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엔가 일본에 갔을 때 일이다. 도쿄 시내 번화가인 시부야의 거리를 걷다가 일본공산당의 방송차를 봤다. 무슨 캠페인을 준비하는 것 같았는데 백발의 ‘어르신’들이 앰프를 나르고 있었다. 언뜻 봐도 60~70대의 할아버지들이었다.

이 광경을 보고 전전(戰前)에 태어나 격동기(1960년대)에 청년시절을 보냈을 노활동가들이 여전히 왕성한 활약을 하는 모습에 경의를 표했다면(!) 거짓말이고, 사실은 일본 좌파의 쓸쓸한 말년을 보는 것 같아 심란했다. 그리고 그 장면이 한국의 미래가 되지 않을까 싶어 몸서리쳐졌다. 생각해보라, 지금 한국의 젊은 활동가들이 백발이 성성해졌을 때까지 앰프를 나르고 전단을 나눠주는 것을. 끔찍하지 않은가.

▲ 후텐마 미군기지 철거를 촉구하는 일본공산당 포스터.

사실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일본은 지금까지 여러 사회현상의 측면에서 한국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해왔다.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는 물론 황혼이혼, 집단 따돌림(이지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등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문제는 불과 몇 년의 차이를 두고 한국의 문제로 전이됐다. 비근한 예로 그 출장 때 ‘화학물질과민증’이란 말을 처음 들었는데 불과 몇 달 후 우리나라에서 ‘새집증후군’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두 얼굴

이런 일본은 참 경이롭다. 이를테면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이 불티나게 팔리고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 구독자가 150만 명이 넘는 나라. 대학 강단에서는 수많은 좌파이론 강좌가 개설되고 수준 높은 좌파이론이 폭넓게 연구되는 나라.

미군정이 군국주의에 대항할 카드로 장려한 노동조합이 수십년 동안 힘을 발휘해오고 사회민주당, 공산당 등 좌파정당이 일정한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 과학적 사회주의를 얘기하는 70대와 그람시를 얘기하는 50대와 생활자운동을 얘기하는 30대가 격의 없이 자리를 함께할 수 있는 나라.

그렇지만 이런 일본은 절망스럽지 않은가. 국가보안법 같은 법적 규제가 없는데도 사회당을 비롯한 좌파정당이 단 한 번도 단독으로 정권을 잡아본 적이 없는 나라.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서 벌어진 피플파워처럼, 대규모 항의시위를 통해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이뤄낸 집단체험이 없는 나라. 정규직 중심의 거대 노조가 자본의 고용유연화 전략을 용인하면서 격차사회(양극화사회) 형성에 ‘기여’한 나라.

좌파가 이렇게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를 쓴 권혁태(성공회대 교수)는 일본 좌파 내부의 문제에서 좌파 몰락의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지은이가 주목한 것은 바로 ‘생물학적인 제거’가 난무한 좌파 내부의 분열상이다.

좌파의 살육극

▲ 책표지
일본에서는 1969~1999년 사이 우치게바(內ゲバ)로 표현되는 조직 내 폭력이 무려 1960건 발생해 113명이 죽고 4600명이 다쳤다고 한다. 이러한 살육극의 원인에 대해서는 죽음에 대한 일본 특유의 문화, 사대주의적 경향, 주관주의적 정세 분석, 엘리트주의, 유일 전위당론, 관념성 등 다양한 요인이 제시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지은이가 지적하듯 “숙청, 린치, 살육으로 점철된 1960~1970년대 일본 좌파 운동의 악순환이 좌파에 대한 사회적 공포를 깊이 심었고 이런 상처가 운동의 연속성을 훼손했을 뿐만 아니라 다음 운동으로 순조로운 진화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의 진보운동에서 그런 경험이 없으니 다행이라고 안도해야할까. 극단적인 사례만 없을 뿐이지 비슷한 경로를 밟아온 건 아닐까. 더구나 일본 노동운동의 현황을 살펴보면 걱정은 커진다.

일본적 경영기법, 즉 종신고용, 연공서열, 기업별 노조라고 하는 ‘삼종(三種)의 신기(神器)’는 전후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또한 전후 민주주의와 평화 구축의 기반이 된 미일군사동맹, 냉전시기 주변국에서 오래 지속된 반공 군사독재 체제 같은 외적 조건도 작용했다.

파견법 13년, 섬이 된 노동운동

하지만 냉전 해체 후 한국의 민주화와 남북관계 개선, 일본의 장기 불황, 신자유주의 세계화 등 일련의 흐름은 이러한 선순환 구조를 무너뜨리게 된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자위대의 외연 확대, 헌법 개정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정규직 중심의 고용 형태 개편이다.

고용과 관련해 눈에 띄는 것은 파견노동의 급증이다. 일본에서는 1986년 노동자 파견법이 처음 시행되어 13년만인 1999년 8월 거의 대부분 직종에 노동자 파견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2004년 3월에 다시 파견법을 개정해 모든 업종으로 확대했고 3년 이내라는 파견 기간 제한도 철폐했다. 1990년 171만 명이던 파견노동자는 2005년 496만 명으로 급증했다.

이러한 고용관행의 변화는 청년층에게 직격탄이 되고 있다. 일본말로 ‘격차’는 우리말로 ‘양극화’에 해당하는데 한국에서 ‘양극화’라고 하면 보통 ‘계급’, ‘계층’이라는 말이 뒤따라 나오지만 일본에서 ‘격차’와 ‘빈곤’ 뒤에는 ‘청년’이라는 말이 뒤따라 나온다고 한다.
강고한 노동조합 운동과 기업별 노동조합의 발달, 높은 성장률에 의해 상당 기간 ‘안정’ 사회가 유지되면서 기득권화돼있는 기존의 노동운동은 이런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오히려 ‘파견마을’ 운동이나 인디 메이데이 행사처럼 기존 노동운동 외곽에서 비정규직 청년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까딱하다간 우리도 일본꼴이 날지 모른다. 88만원 세대에게 정규직 노동운동은 기득권세력이고, 민영화는 그 기득권에 맞서 싸우는 거고, 그런 이명박의 공정사회론은 대안이고….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니까 너무 비관하지는 말자. 근데 그러고보니 올해가 한국에서 파견법이 시행된 지 13년째다.

윤재설 / 민주노총 선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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