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정규교육 과정에서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족관계 다음으로 중요한 관계가 노사관계”라고 가르치는 나라. 물론 유럽 이야기다. 유럽 아이들은 사회시간의 3분의 1을 노동기본권에 대해 배운다. 독일 고등학생의 경우 학생을 경영진과 노조관계자로 구분해 모의교섭 역할극도 한다. 이런 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온 이들은 소수 몇 명을 빼고는 노동자로 살아간다. 이들은 노조가입을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또한 노동자들의 파업을 사용자와의 의견불일치에 따른 너무나 당연한 권리로 안다. 때문에 이들은 비행기, 기차, 전철, 버스, 택시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여도 불평 없이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 타고 출퇴근한다.

이런 풍경이 우리에게는 꿈같아 보인다. 하지만 ‘꿈같은’ 꿈을 갖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 이들이 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아래 전태일위원회)가 바로 그들.

“노동운동은 오래전부터 공통된 꿈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노동문제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학습하도록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한석호 전태일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의 말이다. 한 위원장은 올해 전태일 기념사업에 뛰어든 뒤 바로 이 ‘꿈’을 다시 실행에 옮겨보자고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 한석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40주년 행사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신동준

꿈같은 꿈꾸는 사람들

“우리나라 초중고 교과서에 언급되는 노동이란 ‘노동에는 귀천이 없다’ 수준이 고작이며 일반적으로 노동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안좋다”고 말문을 연 한 위원장은 “이것을 바꾸는 매개로 전태일 만한 소재는 없다고 본다”고 주장한다. 그는 “만화전태일, 어린이전태일, 소설전태일 등은 많이 늘었는데 정작 전태일을 매개로 한 노동현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정규교육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인다. 현재 노동문제는 고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전태일’이 짤막하게 언급돼 있는 게 다라는 게 그의 설명.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이 역사의식이 취약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한 위원장은 “역사는 기록하고 기억하는 자의 것인데 노동운동은 40년 동안 기록과 기억을 남들에게 내맡겨 왔다”고 말한다. 그는 올해부터라도 노동을 중심으로 한 기록과 기억에 힘써보자는 게 전태일위원회에 결합한 이들의 공통된 뜻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전태일위원회에 어떠한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을까? 이례적으로 올해는 전태일기념사업회가 주축이 되어 5만에 달하는 전태일위원회 ‘회원’을 공개적으로 모집하고 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단체 몇몇이 전태일 기일을 맞이해 전국노동자대회 한차례 개최하고 말았던 수준을 극복해보자”는 게 그의 설명이다.

▲ 12일 오전 서울 청계천 6가 전태일 다리 위에서 열린'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한 민주노총 지도부와 조합원, 시민단체관계자들이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

전태일위원회 발족식이 있었던 지난 12일 현재까지 4천 4백 여 명이 각각 1만원씩 내고 전태일위원회에 가담했다. 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은 이수호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 맡았다. 여성연맹 3천여 조합원이 집단적으로 전태일위원회에 모두 결합하기도 했다. 권해효, 홍석천, 박철민, 문성근 등 배우들도 여기에 함께한다. 김근태, 유시민, 심상정, 노회찬, 이정희, 권영길, 홍희덕, 유원일 등 야당 의원들의 이름도 있다. 모두 개인 자격이라는 게 한 위원장의 설명이다. “중학생과 고등학생들도 자발적으로 전태일위원회에 후원금내고 참여하고 있다”고 한 위원장은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학생도 배우도 5만 전태일위원회 가담

이 대목에서 한 위원장은 “전태일 기념사업에 한국노총과 한나라당은 모두 뺐고, 그러기로 내부에서도 정리했다”고 밝히고 있다. 전태일 산화 40년 동안 정신계승 사업이 답보상태를 넘어서지 못한 이유가 한국노총과 보수정당의 사업 참여를 허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내부 논쟁 때문이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번 기회에 한국노총과 한나라당을 제외키로 정리한 만큼 이 사업이 추진력을 가질 것이라는 게 그의 희망 섞인 설명이다.

전태일위원회가 그동안 한 일과 성과는 무엇일까? 한 위원장은 지난해로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갔다. “작년부터 ‘전태일다리’ 위에서 매주 금요일 낮에 이야기가 될 만 한 대중가수나 민중가수들이 전태일 정신계승을 테마로 공연을 진행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말을 꺼낸 한 위원장은 “올 초부터 매달 한번 씩 전태일과 비정규노동자와의 만남이라는 컨셉트로 GM대우비정규직 지원집회 및 기륭전자분회 지원 집회를 펼치기도 했다”고 소개한다. 전태일위원회는 지난 8월 26일부터 서울 청계천 버들다리를 전태일다리로 바꿔 부르는 것을 촉구하는 범국민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 전태일위원회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배우 박철민이 버들다리를 전태일다리로 바꿔부르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현재 전태일위원회는 오는 11월 7일까지 5만 행사위원 참가운동을 벌이고 있다. “너도 전태일, 나도 전태일, 너도나도 전태일의 모토”라는 게 한 위원장의 언급이다. 전태일위원회는 이달 30일 서울시청광장에서 1만 여 명에 달하는 참가자를 모아 전태일문화제도 개최한다. 이날 문화제는 민주노총의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 뒤 잇따라 개최되는 행사다.

