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중지란이란 내분을 말한다. 병법에 따르면 자중지란이면 필패라고 했다. 갈라치기란 바둑에서 상대의 세를 분산시키기 위해 상대진영의 한 가운데 놓은 포석을 말한다. 이간질? 설명이 필요 없겠다. 이는 모두 공격의 명분이 약하고 정면승부가 어렵다 싶으면 꺼내는 카드다. 지난 7/22일 사내하청 불법파견 판결에 대한 보수언론의 태도가 바로 그러했다. 판결 직후엔 소극적인 태도가 역력했다. 중앙일보(7/26)는 별 의미가 없다는 듯 신문 한 귀퉁이에 앙상하게 겨우 판결소식만을 전했다. 조선과 동아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러나 전열을 가다듬은 보수언론은 곧바로 자중지란을 노린 갈라치기와 이간질에 나섰다.

역시 조선이었다. 조중동 중 조선만이 유일하게 사설(7/27)로 다뤘다. 조선은 “문제의 근본은 업계가 그동안 정규직 노조의 위협에 끌려 다니며 그들 요구 조건을 들어주고, 그 부담을 사내하청 근로자들에게 떠넘겨온 데 있다. 정규직 노조와 노조원이 지금 누리는 혜택은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부터 짜낸 것이다.”라며 모든 책임을 자본이 아닌 정규직 노동자에게 돌렸다. 걸핏하면 ‘법대로’를 외쳤던 터라 판결에 정면으로 맞서진 못했지만, 대신 손쉬운 핑계거리를 찾아낸 것이다.

▲ 조선일보는 '정규직 노조와 노조원이 지금 누리는 혜택은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피와 담과 눈물로부터 짜낸 것'이라며 모든 책임을 자본이 아닌 정규직 노동자에게 돌렸다.

가장 도발적인 신문은 현대차가 지분을 소유한 한국경제신문(한경)이었다. 한경은 노동부 권영순 고용평등정책관이 입을 빌어 “모든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은 아니다(7/28)”며 우선 판결의 파장을 가라앉히려 했고, 며칠 후엔 <사내하청 대법원판결, 문제 있다(8/16)>는 칼럼으로 노골적인 헐뜯기에 나섰다. 대법의 판결은 ‘같은 일’을 원청이 ‘직접’시키면서 사내하청노동자를 차별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취지다. 그런데 칼럼은 컨베어벨트 등 원․하청이 섞여 일하는 현장에서 원청이 관리감독 하는 것은 당연하지 직접 지시가 왜 불법이냐며 엉뚱하게 시비하는가하면, 아예 “현행 파견업무 ‘제한’은 폐지해야 한다.”며 뻔뻔한 요구까지 내걸었다. ‘파견업무 제한’을 없애는 것이 이번 판결을 한낱 종잇조각으로 만드는 가장 유력한 방법인 줄은 아는 것이다.

▲ 한국경제신문은 '사내하청 대법원판결, 문제있다'는 칼럼으로 불법파견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시키라는 대법원 판결을 노골적으로 헐뜯기에 나섰다.

그러나 정권과 다른 보수언론은 섣불리 쟁점화하지 않는 분위기다. 형식적인 실태조사를 앞세운 노동부가 일단 시간끌기에 나서고 다른 언론은 아직까진 입을 다물고 있다. 반면 다급한 한경은 이런 저런 논리를 끌어대기에 여념이 없다. “현대차 등 완성차 업체들이 사내 하청 근로자들을 활용하는 것은 정규직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기 때문이다.”는 핑계는 기본이다. <자동차산업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8/27)>이란 시론에서 한경은 “(이번 판결로)오히려 사내하청 근로자의 고용이 줄어드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며 자중지란을 노린 협박도 하고, 결국엔 이번 판결이 잘 나가는 자동차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펴며 사법부를 압박하고 일반 국민의 정서를 자극하여 여론을 갈라치려했다.

대법이 원심을 파기하고 돌려보낸 고법은 단지 대법판결의 취지를 형식적으로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식이 무시되는 이명박 시대다. 대한상공회의소조차 “사내하도급에 대해 사법부의 새로운 해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8/26)”이라 하는 세상. 보수언론의 자중지란 공세도 계속 될 것이다. 대법판결 약발이 떨어지기 전에 쉼 없이 밀어붙여야 한다. 지금은 ‘공격이 최선의 방어’임을 명심해야 할 때다.

박성식 / 민주노총 부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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