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있었던 새로운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의 청문회는 한국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여과 없이 투영된 자리였다. 즉, 사소한 법이라도 지키는 것이 나라의 품위를 지키는 일이고, 모든 국민이 법을 존중하고 질서를 지키는 ‘공정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8.15 광복절에 대통령이 나서서 목소리를 높였건만, 며칠도 지나지 않은 청문회에선 후보자들의 위법행위가 만 천하에 드러났다.

위법행위의 종류는 시중의 만물상에 버금갈 만큼 다양하였다. 청문회는 말 그대로 틈만 나면 법을 어겨대는 배짱 좋고 얼굴짝 두꺼운 인간들의 퍼레이드를 방불케 하더니, 연이어 터져 나온 외교부장관의 딸 특채문제로 온 나라가 요란 시끌하다. 이런 후안무취를 접하는 국민들에겐 웃기는 코미디도 저만치는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기도 할 것이다.

불법적 행위의 원천

평범한 백성을 지배하는 데 익숙한 기득권층들이 불법을 저지르는 이유는 지극히도 단순하다. 그들이 상대방에게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즐기는 가학대증 환자가 아닌 다음에는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이다. 말 그대로 누군가에게 정당하게 가야할 몫을 빼앗는 행위를 개인적 능력이라고 치부하면서 제 잇속만 챙기는 행위에 그들은 너무나 익숙할 뿐이다. 그들에게 이러한 행위는 지극히도 정상이다.

▲ 인사청문회는 말 그대로 틈만 나면 법을 어겨대는 배짱 좋고 얼굴짝 두꺼운 인간들의 퍼레이드를 방불케했다.
하지만 그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행위는 노조에겐 지극히도 비정상이고, 경우에 따라선 비인간적이기도 하다. 똑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들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는 것도 모자라, 임금차별까지 정당화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 동안 이런 비정상적인 행위에 대해 노조가 제발 좀 바꾸자고 말하면, 법원에서 불법으로 판결이 나지 않았으니까 괜찮다고 말하거나, 다른 데서도 다 하니까 우리도 관계없다는 식으로 대꾸해온 것도 이른바 좋은 학교를 나온 가방끈이 긴 경영진이었다.

같은 라인에서 동일한 작업을 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도급 노동자라고 우겨대는 기업의 주장을 듣고 있노라면, 지금이 마치 야만의 시대라는 생각마저 든다. 자신들이 가질 수 있는 이득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에겐 양보와 겸양의 미덕을 강요하는 저들의 언어구사를 듣고 있노라면 부끄러움과 염치라는 말을 알기나 하냐고 묻고 싶을 뿐이다. 보다 못한 법원이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을 내놓았지만, 앞으로 어떻게 고치겠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사내하청 하청 노동자들의 노조가입을 폭력으로 대답하는 저들의 야만 앞에서 제발 이성을 가져달라는 노조의 목소리는 너무나 왜소하고 처량해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야만의 상징: 비정규직 노동자와 강성(?) 노조

지금은 납작 엎드린 모양을 하지만 노조가 잘못을 하나라도 하면 벌떼처럼 덤벼들면서 불법과 폭력을 운운하는 저들의 태도에서 우리는 사람이 뒤엉켜 살아가는 속에서 만들어지는 공동체의 풋풋한 체취가 아니라 동물의 왕국에서나 어울리는 잔혹함과 황폐함을 느낀다면, 과연 지나친 공포라고 말할 수 있을지 반문하고 싶다. 왜냐면,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아지는 이유를 저들은 강성(?) 노조 때문이라는 기묘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었고, 이 이데올로기를 아주 효과적이고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 기업경영진의 주장대로라면 강성노조를 미워해야 할 비정규 노동자들이 강성노조에 스스로 가입하려는 움직임은 저들의 주장이 얼마나 궤변인지를 보여 줄 뿐이다.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합원 가입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김상민
노조가 고용안정을 가까스로 지켜내면 강성(?) 노조 핑계를 대면서 기업경영진들의 연약(?)함을 사회에 호소하고, 비정규직 고용의 증가는 노동유연화의 증대로 이어져 기업채산성이 개선되는 효과를 가져 오면 국가경제도 자연스럽게 성장한다는 신화에 가까운 말들만 저들은 되뇌어 왔다. 게다가 저들의 주술과 같은 주장에 대하여 노조는 대꾸조차 제대로 못한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결론은 항상 ‘강성(?) 노조 때문에 비정규직 고용이 증가한다’는 기괴한 말맞추기만 존재하여 왔다.

비정규 노동자 조직화를 최우선 사업으로

사내하청 도급노동자들에 대한 대법원의 불법파견인정이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조에 가입하려는 움직임이 대중화되고 있다. 기업경영진의 주장대로라면 강성(?) 노조를 미워해야 할 비정규 노동자들이 강성(?) 노조에 스스로 가입하려는 움직임은 저들의 주장이 얼마나 궤변인지를 보여 줄 뿐이다. 또한 MB정부가 ‘합법과 공정’을 집권 후반의 이념으로 내세우려 한다면, 노동자들의 기본권인 단결권이 침해당하지는 않아야 하는 게 정상이다. 자동차 완성사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현재의 사태를 노동부가 만약 강 건너 불 보듯 한다면, 정부의 노동정책에서 공정과 합법이라는 간판은 내려야 한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서러움과 한을 정규직 노동자들이 안아주고 보듬어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지금 비정규 노동자들을 금속노조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조직화하기 위한 사업을 구체적으로 하는가가 중요하다. 즉,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동정과 연민보다는 동료의식과 동지적 연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왜냐면, 비정규 노동자들이 다시 한번 노조의 깃발 아래로 모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저들이 만드는 황당한 코미디를 더 이상 보지 않을 수 있다.

이종래 /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