연락이 오더라구요” 시트의 단결력은 좋은 자극이 되고 있다.

한 명 남아도 끝까지 간다

10월 30일 조합원들은 첫 상경투쟁을 다녀왔다. 울산 공장 비정규직 1천 여 명이 서울 양재동과 시청을 누볐다. “다녀온 조합원들 얘기 들어보니까 다들 너무 좋았다고 해요. 공장에만 있을 때보다 많이 모여서 집회 하니까 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네요. 어떤 사람은 1만원씩 모아서 한 달에 한 번씩 올라가자는 사람도 있어요”

현대차비정규직 울산, 아산, 전주 세 지회는 4일 현재 세 차례 현대차에 교섭을 요청했지만 교섭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회는 8일 이후 조정신청을 하고 본격적인 쟁의행위에 돌입할 계획이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요. 만약 이번에 이기지 못하면 현대차는 고용의제는 고용의무든 해당되는 사람들 가만 두지 않을 거고, 더 힘들어질 거예요. ‘한번 짓밟힌 꽃은 다시 피지 못한다’고 하잖아요”
울산에서 만난 이들의 각오는 하나같이 똑같다. 앞으로 진짜 제대로 싸워볼 생각이니까 지켜보라고. 조합원 한 명이 남더라도, 내가 해고되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싸우겠다고. ㄴ조합원이 말한다. “나는 끝까지 할 거예요. 그럼 한 명이라도 따라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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