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필자가 근무하는 녹색병원에서는 방문객 출입통제가 이루어졌다. 입구마다 직원들이 지키고 서서 방문객들의 체온을 재고, 온도가 높으면 환자면회를 못하게 하였다. 환자 1인당 방문객 수도 제한하였다.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지만, 환자와 보호자들은 누구 하나 문제제기 하지 않았다. 신종플루로부터 병원 직원과 환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이 정도 조치에 대해서는 누구나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신종플루가 진정되는 기미가 보이면서, 병원의 출입통제 조치도 해제되었다. 방문과 출입의 자유가 다시 회복되었다.

필자의 어머니는 인천에 살고 계신다. 자주는 못 찾아뵈어도, 어쩌다 한 번 찾아뵈면 잠을 자고 올 때도 있다. 그런데 이 덕분에 작년에 헌혈을 못했다. 인천의 이 지역은 말라리아 위험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에 감염될 경우 수개월 후에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므로, 수혈자의 안전을 위하여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한다. 혈액이 부족하다는 소식은 계속 전해지지만, 혈액부족과 안전 문제는 별개의 것이었다.

▲ 위에 보이는 '연기' 같은 것이 절삭유에서 발생되는 오일미스트(일종의 기름분진)이다. 이것을 오랫동안 마시면 노동자들에게 암이 올 수 있다.
신종플루와 말라리아는 감염성 질병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공항에서 우리나라에 입국하는 감염의심자들에 대한 격리조치를 취하거나, 병원에서 방문객을 통제하거나, 헌혈을 제한하는 것 등은 이러한 감염성질환의 확산을 막는 1차 예방 수단들이다. 1차 예방이란, 실제로 문제가 있느냐 따지기 보다는, 혹시나 닥칠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차원의 적극적 예방조치이다. 따라서 1차 예방은 부자와 가난한 자, 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 모두에게 적용되며, 이 조치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보호된다.

캐나다 금속노조의 발암물질감시운동

전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신종플루는 신종플루이며, 말라리아는 말라리아일 뿐이다. 하지만, 발암물질은 그렇지 않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발암물질로 취급받는 물질이,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자극성 물질로 분류되기도 한다. 대표적 물질이 황산이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황산에 대해 피부에 묻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국제암연구소에서는 황산을 후두암 등을 일으키는 1급 발암물질로 보고 있다. 황산증기가 문제라는 것이다.

캐나다의 금속노조인 CAW는 전세계 노동조합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발암물질감시운동을 펼치고 있다. 짐머필드라는 한 조합 간부가 절삭유를 오랫동안 사용한 후 암에 걸려 사망하였는데, 죽기전 CAW 회의에 와서 자신과 같은 피해자를 만들지 말자며 직업성암에 대한 대처를 호소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수용성절삭유에는 포름알데히드, 디에탄올아민, 니트로스아민 등 발암물질이 들어있으며, 비수용성절삭유에는 염화파라핀, 다핵방향족탄화수소 등의 발암물질이 들어있다. CAW는 절삭유의 노출기준을 낮추는 운동을 시작하였고, 그 이후 현장에서 발암물질을 몰아내기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절삭유는 발암물질로 취급받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기 싫지만, 발암물질과 바이러스의 차이는 아무래도, 누가 위험하냐는 문제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바이러스는 돈이 있건 없건 권력이 있건 없건 가리지 않지만, 발암물질은 노동자만 마시는 것이므로, 정부나 기업이 제대로 된 기준도 만들지 않고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 김신범(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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