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삼성지회와 삼성물산이 드디어 교섭장에서 만났다. 삼성지회가 금속노조에 가입한 지 10년 만이다.

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가 6월 10일 오후 경기 용인 에버랜드 서비스아카데미에서 2021년 임금·단체교섭 상견례를 열었다. 노조는 사측에 노조 기본협약 체결과 지회 사무실 제공을 요구했다.

위원장을 대리해 교섭대표를 맡은 정주교 노조 부위원장은 “2020년 5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노조 문제로 상처 입은 모든 사람에게 사과한다고 발표했다. 이제 삼성에서 더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라며 교섭 인사말을 시작했다.

정주교 부위원장은 “당연하지만, 삼성이 다시는 노조 탄압을 하면 안 된다”라며 “사측이 불법을 저질러 삼성지회가 지난 십 년 동안 단체교섭을 못 했다. 어렵게 시작한 만큼 올해 교섭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노력해주길 바란다”라고 사측에 당부했다.

노일호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부사장은 “만감이 교차한다. 지난해 무노조 관련 발표 이후 삼성은 변화를 위해 몸부림을 하고 있다”라며 “새로운 변곡점에 있고 경영 방향도 확실히 달라졌다. 전과 다른 모습으로 단체교섭에 성실히 임하겠다”라고 인사했다.

노일호 부사장은 “노조가 회사에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지적하는데 경영정책의 큰 틀이 바뀌다 보니 시간이 다소 걸리는 부분이 있다”라며 “노조와 계속 협의하면서 올해 단체교섭을 원만하게 풀어갈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첫 단체교섭에 대한 기대감을 서로 드러내며 잠시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마주 앉는 데 걸린 시간이 긴 만큼 첫 교섭부터 순탄치 않았다. 지회와 사측은 교섭원칙 수립부터 견해차가 커 삐걱대고 있다.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와 기업노조의 과반수노조 이의신청 과정을 거친 후, 삼성지회는 사측에 ▲교섭 장소·주기·방식 ▲교섭위원 유급 전임 ▲자료제공 등의 내용을 묶어 교섭 기본협약 체결을 요구했다. 세 차례 실무간담회를 했지만, 합의하지 못했다.

정주교 부위원장은 “노동조합은 단체교섭 진행에 필요한 기본 사항을 요구했다. 사측 거부로 교섭원칙을 정하지 못한 채 상견례를 하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며 “에버랜드 사내에서 주 2회 교섭하자는 게 무리한 요구인가. 사측이 지회 사무실을 제공하지 않아 삼성지회가 어려운 조건에서 단체교섭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금속노조, 삼성지회와 삼성물산이 6월 10일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서 첫 임금 단체교섭 상견례 열고 있다. 김규백
금속노조, 삼성지회와 삼성물산이 6월 10일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서 첫 임금 단체교섭 상견례 열고 있다. 김규백
금속노조, 삼성지회와 삼성물산이 6월 10일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서 첫 임금 단체교섭 상견례 열고 있다. 김규백
금속노조, 삼성지회와 삼성물산이 6월 10일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서 첫 임금 단체교섭 상견례 열고 있다. 김규백

사측 교섭위원들은 삼성지회가 제시한 교섭원칙 내용 전반에 난색을 보였다.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단체교섭 진행 수준에 맞출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첫 단체교섭이라 자료 검토 등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며 주 1회 교섭을 고수했다. 노조 활동을 위해 제공한 기존 타임오프 시간을 쓰면 되지 않냐고 되묻기도 했다.

원용훈 노조 경기지부 부지부장은 “금속노조 삼성지회 교섭과 상관없는 삼성 계열사 기준에 왜 따라야 하나. 삼성 기준을 우리에게 받아들이라고 하면 곤란하다. 사측은 금속노조 사업장 노사가 어떻게 교섭하는지 봐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원 부지부장은 “사측 교섭위원들은 온전한 임금과 근무를 인정받는데, 노조 교섭위원들은 개인 시간을 쓰고 임금 손해를 본다. 부당하다”라고 강조했다.

박원우 삼성지회장은 “사측은 사내 공간이 없어 금속노조에 사무실을 줄 수 없다고 주장하나, 정작 노조가 아닌 노사협의회에 사내 사무실을 주고 있다”라며 “사측은 기존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변화를 약속했다. 달라진 삼성을 제대로 보여달라. 안된다, 못한다고 하지 말고 가능한 방법을 만들어 내놔야 한다”라고 노조 교섭원칙 수용을 재차 요구했다.

노·사는 상호 질의와 응답을 이어갔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상견례부터 노·사 간 명확한 견해차를 확인했다.

노조와 삼성물산은 조속히 실무교섭을 열어 교섭원칙에 관한 이견을 조율하기로 했다. 노·사는 차기 교섭에서 교섭 기본협약을 체결하기로 합의하며 상견례를 마쳤다.

2011년 7월 삼성 에버랜드 노동자들이 금속노조 삼성지회를 세웠다. 삼성 계열사 합병으로 에버랜드는 현재 삼성물산 리조트 부문 사업장이다. 삼성물산은 건설, 리조트, 상사, 패션 등 네 개 부문의 사업을 하고 있다. 노조 삼성지회에 네 부문 노동자들이 가입해 있다.

에버랜드에 금속노조가 생기자 갑자기 에버랜드노조가 떴다. 노조 삼성지회는 에버랜드노조를 삼성의 노조 와해 전략으로 탄생한 어용노조라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조로 인정하면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에버랜드노조 전·현직 노조위원장 두 명은 노조파괴 가담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삼성의 노조 탄압과 복수노조 악용 탓에 삼성지회는 십 년 동안 교섭권을 빼앗기고 소수 노조 서러움을 겪었다. 꾸준한 조직확대사업 결과 다수 노조가 됐고 올 2월과 3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통해 삼성지회는 교섭 대표노조 지위를 확보했다.

에버랜드 기업노조가 과반수노조 이의신청을 제기하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이를 기각하는 과정을 거치며 첫 단체교섭 시작이 늦어지긴 했지만, 결국 삼성물산은 금속노조와 한 테이블에 앉았다.

박원우 삼성지회장은 “멀리 돌고 돌아왔다. 우려가 크지만, 이제 삼성에서 제대로 민주노조로서 활동할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다”라고 첫 단체교섭 소회를 밝혔다.

박원우 지회장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쟁취하고 평등한 노동환경 만드는 투쟁에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삼성지회의 새로운 시작에 삼성물산 동료 노동자들과 금속노조 동지들의 많은 관심, 지지 부탁한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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