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판매를 말하면 먼저 삼각형 혹은 피라미드가 제일 많이 떠올린다. 제일 꼭대기로 이윤이 집중되면서도 윗 단계만큼은 아니어도 밑 단계의 누군가도 이득을 챙기지만, 제일 마지막 단계의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이윤은 없고 비용만 지불하는 것을 다단계 경영기법이라고 한다. 하지만 단계의 가장 밑바닥에는 사람도 제일 많지만, 아래로부터 빨아들일 수 있는 이윤은 존재하지도 않고 열심히 착취만 당하기 때문에 다단계 경영기법은 기본적으로 착취를 감추고 있는 사기술이다. 즉, 이윤은 위로만 흘러가는데도 불구하고 모두가 부자가 될 것처럼 떠들어 되는 건 뻥일 뿐이다. 하지만 가장 낮은 단계 사람들의 희생과 노고 없이는 다단계 판매는 성립할 수가 없다.

다단계의 매력: 탐욕

다단계 판매라는 경영기술은 자본주의적 경쟁의 부산물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경쟁이란 말은 다른 이의 노력을 누군가 중간에서 가로 채면서도 ‘못하는 게 바보’라는 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자신의 노력으로 정당한 보상을 얻지 않고 남의 피땀을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공짜로 갈취하는 걸 자본주의적 경쟁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오히려 불공정이라고 부른다. 그저 내 배만 채우면 그만이라는 놀부 심보는 한낱 탐욕의 상징일 뿐이다.

물론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 경쟁을 불러일으키는 근원이라고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고 할지라도 탐욕을 미덕이라고 칭송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탐욕은 사회를 지탱하는 규범과 도덕을 좀 먹고 사회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만 쫓으면 그만이라는 공리주의적 규범이 사회를 지배한다고 하더라도 법과 도덕, 양심을 어기면서 이익을 쫓아야 한다고 권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적어도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은 지켜야 한다는 지극히도 상식적인 양심의 소리는 존재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는 뻔뻔한 철면피들을 공장이라는 공간에서는 쉽게 만날 수 있다. 즉, 비정규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데 너무나 익숙한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낮은 단계에 속한 착취 받는 사람들

정규직 노동자들만이 일하던 곳에 어느 날 갑자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나타났지만, 이들은 다른 회사 소속의 노동자라는 이유하나로 노조는 보호조차 못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게다가 이들이 당하는 불이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세상에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직접 나서서 말 한마디 할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채 벙어리 냉가슴 앓아 온 노동자들도 많다. 직접 같이 부딪치며 일이라도 하면 어떻게 해 볼 수 있겠지만, 외주라는 이름으로 작업장마저도 분리된 마당에 노조가 나서서 도와주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 노조운동이나 노조가 다단계로 나누어진 착취에 너무나 익숙한 게 아닐까라는 반문이 든다.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한 비정규노동자가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노조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받는 성과급을 한 푼이라도 올리려면, 비정규직의 몫을 줄여야 하는 기이한(?) 일에 동의할 수밖에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어느 때부터 노조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문제에 나서는 걸 찜찜해하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즉, 노조 스스로가 한편으론 기업이 만들어 놓은 단계라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이, 또 다른 한편 위계질서에 적극적으로 순응하는 욕구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노조운동의 이러한 행태는 반복 학습되면서 비정규 노동자 내부에서도 또 다시 분화의 양상을 거치고 있다. 즉, 비정규직 내에서도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한 노동자들인 고령,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가장 낮은 단계의 노동자들

비정규 노동자 내부에서 또 다시 낮은 단계로 분화하고 있는 현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감지되어 온 현상이다. 즉, 몇 년 전부터 조직력이 저조한 사업장에서 이미 중국교포 출신의 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하여 왔기 때문이다. 한국어도 서투르고, 문화도 낯선 외국이주 노동자들이 자신의 불만과 고통을 표현하기란 말 그대로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들이 받고 있는 차별이 무엇인지, 권리행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조차 노조는 파악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비정규직들로만 채워진 자동차 공장에서 벌어진 일은 노조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게 뭔가’라는 황당함과 충격을 주고 있다. 비정규 노조운동이 조금 이루어지니까 하청 업체에겐 임금지불의 부담이 당연히 올라가게 되고, 결과적으로 가장 저임금인 이주노동자들의 고용을 늘리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하청업체들은 비정규 노동자들의 성과급요구에 대해 이주 노동자들의 몫에서 빼서 보충하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으로 성과급을 지급하는 사례가 이미 나왔다고 한다. 정말로 기이한 착취구조가 또 다시 새로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하청업체의 임금마저도 통제하는 원청업체의 횡포로 인하여 빚어진 일이긴 하지만, 이런 일이 천연덕스럽게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 더욱 문제이다. 어쩌면 노조운동이나 노조가 다단계로 나누어진 착취에 너무나 익숙한 게 아닐까라는 반문이 들기도 한다.

이종래 /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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