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를 깨기 위한 회사의 공격적 직장폐쇄에 맞서 KEC 노동자들이 지난 21일 1공장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농성현장은 전투경찰과 용역이 겹겹이 포위하고 있어 외부와 철저히 단절돼 있다. 회사는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최소한의 약품 반입과 식수제공을 허용했지만 식량 공급은 허락하지 않았다. 점거농성 5일 째인 25일 점거농성에 참가하고 있는 김준일 구미지부장과 한소정 KEC여성부지회장이 전화통화를 통해 현장 상황과 분위기를 전했다. 김 지부장은 점거와 동시에 단식에 들어간 상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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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거 5일째다. 농성장 분위기는 어떤가?

김 지부장 : 조합원들 모두 이번 점거농성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끝까지 가보자는 분위기다. 조합원들은 조를 나눠 서로 마음 상태도 점검하고, 상황도 공유하고 있다. 언론의 거짓 선전이나 경찰의 침탈 위협에 흔들리지 않고 잘 버티고 있다.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집회를 열고 의지를 다져가고 있다.

한 부지회장 : 처음 겪는 일이다보니 초반엔 의기소침해 하거나 불안해하는 조합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5일째 되면서 많이 안정화된 분위기다. 오히려 여기 들어온 이후 많이 강해진 느낌이다. 주말에 공권력 침탈할 것이라 예상하며 결의를 다져왔고 이제는 의연해졌다. 어차피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서로 용기를 주고 다독이며, 때로는 흥겨운 놀이도 하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용역이나 경찰의 도발은 없는가?

김 지부장 : 첫 날 용역들과 사투 과정에서 우리의 저항이 예상을 뛰어넘었는지 2시간에 만에 용역 대신 경찰이 투입됐다. 경찰들이 심야에 훈련을 핑계로 함성을 지르며 농성자들을 위협하곤 한다. 하지만 공장 구조상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거의 들리지 않는다. 현재까지 그밖에는 별다른 도발은 없는 상황이다.

▲ 김준일 구미지부장. 신동준

경찰이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침탈 위협을 하고 있는데.

김 지부장 : 반도체 공장에는 위험 물질들이 굉장히 다양하게 존재한다. 호흡기로 들어가면 3초만에 즉사하는 가스도 있고 충격을 받으면 큰 폭발을 일으키는 가스도 있다. 이러한 점들을 무시하고 섣불리 공권력을 투입한다면 용산보다 더한 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곳은 저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위험한 곳임을 알아야 한다.

아픈 사람은 없는가?

한 부지회장 : 일부 감기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또 원래 지병을 갖고 있던 사람도 있어 힘들어 하는 경우도 있다. 약품 반입이 일부 허용되고 있지만 회사를 거쳐 와서 그런지 늦게 도착하는 게 문제다.

식사 문제나 잠자리 문제가 불편할텐데.

김 지부장 : 애초 예상보다 농성을 결의한 사람이 많아 식량 상황이 빠듯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서로 아껴가며 생활하고 있다.

한 부지회장 : 여성 조합원들은 하루에 한 끼 분량을 반으로 나눠 2끼를 먹으며 생활하고 있다. 이래저래 활동량이 많은 남성 조합원들은 하루 두 끼가 제공되는데 이게 미안해서인지 아저씨들이 식량을 나눠주기도 한다. 더운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게 된 식품들과 컵라면 등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데, 초반에 회사가 정수기 물을 끊어서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잠을 자는 데 불편한 점은 없는가?

김 지부장 : 잠자리는 심하게 춥거나 덥지는 않다. 얼마 전 회사가 밤에는 춥게, 낮에는 덮게 공장 온도를 설정하는 파렴치한 짓을 하기도 했었지만, 우리가 항의하자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현재는 적정온도가 유지되고 있다.

한 부지회장 : 적정온도가 유지되긴 하지만 담요 없이 자기에는 춥다. 현재 준비된 담요가 많이 부족해 일부는 공장에 있는 작업복으로 대신하고 있다. 씻는 문제도 고역이다. 5일째가 되다보니 슬슬 머리가 ‘떡’지고 냄새가 난다. 일단 화장실에 있는 설거지 세제나 비누로 머리를 감고 있다.

가족을 통하거나 개인적 친분을 통한 회유와 협박은 없는가?

김 지부장 : ‘위험한 공장이니 그만둬라’, ‘공권력 들이닥친다고 하니 빨리 나와라’는 연락이 많이 오는 걸로 알고 있다. 밤이 되면 이런 문제 때문에 우는 조합원들도 있다. 어쩔 수 없는 경우 조합원들을 내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오히려 가족들을 설득시키고 있다.

한 부지회장 : 정확히 증거를 확보할 수는 없지만 가족들을 통한 회유와 협박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진심으로 얘기하면 가족들이 받아들이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서로에게 많이 한다. 실제로 여성 조합원의 남편, 시어머니까지 우리 싸움에 힘을 보태주고 있다.

앞으로의 각오를 밝히자면?

김 지부장 : 공장 진입 시 책임자로써 이미 구속은 물론이요 죽음을 각오했다. 지부장으로써 넉 달이 넘어가는 KEC투쟁을 보며 마지막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에 하나 협상으로 사태를 해결하지 않고 물리력을 동원해 짓밟으려 한다면 큰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빈말이 아니다.

한 부지회장 : 들어온 이상 그냥 나갈 생각은 없다. 반드시 이겨서 나갈 것이다. 공장안에 2백여명이나 들어오게 되면서 공장 밖 천막에 인원이 별로 없을 것 같다. 많은 동지들이 연대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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