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경제개혁연구소(소장 김상조)가 자동차산업 하도급거래에 있어 ‘원사업장의 불공정한 지위남용행위’가 존재하는지를 실증적으로 증명하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완성차기업 4개사(현대, 기아, 르노삼성, 지엠대우)와 하도급기업 총 906개사의 재무제표를 분석한 이 보고서는 부채비율, 매출액영업이익율, 부가가치율, 노동소득분배율 등의 지표를 통해 완성차기업의 하도급기업에 대한 불공정한 지위남용행위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밝히는 동시에, 완성차기업의 계열사(자회사) 보다 비계열사 하도급기업이 더 불공정한 거래구조에 직면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와 같이 부당한 단가인하, 내부거래와 복사발주, 어음결제 및 지연이자 미지급 등과 같은 불공정하도급거래로 인해 자동차산업의 수많은 부품업체들은 심각한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고 있다. 한편 우리가 불공정하도급거래에 주목하는 이유는 비단 이 문제가 완성차업체로 대표되는 재벌대기업과 종속적 기업관계를 맺고 있는 중소부품업체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기인하, 부당한 거래조건, 무분별한 발주처 변동과 같은 원청업체의 횡포로 인해 수많은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노동권이 직간접적으로 위협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산업의 노사관계 자체를 왜곡시키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 완성차 라인에서 한 노동자가 조립작업을 하고 있다. 신동준 편집부장

그래서 금속노조는 불공정하도급구조에 대한 문제점을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활동은 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불공정하도급문제가 기업간 거래관계로 인식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개입할 수 있는 길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동조합은 공정거래법이 지닌 문제를 지적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제기하였다. 납품단가의 원가연동제와 임율인상을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한 것은 물론, 표준계약서의 작성의무화, 공정위의 법적 제소권 부여, 어음결제의 폐지 등과 같이 공정거래법을 실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법제도적 개선방안을 입법청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은 경제계의 반대와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로 인해 구체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간 갈등의 불씨

더 큰 문제는 불공정하도급문제가 단순히 원하청기업간의 부당한 거래문제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완성차업체와 협력업체 노동자간 갈등의 불씨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품업체 노동자들의 불공정하도급구조에 대한 불만은 원청사용자에 대한 수준을 넘어서서 완성차업체 노동조합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차업체 노동조합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수동적 태도는 부품업체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1차 부품업체 노동조합 스스로가 완성차업체의 단가인하, 부당거래, 발주처 변동에 대해서 공론화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일한 방식으로 산하 하청업체들에게 불공정거래를 강요하는 것을 눈감아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완성차업체 노동자나 부품업체 노동자 모두 불공정하도급거래로 엮인 먹이사슬의 볼모가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위사업장의 수준을 넘어서는 초기업적 산업문제에 대한 정책대안을 마련해야 할 금속노조의 역할은 중요하다. 소속 사업장별로 분화된 인식차이를 극복하고 불공정하도급문제를 자동차산업 원하청노동자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정책과제로 설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이상호(노조 정책연구원 상임연구위원)

 * 윗 글은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이 발행하는 월간 뉴스레터 14호(11월 말 발행)에 실린 글입니다. 그대로 싣습니다. 내용이 길어 세 번에 걸쳐 나누어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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