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산업 디지털화 가속에도 정부 대응과 인식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부와 완성차 원청 외면에 한국 자동차부품사업장 고용이 붕괴하기 시작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금속노조 자동차업종분과위원회는 9월 14일 오전 노조 회의실에서 ‘자동차산업 고용변화와 노동조합 대응 토론회’를 열었다. 노조 기아자동차·한국지엠·현대자동차지부 등 완성차지부 정책기획담당자들이 참석해 자동차산업 고용변화 대응방안 마련에 머리를 맞댔다.

백승렬 <어고노믹스> 대표는 “현재 자동차산업은 지난 130년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겪고 있다. 파리 기후협약 본격 적용과 코로나 19 세계 대유행 등으로 자동차산업의 디지털화·전기동력화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확산하는 중이다”라며 발제를 시작했다. 백승렬 대표는 현대자동차 고용안정위원회 노사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이날 토론자들은 토론회 내내 정부의 자동차산업 변화 부실 대응을 지적했다. 백승렬 대표는 산업 중심축이 전자장비(전장) 쪽으로 이동하는 등 자동차산업 시스템의 대전환이 일어났다며 “현실은 긴박한데, 정부는 내연기관차 만들던 사람들이면 바로 전기차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인식이 너무 안일하다”라고 꼬집었다.

전기차 등 소위 친환경차 생산 확대로 자동차 산업구조가 바뀌고, 전장부품 업체의 비중이 급속도로 커졌다. 백승렬 대표에 따르면 LG전자, 보쉬 같은 재벌·다국적 대기업이 자동차 전장 시장을 주도하고, 완성차기업에 큰소리치는 협력사, ‘슈퍼 을(乙)’ 위치를 선점했다. 우리가 아는 자동차산업과 전통 벤더 시스템은 사라지고 있다.

백승렬 대표는 특히 정부 방치에 한국 자동차부품업계가 ‘死車(사차)산업’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우려했다. 오랫동안 협력한 부품납품업체들의 고사 위기를 완성차 원청들이 나 몰라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백 대표는 “자본과 기술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1·2차 벤더들은 정부 지원이 없으면 전장부품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라며 “지금처럼 정부가 완성차 몰아주기식 정책을 계속 집행하면 한국 자동차부품업계는 2, 3년 안에 붕괴한다. 산업발전이 아니라 죽음의 산업이 될 것이 뻔하다”라고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백승렬 대표는 노동조합의 빠른 대응과 활동 방향 전환을 주문하기도 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며 반드시 노·사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일 폭스바겐 노·사의 미래 협약(2016년)과 디지털 전환 로드맵 협약(2019년)을 대표 사례로 꼽았다. 폭스바겐 노·사는 ▲친환경차 사업모델 확대와 자체 개발 생산 ▲교육 훈련 등을 통한 고용보장 ▲숙련강화 내용을 중심으로 대응 전략을 세웠다.

금속노조 자동차업종분과위원회가 9월 14일 오전 노조 회의실에서 ‘자동차산업 고용변화와 노동조합 대응 토론회’를 열고 있다. 박향주
 백승렬 대표가 9월 14일 ‘자동차산업 고용변화와 노동조합 대응 토론회’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박향주

백 대표는 “자동차공장 노동조합들은 교섭에서 물량을 매우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라며 “친환경차 생산 확대와 전장품 모듈 도입에 따른 공수 감소에 따라 이제 물량보다 자동차 생산의 고부가가치화를 중심으로 노조 교섭 전략과 고용 유지 정책을 세워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금속노조에 “완성차·부품사 생산지도를 만들어 전기차 핵심부품이 어떤 경로로 어느 하청업체를 거쳐 완성차로 들어오는지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라며 ‘전환기 글로벌 자동차산업 세부 대응방안’을 제시했다.

오민규 실장은 “전기차 핵심부품을 만드는 사업장은 대부분 무노조 상태다. 금속노조가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향후 자동차 현장의 고용불안, 정규직 제로화,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는 불 보듯 뻔하다”라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입법 요구 등 대정부 사업을 꾸준히 펼쳐 산업정책 정립을 위한 기획과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오민규 실장은 시급한 부품사업장 대응을 요구했다. 오 실장은 “금속노조와 부품사업장 지회들이 완성차 원청은 물론이고 소속 사업장의 미래차 부품 전환, 자회사, 위탁생산 움직임을 빨리 포착해야 한다”라며 부품 아이템별 공동 대응체계 구축과 미래차 핵심부품 관련 미조직 부품사 전략조직사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성희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기아차·한국지엠·현대차 등 완성차 현장의 고용변화 양상을 설명했다. 이성희 국장은 엔진·변속기 조립과 장착 공정에서 극단적인 고용변화가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본이 연구 부문은 필요인력을 수시 채용하고 있지만, 생산·판매·정비 부문에는 정년퇴직 인원이 계속 느는데도 신규 충원을 하지 않고 있다. 판매 노동자들은 비대면 사업 확대로 고용에 위협을 받기도 한다.

이성희 국장은 “고용 없는 시대에 이미 들어섰다. 부문별로 정도와 내용의 차이는 있지만, 완성차 노동자 역시 고용구조 변화를 겪고 있다”라며 노조와 완성차지부가 산업전환에 따른 직군별 현황, 쟁점을 정리해 각 부문 맞춤형 대응을 펼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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