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세 젊은 노동자가 용광로 쇳물에 녹아버렸다. 세상이 뜨겁게 달궈지기 시작했다. 한 네티즌의 조시(弔詩) 때문이었다. 청년이 녹아버린 쇳물을 사용하지 말고, 어머니가 그리울 때 쓰다듬을 수 있게 동상이라도 만들자는 싯구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만들었다. 아고라에서는 동상건립을 위한 청원운동이 시작되었고, 한 조각가는 예술가 동료들에게 동상건립을 하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좌절이 시작되었다.

▲ 지난 7일 충남 당진의 환영철강에서 작업을 하던 29세의 노동자가 1600도의 쇳물에 떨어져 사망한 산재사고가 발생했다.
조각가는 당진의 장례식장으로 빗속에 차를 몰아 달려갔다. 유가족은 회사와의 합의가 끝났기 때문에 더 이상 이 문제가 사회적으로 거론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동상은 원치 않는다는 유족의 입장을 알리면서 조각가는 아고라에 글을 다시 올렸다. 용광로의 죽음을 계기로 수많은 산재사망노동자를 추모하는 조형물을 만들면 어떻겠냐는 수정제안이었다. 조각가의 표현에 따르면 진흙탕과 같은 반응이 돌아왔다. 간혹 조형물 설립에 찬성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유족의 뜻이 아니라면 그 뜻에 따르자'는 의견과 '의사자도 아닌데 동상은 왜 만드느냐'는 답글이 가장 많았다. 심지어는 '자기 실수로 죽은 것인데 무슨 동상'부터 '연봉이 5000에 애인도 있었다는데 뭐가 슬프냐'는 식의 답글까지 올라왔다. 용광로에서 사망한 노동자를 비롯한 산재사망 노동자를 기억하자는 주장에 대해 불편해 하는 정서가 확실하게 드러난 셈이다.

놀라운 것은 아니다. 이번 사례는 노동자의 사망을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전형적 문제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회사 측에서는 노동자의 과실을 들먹였다. 심지어 한 회사관계자는 “이번 사고의 책임 70%는 고인에게 있다”는 망발을 했다가 유족 앞에서 사과해야 했다. 현장을 방문한 유족의 증언에 따르면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는 사고가 날만한 현장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진실은 은폐되고 고인의 사망은 조심성 없는 젊은 청년의 어이없는 실수로 전파되고 말았다.

거기에 연봉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적지 않게 받았다는 식의 얘기로 출발하더니 연봉이 4천만원이 되고 곧 5천만원까지 불어났다. 낚시꾼의 거짓말과 같았다. 결국, 30세 젊은 나이의 죽음, 용광로에 녹아버린 죽음의 안타까움은 개인과실과 고액연봉자라는 색깔로 검게 오염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산업재해 현실이 거론되었다. 1년에 1천 4백 명이 사고로 죽는 나라에서 한 명 기억하는 것이 무엇에 쓸모 있느냐는 주장이 나왔다. 안전불감증을 해소할 수 있는 조치를 강구해야지 동상이나 만들어 뭐에 쓰겠냐는 주장도 있었다.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자신들의 참여나 실천이 빠진 그럴듯한 말에 불과했다. 그리고 서서히 얘기는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런 위험 없는 곳 어디있겠냐, 회사도 어려울텐데 이쯤에서 조용히 추모하고 정리하는 것이 어떠냐”는 식의 얘기들이 대세를 이루어 갔다. 조각가 한 개인이 맞설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 조각가 김봉준씨는 용광로 사고 이후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의 동상을 건립하자고 제안했다. 유족이 동상 건립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알린 후, 김봉준씨는 용광로의 죽음을 계기로 수많은 산재사망노동자를 추모하는 조형물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이 문제를 시대의 문제로 보고, 사회의 수준으로 이해한다. 예를 들어 부모세대를 표현할 때 나는 '새치기'와 '나서지 않기'를 말한다. 우리의 부모세대는 새치기를 참 잘하셨다. 옆에서 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는데, 본인들은 새치기를 한 다음 어서 오라고 손을 흔든다. 부모세대를 그렇게 만든 이유는 아주 분명하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전쟁을 겪고 보릿고개를 겪은 세대에게 있어서, 생존이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나부터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글의 생존경쟁이 그들에게는 일상생활의 룰이었다. 반면 평상시에는 대중 속에 숨기를 원했다. 부모세대는 “앞에 나서지 말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들려주었다. 살아남기 위한 비법전수였다. 그러나 전쟁과 보릿고개를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등장하면서 새치기는 사라졌고, 나서지 않는 것이 미덕인 세상은 끝나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는 '함께 살기'의 정서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는 부모세대의 남아있는 영향력도 있다. 예를 들어 '남의 돈 먹는 게 쉬운 일이냐'는 시각은 노동을 바라보는 대표적 정서이다. 고용되어 일하는 것은 힘든 일이며 불합리한 것도 경험하겠지만 잘 참아야 한다는 주장이 압축된 표현이다.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정서는 산업재해를 불가피한 것으로 바라보게 하며, 복걸복으로 재수 없어 당한 것처럼 여기게 한다. 대신 유족에 대한 보상만큼은 제대로 받기를 원하며, 대가가 충분하다면 노동자를 죽게 만든 기업을 칭찬하기도 한다. 남은 가족의 생존대책이 중심이 되면서, 고인과 함께 근무하던 동료들의 상실감은 무시된다. 개선되지 않은 현장의 문제도 함께 묻혀버린다. 한 조각가가 산재사망노동자를 기억하자고 제안한 것은 시대로부터 이탈한 것이었고, 사람들은 불편함을 드러냈을 뿐이다. OECD 최고의 산재사망율을 기록하는 대한민국에 반성이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닐까?

오히려 희망은 그래서 발견되었다. 얼굴도 보지 못한 노동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를 써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 시인이 있었고, 이제는 사람 죽는 것을 방관말자며 사망노동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조형물을 제안한 조각가가 있었다. 그리고 아직은 다수가 아니지만, 그러한 기억을 자신의 몫으로 공유하고 지지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함께 사는 시대를 건설하려는 사람들이 서로의 호흡을 느끼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제부터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나의 생명과 타인의 생명, 나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 나의 노동과 타인의 노동을 함께 고려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부당함으로 생명을 잃을 때 함께 분노하며, 그러한 일을 막기 위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 쇳물 속에 산화해간 청년의 넋을 기억하며, 낙심한 조각가의 페이스북에 짧은 답글로 응원글을 남겼다. "산재사망노동자를 기억할 수 있는 조형물을 꼭 만들어야 합니다!"

김신범 /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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