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파업참가자와 가족을 위한 심리지지프로그램’이라는 다소 긴 제목의 프로그램 중 서울 1모둠이 끝났다. 지난 11월 24~25일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졸업식 겸 쌍용차 조합원들과 함께하는 수련회까지 다녀왔으니, 지난 8월부터 시작된 기획단의 활동이 이제 1차 마무리가 된 셈이다.

한순간에……. 그렇다. 그들은 한순간에 현장에서 내몰렸다. 그런데 조합원들의 정신적인 불건강은 한순간에 온 것은 아니다. 정리해고란 말과 77일간의 전쟁터 같았던 옥쇄파업, 이후 경찰의 폭력적인 조사는 몇 달째 이어졌고 그 사이에 조합원들의 마음은 조금씩 깨지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옥쇄파업 정리 후인 8월경의 금번 치유프로그램을 진행한 기획단이 조사한 심리조사에 따르면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세가 71.1%에 달했다. 심각한 병이라고 인정되는 고도우울증상이 무려 41%에 달했다. 탈진증후군과 스트레스장애 유병율도 심각했다. 고도우울증상은 즉각적인 정신과치료가 필요한 상태를 말한다.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험난한 길을 가게 될 쌍용차 조합원들. 새벽4시가 넘어서야 잘 수 있을 정도의 심각한 불면증과 우울증을 일단 완화하기 위해 시급히 조치가 마련되어야 했다. 이런 쌍용차 조합원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생활 전반의 극한적인 심리상태를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금속노조와 인권, 보건, 건강권의 단체들로 구성되어 기획에 들어갔다. 우리의 일차적인 목표는 고도우울증 등의 고위험조합원을 정신과 의사와 연결하여 바로 상담과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고, 이차적인 목표는 그 외 증상이 있는 상당수의 조합원에게 심리치유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정작 중요한 건 일자리와 경찰조사 중지

첫 번째 목표였던 의료진과의 만남은 아쉽게도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는 여러 명 배치되었지만 조합원들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왜일까. 우선은 고위험군의 조합원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고, 또 조합원들내에 충분한 홍보가 되지 못해서일 것이다. 거기다 혹시 병력으로 남아 이후 취업에 불이익이 있을까 우려도 있을 것이고 정신과 진료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 목표였던 심리지지 프로그램은 ‘웃음치료/스트레스이완/미술치료/상담치유’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런 질문들을 많이 한다. ‘그런 게 진짜 효과가 있나요?’ 병원에서 주는 약도 사람에 따라 듣는 정도가 다르니 치유프로그램이라고 다 효과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현장에 복귀된다면 저절로 치유될 거라는 한 조합원의 말처럼 정작 중요한 것은 복귀와 새 일자리, 경찰조사 중지 등이 아닐까.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가 당장 해결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정서와 심리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이런 프로그램은 매우 중요할 수 있다. (사람이 일단 잠은 잘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졸업식, 치유 9강(연대단위와 함께 하는 특강)과 쌍용차 정비지회의 수련회에서 조합원들은 많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기한 마술 특강에 연신 ‘빵~’터트리며 웃었고, 마술을 따라 해보는 순서에서는 ‘나는 왜 안 되는 거야!’하며 불끈하시기도. 이어서 수료식을 진행할 때는 각자의 수료 소감을 말씀하시다 눈물을 보이기도 하였고 졸업발표회로 장기자랑 때 노래 ‘잘 살 거야’에 맞춰 춤추면서 한바탕 열광하기도 하였다.

노동자 정신건강에 노동운동이 관심가져야

이 속에서 조합원들은 자기 내면에 웅크린 독약 같고 비수 같은 스트레스 덩어리를, 마음 깊은 곳에 단단히 웅크려들어 언제든 흉기로 돌변할 수 있는 심리적 불안덩어리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이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들 애기하니 다행이다. 또한 치유프로그램 참가자들은 공장을 나온 약 3개월 여동안 함께 싸운 동료들을 만나면서 힘든 상태에 있는 자기를 들어내 보일 수 있었다. 이를 통하여 손을 내미는 법과 손을 잡아주는 법을 배우고 투쟁하는 조직으로의 발전을 위한 마음과 마음이 소통되는 단단한 고리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이제 평가 작업을 해야 할 시점이다.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한계가 짚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정신적인 건강에 대하여 노동운동이 그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고 또한 ‘심리치유프로그램’의 많은 전문가들과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만나 공동의 작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과는 점차 장기화되는 투쟁현장에서 우리가 할 일이 더 많아 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처음 진행되는 만큼 내실 있는 평가를 통해 프로그램 보완이 필요할 것이다. 아무쪼록 이번 시도가 좋은 성과로 남아 앞으로도 노동자 곁에서 항상 에너지를 제공하는 활동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 이서치경(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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