이 뿐이 아니다. 전태일위원회는 다음달 3일 ‘전태일 토론회’도 연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한 위원장은 “이 토론회는 전태일을 말하고 전태일이 말한다는 컨셉트로 전태일 열사가 말하는 현시기 노동현실을 되짚어본다는 취지”라고 말한다. 아울러 전태일위원회는 다음달 1일부터 13일까지 서울에서 다채로운 ‘전태일 기억주간’ 행사를 벌일 예정이기도 하다.

“나도 전태일, 너도 전태일, 너도나도 전태일”

만약 전태일 열사가 지금 살아 있다면 현시기 노동현실에 대해 어떤 말을 할까? 이에 대해 한 위원장은 전태일 열사 생전의 이력을 소개한다. 전태일은 생전에 재단사였다. 한 위원장은 “당시 재단사인 전태일은 미싱사와 시다 편들다가 노동운동 알게 됐고 법을 공부하게 됐으며 바보회 등의 노동조직까지 만들게 됐다”며 “이게 노동운동”이라고 강조한다. 당시 재단사는 현재 정규직이자 관리자 수준의 직급이라는 게 한 위원장의 덧붙이는 설명이다.

그리고 한 위원장은 당시 미싱사와 시다를 현재의 비정규노동자, 청년, 제3세계 노동자라고 비유한다. 한 위원장은 “전태일 정신계승 정신이 무엇인지는 이같은 비유에서 모두 드러난다”며 “기념을 넘어 더 낮은 곳으로 향하는 것이 바로 전태일 정신계승”이라고 말한다.

▲ 당시 미싱사와 시다는 현재의 비정규노동자, 청년, 제3세계 노동자로 비유된다. 마석 모란공원의 전태일 동상 머리에 비정규직 철폐의 머리띠가 묶여있다.
전태일위원회가 벌인 사업 중에 성과도 있다. 최근 서울시의회가 ‘버들다리’를 ‘전태일다리’로 병행표기키로 한 공고안을 결의한 것. 조만간 서울시는 지명위원회를 소집해 버들다리-전태일다리 병행표기 발표를 하게 된다. “고작 고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전태일 언급 수준으로 다뤄지고 있는 노동문제가 이제 한국지도에 표기되는 것으로 확대된 것은 성과라고 볼 수 있다.” 한 위원장의 설명이다.

전태일을 매개로 교육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곳도 늘고 있는 게 성과이기도 하다. 지난 9일 금속노조 충남지부는 충남노동자학교 프로그램 차원에서 전태일열사가 묻혀 있는 마석 모란공원과 열사가 생전에 일했던 청계천 일대를 순례했다. 한 위원장은 “민주노총 차원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시민운동단체인 참여연대도 11월 초 회원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가동한다고 소개한다. 한 위원장은 “이후 전태일이 분신한 자리에 표지석을 만들고 바보회가 운영됐던 당시 다방과 현재 이주노동자들에 의해 대체된 시다들까지 현재의 노동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코스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히고 있다.

전태일, 한국지도에도 표기된다

“전태일기념관 건립도 추진할 생각이다.”  올 대규모 기념사업이 끝난 뒤 전태일위원회가 하려는 사업에 대해 한 위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기념관이라는 일종의 ‘거점’을 만들어 놓고 전태일을 매개로 노동운동과 노동문제가 사회에 뿌리내리게끔 사업을 계속 벌이겠다는 것. 아울러 기념관 공간을 비정규직과 청년 및 이주노동단체에 무료 임대해주면서 지하에 문화공간도 갖추고 동남아 국제노동자 교류활동도 벌이겠다는 게 한 위원장의 이야기다.

과연 올해 5만 전태일위원회는 실현가능할까? 한 위원장은 “금속노조로 대표되는 민주노총이 이 문제를 적극 홍보하고 조직해줘야 사실 가능하다”고 토로한다. 이와 관련해 전교조는 최근 회의에서 산하 조합원 5천명을 전태일위원회로 조직하자고 의견을 모았다한다. 금속노조(위원장 박유기)는 지난 14일에야 뒤늦게 전태일위원회 조직을 결의했다. 이에 대해 한 위원장은 “금속노동자는 87년 이래 노동운동의 모범이고 선봉이었다”며 이번 전태일위원회에 많은 이들이 가담하리라 기대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전태일위원회에 가담하는 모든 이를 신문광고에 이름 다 실을 것이며 그 이름 모두 동판을 떠서 전태일 다리에 새길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아직 고등학교 교과서에 전태일이 몇 줄 언급되는 수준일 뿐이지만, 노동문제가 초중고 정규교과서에 비중있게 실렸으면 좋겠다는 오랜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역사는 기록하고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는 한 위원장의 주장에 투자해볼 만하다. 노동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달린 일이기도 할테니 말이다. 올해 전태일 열사 40주년은 그만큼 의미가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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