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지 40년이 되었다. 전태일 열사를 기억하기 위해, 문화 행사를 비롯해서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하는 행사 등 7월부터 여러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런 움직임에 대해서 잘 모르고 관심도 많지 않은 것 같다. 열사를 추모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열사의 정신을 현실에서 제대로 이해하고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열사들의 운동에 대한 헌신을 바탕으로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라고도 본다.

몇 년 사이 교육을 하면서 만나는 현장의 노조간부나 조합원들은 전태일 열사의 삶과 죽음을 기록한 『전태일 평전』을 안 읽은 이들이 많다. 그래서 민주노총에서 『전태일 평전』읽기 운동이라는 낯선 캠페인을 하는 지도 모르겠다.『전태일 평전』을 통해 알 수 있는 전태일 열사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의 정신에 대해 살펴보자.

학습하고 실천하는 노동자

전태일은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초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하고 껌팔이, 신문팔이, 구두닦이를 하다가 17살인 1965년 청계천 재단보조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린 여성 노동자가 각혈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노동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모색을 한다. 그는 해방직후 대구 방직공장파업에 참여한 아버지의 경험을 듣고, 노동자를 위한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태일은 헌책방에서 법대생을 대상으로 출판된 한문투성이의『근로기준법』책을 구해 주변 대학생에게 한자를 물어가며 그 내용을 학습하면서 평화시장 노동현실과 너무 다른 것에 충격을 받았다.

▲ 다락방이 있는 평화시장 공장의 여성노동자들
그는 재단사 친구들을 모아 ‘바보회’를 만들고 이후 다시 ‘삼동친목회’를 만들어 같이 근로기준법을 학습하고 평화시장 노동실태를 조사한다. 이 조사를 바탕으로 사업주들에게 시정을 요구하거나 노동청에 진정서를 내고, 방송국을 찾아가기도 하고, 시청 사회과를 방문하는 등 주위에 알리고 개선을 해줄 것을 요구하며 최선을 다했다. 마지막으로 청와대에 진정서를 보냈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정보과 형사들의 감시, 노동청 직원이나 근로감독관들의 회유로 돌아왔다. 그 뒤 몇 번의 시위를 시도하나 근로감동관이나 사업주들의 방해로 좌절되었다. 마지막으로 삼동회원들은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하기로 결의를 다졌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마침내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인간시장 주위에는 데모를 막기 위해 전투경찰들이 평화시장을 에워싸고 있고 사업주들은 노동자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그럼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데모소식을 듣고 평화시장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삼동회원들은 그들의 요구를 적은 플랜카드를 준비해 왔으나 경찰에게 빼앗기고 데모는 경찰의 방해로 힘들어졌다. 전태일은 아무도 모르게 온 몸에 휘발유를 붓고 성냥을 자신의 몸에 그었다. 온 몸에 불이 붙은 전태일은 평화시장 앞을 내달리며 외쳤다.

▲ 이소선 어머니가 전태일 열사의 영정을 안고 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그리고 쓰러졌다. 모든 것이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전태일의 친구들이 몸에 붙은 불을 끄려는 순간, 다시 벌떡 일어난 전태일이 외마디를 쏟아냈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병원으로 옮겨진 전태일은 어머니와 친구들과 짧은 대화를 마치고 “배가 고프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그의 나이 22살이었다.

각성된 밑바닥 인간의 정신

전태일의 고뇌와 실천을 통해 알 수 있는 그의 정신은 무엇일까. 우선 전태일의 정신은 “밑바닥 인간의 의식”이다. 그는 모든 것으로부터 거부당하고 밀려난 소외된 노동자의 아픔을, 그 시대의 모순을 절실하고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기장 곳곳에 그는 다른 노동자들을 “나의 전체의 일부” 또는 “나의 또 다른 나”라고 부른다.

또한 그는 오랜 침묵을 깨고 나서 이제껏 현실이 자신에게 강요해 왔던 가치관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오직 노동자로서의 체험에 따라 자신의 가슴으로 느끼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주체적인 인간의 정신이다. 그것은 ”거꾸로의 거꾸로“ 즉 사회의 거꾸로 된 가치관을 뒤집어 놓았다. 노예에서 인간으로 거듭나는 노동자의 정신이다. 기존 현실에 대한 완전한 거부, 완전한 부정의 정신이다. 그는 현실의 ‘덩어리’ 속에서 뭉쳐지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근본적인 개혁, 행동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그는 왜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던가. 그것은 그에게 모든 인간은 서로가 서로의 ‘전체의 일부’였기 때문이었다. 한 인간이라도 부스러기로 밀려나는 일이 없는, 한 인간도 남김없이 그 인간적인 관심을 존중받는 그러한 질서- ’모두가 용해되어 있는 상태‘가 이룩되기 전까지 그의 행동은 그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내가 앞장 설 테니 뒤 따라 오게”라고 모두를 행동으로 불러내는, 모두 행동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도록 만드는 연대행동의 정신이다. 그는 우리 모두를 향해 이렇게 선고한다. “너는 괴롭겠지만 보지 않을 수 없을 걸세.”

▲ 평화시장에서 시다로 갓 취직했을 때 동료 시다, 미싱보조들과 함께. 뒷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전태일 열사다.
전태일에 대한 이해는 어떤 위치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노동자’ 전태일로 이해하기도 하고, 시민의 입장에서 ‘인간’ 전태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태일은 노동자였고, 노동자의 시각에서 그의 삶과 죽음을 이해해야지만 온전히 인간 전태일도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노동자의 시각에서 전태일의 삶과 정신에 대해 돌아보면서 다가오는 열사 40주기를 전태일 열사 정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기간으로 맞아보자. 그러기 위해 『전태일 평전』을 꼭 읽고 자신의 시각으로 전태일 정신을 오늘의 현실에서 되새겨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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